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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 Jan 19. 2023

벼르던 눈

당신의 생각에 나를 구겨 넣던 눈.

사람들마다 공포증이 하나씩 있다. 환공포증, 폐소공포증, 고소공포증 등. 나에게는 ‘벼르는 눈’ 공포증이라는 것이 있다.


사실 방금 지어낸 이름인데 주관적으로 느끼는 공포를 설명하고 싶어 붙여본 이름이다. ‘벼르는 눈’ 공포증은 ‘상대를 이해하거나 믿을 의지가 없는 상태에서 상대의 행동을 지켜보는 눈’을 말한다. ‘벼르는 눈’ 앞에서는 왜인지 말없는 눈이 말하는 대로 해야 할 것만 같은 무력감이 들었다.


‘벼르는 눈’이  ‘ 그랬제 입’과 사람과 만나면 효과는 증폭된다. ‘그랬제 입‘은 자신이 생각한 장면과 조금만 비슷한 상황이 와도 뻐꾸기처럼 ‘그랬제’를 외치는 입이다. ‘그랬제’를 외치는 사람이 쏜 총에 상대가 맞았을 때 가끔 하나의 명사로 굳어지기도 하는데 그것이 바로 이미지가 되기도 한다. (나도 ‘그랬제’총을 쏘아본 적이 있다) 사람이 하나의 이미지로 굳어지면 그 외의 무한한 관점이 배제된다. 풍성한 다차원 공간이 일차원으로 바뀌어 버린다. 원하는 이미지가 아닌 모습은 수용하지 않는다. 원하지 않는 나로 존재해 본 경험이 있다. 그래서 두고 보자며 쳐다보는 ‘벼르는 눈’이 ’그랬제 입‘과 만날까 두려웠다.


그런데 어느 순간 ‘벼르는 눈’이 조금 덜 매서워지기 시작했다. 그 눈이 ‘무언가를 ‘꿰뚫는 눈’이 아니라 자신이 보는 풍경의 뒷면을 보지 못하는 ‘무지의 눈’인 걸 알아차려버렸기 때문이다.


자신이 생각하지 못하는 걸 보지 못하는 눈, 타인의 감정을 수용하는 조망수용능력이 미처 다 발달하지 못한 듯한 눈, 상대의 상처를 쓸어주지 못하는 눈, 경험하지 않은 것은 공감하지 못하는 눈, 나와 다른 것은 수용하지 못하는 눈


그리고 어느 날 문득 나에게도 ‘벼르는 눈’이 생겼다는 걸 깨달았다. 답답한 지인에게, 속상함을 이겨내지 못하는 친구에게 , 몇 번을 말해도 듣지 않는 아이를 쳐다보는 눈 속에 ‘벼르는 눈’이 있었다.


두려워하면 닮는다고 했던가?

‘벼르는 눈’을 두려워한 내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 ‘벼르는 눈’을 보여주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각이 주는 차가운 감각은 생각보다 오래 마음에 남는다. 그걸 알면서도 그 차가운 눈으로 상대를 대해왔다는 걸 문득 깨달았을 때 합리화하고 싶은 마음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하지만 자존심과 변명을 내려놓기로 했다.


그리고 잠시 눈을 감기로 한다.

얇지만 따뜻한 눈꺼풀로 잠시 눈을 덮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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