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프롤로그

제주살이를 앞두고

by 말로이

"어느 날 문득 제주도에 가고 싶어 제주도로 떠났습니다"


자유로운 영혼처럼, 이렇게 한 번쯤 말해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래도록 해외살이를 꿈꿨습니다. 23살 여름, 친구가 영국 시골 마을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며 영국 시골마을로 초대하는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일주일 동안 무료로 숙식이 가능하다는 말에, 엄마를 설득해 당장 영국으로 떠났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경험한 시골은 아름답고 고요하고 편안했습니다. 앨런 라이트맨이 쓴『아인슈타인의 꿈』에 나오는 한순간처럼 시간이 다르게 흐르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 장소에서 저는 즉각 다른 사람이 되었고, 세상이 넓어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마치 책을 읽기 전과 읽은 후가 다른 것처럼요. 그래서 남편과 해외살이에 대한 이야기를 한 번씩 나누고, 카페에서 친구들과 시답잖은 농담을 할 때에도 해외살이 로망에 관한 이야기가 주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로망과 현실은 다를 때가 많지요. 아이를 낳고 코로나가 터지고 돈을 벌어야 하는 현실 앞에서 해외살이는 점점 더 멀어지더라고요. 멀어진다고 포기할 제가 아닙니다. 상상은 늘 마음대로 할 수 있기도 하고, 저는 합리화의 여왕이거든요. 그래서 국내 타지살이로 눈을 돌렸습니다. 한동안 부동산 투자에 실패한 경기도로 가서 그 공간을 활용해 볼까도 생각하기도 했고요. 아무튼 해외까지는 아니라도 국내의 다른 지역에서 사는 것을 한동안 꿈꿨습니다. 그리고 그곳은 무조건 자연과 함께하는 곳이길 바랐습니다. 후보에 왕할머니 댁이 있는 거창을 생각하기도 했었지요. 국가에서 진행하는 시골유학도 생각했고요.


해외살이가 아닌 타지살이를 꿈꾸면서도, 남편의 직장 때문에 훌쩍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남편을 두고 두 자매와 떠날까도 1000번 생각해 보았지만, 제가 좀 겁쟁이거든요. 인터넷에 보면 아이들과 타지살이를 하는 용기 있는 엄마들이 많더라고요. 안타깝게도 저에게는 그런 용기가 없었습니다. 결혼을 하고 다른 면에서는 꽤 독립적인 부분도 있다고 여겼지만, 누구나 극복하지 못한 것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자책하기보다 겁쟁이인 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로 했습니다.그래서 떠나지 못하고 현실에 적응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일상을 지내던 2025년 1월, 고민이 생겨서 제주도에 사는 언니와 통화를 하다가 '나도 제주도에 가서 살아볼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IB초등학교가 있다는 정보도 언니에게 처음 들었습니다. 그때 언니는 나에게 남편에게 무작정 가고 싶다고 말하지 말고, 구체적으로 상황을 충분히 조사하고 남편에게 이야기하라고 했습니다. 제 성향을 꽤 잘 아는 언니입니다. 그날부터 혼자서 제주도 IB와 제주살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지도를 검색해서 보고, 온라인으로 IB학교와 원하는 학교의 주변 인프라와 제주살이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정도 구체적으로 알아보았다는 판단이 들고나서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남편은 생각보다 구체적인 저의 설명에 흠칫 놀라는 표정이었으나, 조사를 구체적으로 했다고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역시 직장 때문에 갈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2025년 5월 남편이 사무실을 이전하면서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 환경으로 변화했거든요. 그때 처음으로 남편이 먼저 "제주도에서 살아보자"라고 말했습니다. '두근두근' 한줄기 빛이 마음을 비추었습니다. 남편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온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매번 '그러면 좋지'라고 말하거나 피식 웃고 말았었거든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제주살이를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막상 살겠다고 생각하자, 그 많은 정보들 중에서도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제주살이의 단점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도전을 시작하기 전에는 이런 정보들이 더 많이 보이기 마련입니다. 특히 제주도의 습함에 대한 설명은 습기에 대한 공포가 생길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그때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해보기 전에는 다른 사람에게 듣는 대로 상상해 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직접 그 습함을 경험하고 판단하기로 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큰 단점이 저에게는 견딜만한 요소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제주도에 가고 싶은 이유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V 지금 사는 곳을 벗어나 자연에서 살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다.

V 양가 부모님과 왕할머니도 한 번씩 뵐 수 있다.

V 아이들이 크기 전 자연에서 실컷 뛰어노는 환경을 선물해 주고 싶다.

V 물 좋아하는 아이들이 실컷 수영할 수 있다.

V 아이들이 학교에 있는 동안 몰입하는 경험을 했으면 좋겠다 (IB수업)

V 학교 교육의 경쟁 체제에서 벗어나 배움의 즐거움을 알았으면 좋겠다.

V 남편의 가장 큰 버킷리스트가 '스노클링 자격증을 따는 것'이다. (제주도에는 스노클링 자격증 과정 有)

V 운전을 마스터해야지 (나) 운전을 하고 싶은데 부산에서는 대중교통도 잘 되어있고, 용기도 안 난다.

V 나와 딸들 수영을 마스터해야겠다. (남편은 학생수영선수출신)


그래서 우리 가족은 제주도에서 살기로 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지만 일단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꿈꾼건 오래지만, 결정은 그야말로 한순간이더라구요.


keyword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