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엄마'란 자신을 잘 아는 사람
예전에는 '좋은 엄마'라고 하면 이상적인 모습을 상상했다. '화내지 않는 엄마', '늘 부드럽게 말하는 엄마', '늘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엄마', ' 늘 배우는 엄마'. 실제로 아이를 둘 낳고 육아를 해보니 이 중에서 내가 가능한 것은 '늘 배우는 엄마'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늘 화내지 않는 엄마가 되려니 화가 쌓였다가 터져 나왔고, 늘 친절하게 설명해 주자니 속이 터졌다. 난 착하기만 한 엄마는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상상한 이상적인 모습 중에 '늘 배우는 엄마'만 실천하기로 했다. 그리고 가끔 화내는 엄마, 필요할 때에는 엄해지는 엄마, 늘 친절하게 설명해주지 못해도 잘 설명해 주는 엄마가 되기로 했다. 그렇게 스스로 결론지었다.
아이를 임신하면서 배우고 싶은 게 더 많아졌다. 임신을 했을 때는 영유아의 발달시기에 대해서 배웠고, (케이무크로 유아발달을 이수했다) 아이들이 3살, 5살 일 때는 다시 대학교로 가서 유아교육을 배웠다. 그러면서 나에 대한 공부도 계속해나갔다. 심리학 학사학위를 온라인으로 몇 개 이수하고 (대학원을 가야겠다고 해서 면접도 봤지만 아이를 더 키우고 가기로 했다) 도서관에서 감정, 심리, 뇌과학, 철학, 육아 관련 책들을 읽었다. 심리학자 스터디에도 참여하고, 융학회에 나오신 박사님께 수업도 듣고, 그림책도 공부했다. 그러면서 후회가 들었다. '이렇게 좋은 책과 공부들을 일찍 만났다면 정말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었을 텐데...' 하고 말이다. 하지만 삶에서 배운 것을 실천하면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내가 모든 걸 안다고 해도 모두 실천할 수 있었을까? 실제로 실천해 본 사람은 안다. 실천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특히 혼자 실천하는 것이 아닌 아이와 함께 하는 실천은 더 어렵다. 그래서 나는 내가 소화할 수 있는 만큼 알아가고 배우고 있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아이를 키우는 동안은 자기계발을 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책을 읽지 않으면 그림책을 읽었고, 그것도 하지 않으면 강의를 들었고, 스터디를 듣거나, 무언갈 이수했다. 그리고 배울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고 내가 낸 결론은 엄마공부는 '나로 시작해서 나로 끝날 수밖에 없는 것'이라는 것이다. '아이를 이해하기 이전에 자신을 먼저 이해할수록 좋은 엄마'가 된다는 것이다. 예전에 온라인에서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최광현작가님의 <아들은 아버지의 등을 보고 자란다>라는 책에 나오는 글이다.
“좋은 부모는 자기가 물려받은 카르마를 자녀에게 물려주지 않는다.” 막연하게 생각하는 부모역할을 뛰어넘어 내 자녀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떠올려보아야 한다. 부모가 어떻게 자신의 상처를 회복하고 극복하려 했는지는 훗날 자녀의 인생에서 그 결과가 드러난다.
내 카르마를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는 것. 그러기 위해 나를 아는 것은 엄마에게는 너무나 중요한 과정이다.
카르마 : 미래에 선악의 결과를 가져오는 원인이 된다고 하는, 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선악의 소행.
교육학에서 '잠재적 교육과정'이라는 용어가 있다. 학교에서 의도하지 않았지만 학생들이 은연중에 가지게 되는 경험을 말한다. 학교생활, 수업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전달되는 선생님의 삶의 철학이나 기준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유아교육에서는 문을 닫는 선생님의 태도나 (반 아이들이 담임 선생님과 똑같이 문을 닫는다고 하셨다. 조용히 닫거나, 쾅 닫거나), 선생님의 웃음소리를 예로 드셨다. (반 아이들 말투와 웃음소리는 담임선생님을 꼭 닮아간다고 한다) 이것은 교육과정에는 없고 누구도 의도하지 않았지만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배워가는 부분들이다. 수업시간에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가정은 잠재적 교육과정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엄마의 말투, 화내는 기준, 관념, 관점들을 자연스럽게 배워가기 때문이다. 무엇이 좋다는 기준은 없지만 내 행동이 아이에게 많은 영향을 준다면, 엄마가 깨어있는 것이 좋은 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던 나는, 필연적으로 나를 만나볼 수밖에 없었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인지, 내가 하는 생각이 도움이 되는 방향인지를 늘 점검했다. 이 과정은 내 기준을 세우는데 도움이 되었다.
아이를 키우다 보니 흔들릴 일, 생각해야 할 일이 참 많다. 순간순간 처음 만나는 상황에 흔들리기도 하지만, 내가 돌아갈 기준이 생기니 점점 덜 흔들렸다. 스스로는 절대 바꿀 수 없었던 많은 것들이 소중한 아이가 생기고 극복하게 되기도 했다. 결국에는 아이들 덕분에 나를 이해할 수 있었다는 생각도 든다. 그걸 따지는 것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같은 것이다. 아이가 태어나 좋은 엄마가 되려고 하니 나를 이해하게 되었고, 나를 이해하면 좋은 엄마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좋은 엄마란, 스스로를 잘 이해하는 엄마다. 엄마가 스스로를 잘 이해하면 나의 시선으로 아이를 보지 않게 된다. 스스로를 잘 이해하는 사람은 자신만의 기준이 만들어진다. 자신만의 기준이 만들어지면 주변과 상황에 좌지우지되지 않는다. 나의 시선으로 아이를 보지 않고, 주변에 좌지우지되지 않는 엄마는 아이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 아이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엄마는 편안하다. 엄마의 마음이 편안해지면 아이의 마음도 편안해진다. 그래서 내가 정의한 '좋은 엄마'는 스스로 편안한 엄마다.
그래서 나는 이전보다 조금씩 더 좋은 엄마가 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