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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집에서 쫒겨나 제주도에 집보러 갑니다

9월 말 거주지 분실 예정

by 말로이

현재는 자가에 월세를 주고, 지금 살고 있는 집에 월세로 세들어 살고 있었습니다. 2024년의 어느 날, 계약기간이 끝나기도 전에 집주인이 전화가 와서 사정상 집을 내놓아야 한다고 하더라구요. 이사비를 줄테니 집이 나가면 언제든 나갈 수 있냐고 물어왔습니다. 사실 저희 부부는 이사에 저항감이 없기 때문에 그러겠노라고 했습니다. (아싸 이사비) 어차피 2년계약한거라 계약이 끝나면 다른 곳에 가야한다고 생각을 하긴 했었거든요. 이사 자체는 괜찮지만 지금의 아파트가 매우 좋아서 아쉽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아쉬웠던 마음이 무색하게도 집을 내놓았다고 말한지 1년이 지나도록 집은 나가지 않았습니다. 긴장감이 풀려갈 때즈음 남편의 재택근무로 제주도행을 결심했습니다. 이 정도 속도면 내년 (2026년) 1월~3월 즈음에 제주도에 갈 수 있겠다고 이야기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5월부터 사람들이 자주 집을 보러왔습니다. 많으면 하루에 5팀씩 보고 가기도 했습니다.


"지금 올라가도 될까요?"


한동안 이 말이 가장 당황스러웠습니다. 집에서 무방비상태로 있는데 부동산전화를 받을 때마다 잠시 시간을 달라고 말하고 잠옷을 갈아입고 집을 살폈습니다. 그러면 10분에서 20분 뒤 손님들과 부동산 사장님이 들어와 집을 보고 갔습니다. 9월의 어느 날 부동산 사장님이 사람들과 집을 보고 나간 후 남편이 처음으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오늘 집 나갈 것 같다" 그리고 그 날 저녁, 덜컥 집이 팔렸습니다. 기대도 하지 않았던 팀에서 집을 사갔습니다. 몇 차례 전화가 오가고 날짜는 9월 말중으로 정하자고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9월 말? 2학기 시작도 아니고, 새학기 시작도 아닌 9월 말. 조금 애매한 시기라 잠시 주변의 다른 집에 있다가 제주도로 이사갈까도 생각했지만, 지금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첫째가 유치원과 학교에서 전학 온 친구들 적응을 매번 잘 도와줬었거든요. 그래서 전학 온 엄마와도 친하게 지냈습니다. 그러니 첫 째도 학교에 잘 적응할 것이라 믿고, 9월 말에 전학을 가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갈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계속 했습니다. 어느 하나 명확하게 정해진 것은 없으니까요. 무산될 수 있다는 생각을 반, 꼭 가고 싶다는 생각을 반하면서 제주도 행을 꿈꾸며 일상을 살았습니다.


집이 나가고 나니 조금은 불안했습니다. 제주도를 가야 집을 볼 수 있으니 당장 집을 볼수도 없었거든요. 온라인에서 본다고 해도, 오프라인으로 집을 보러 갔을 때 그 시점에 계약 가능한 매물만 확인할 수 있을테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이버부동산과 오일장카페와 당근으로 매물을 꾸준히 찾아보았습니다. 다만 저희가 마음에 드는 집이 나오더라도, 미리 계약을 할 계획은 없었습니다. (실제로 마음에 드는 매물이 있으면 두,세달치 월세를 감당하더라도 미리 계약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인터넷에는 제가 가는 지역에 집이 없다는 글이 정말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글에 크게 겁을 먹지는 않았습니다. 내 마음에 드는 집이 없겠지, 집은 있을거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사실 인터넷의 공포는 이미 임신과 출산 때 한번 겪어 본 경험이 있었거든요. 온라인에서 정보를 얻는 것은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불안과 걱정도 함께 안겨주기도 합니다.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한달 전에 가서 직접 부딪혀보자. 결국 그곳도 사람이 살아가는 곳이니까 방법은 다 있겠지요. 마음 속에 꼭 가고싶은 매물을 2개정도 품고는 제주도 티켓을 예약했습니다.


8월 20일 아침, 걱정과 설렘을 안고 제주도로 향하는 비행기는 마치 키즈카페 같았습니다. 가족단위 관광객이 특히 많았거든요. 비행기가 뜨는 순간 비행기에 있는 많은 아이들이 "뜬다! 뜬다" "와 ~" 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렸습니다. 아이들의 맑은 목소리와 함께 탄 비행기라 그런지, 비행기에서 무지개도 만났습니다. 비행기를 탄 중 가장 깨끗한 날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부산과 바다를 깔끔하게 보였습니다. "부산에는 이렇게 산이 많아 부산이구나"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아이들이 많아 타서 그런지 저도 동심으로 돌아간 듯한 맑은 마음이 듭니다. 한 시간이 안되는 비행 끝에 "손님여러분 유네스코 지정 아름다운 섬 제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라는 멘트를 들으며 제주도에 도착했습니다. 그 시간이 오전 9:00 였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저희는 1박 2일동안 몰입해서 매물을 봐야하기 때문에 아이들은 시어머님께 부탁드리고 남편과 단 둘이 손가방 하나씩 들고 제주도로 향했습니다. 남편과 둘이서 1박2일은 참으로 오랜만이었습니다. 설레는 마음 때문이었을까요? 3시간 밖에 자지 못했지만 긴장과 설렘이 섞인 마음 덕분에 피곤하지 않더라구요. 렌터카를 타고 서귀포로 향하는 길은 마치 그림같았습니다. 차를 몰고 해안을 따라 달리자, 눈앞에 탁 트인 바다가 펼쳐지고 곧 도로 위로 몸을 맡기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트럭 위에 실려 가는 말 한 마리가 남편의 눈에 들어왔습니다. “저기 말 봐. 아, 여기가 바로 제주구나.” 남편이 말한 방향으로 눈을 돌리자 정말 말이 눈앞에서 지나갑니다. 그 풍경 하나만으로도 제주도의 숨결이 가슴 깊이 전해졌습니다. 조금 더 달리자 이번에는 아무것도 없는 드넓은 도로가 나타났습니다. 그 위로는 끝없이 이어지는 구름이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었습니다. 높은 건물이 없으니 오른쪽 끝에서 왼쪽 끝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구름이 시야를 가득 채웁니다. 마치 하나의 오르골 속에 들어온 듯한 착각이 들었습니다. 남편과 나는 동시에 감탄하며 말했습니다. “이야~, 우리가 지금 거대한 구름 오르골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다시 서귀포를 향해 구름 오르골 속을 달렸습니다. 제주도의 풍경은 그저 길 위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을 설레게 했습니다.


도로에 말
오르골 같은 제주도 풍경

그렇게 자그마치 한 시간을 넘게 달려 드디어 서귀포에 도착했습니다. 차에서 내리는 순간, 햇빛이 강렬하게 내리쬐더라구요. 이것은 부산의 햇빛는 확연히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자와 썬글라스를 챙기지 않은 것이 참 아쉽게 느껴졌습니다. 혹시 여름에 제주도로 집을 보러갈 계획이라면, 꼭 모자와 선글라스를 준비하시길 권해드립니다. 강렬한 햇빛 때문에 눈을 반쯤 감고 첫번째 부동산사장님을 만났습니다. 처음 본 집은 소규모 타운하우스였습니다. 복층구조에 마당이 꽤 넓었지만 정작 생활공간이 협소해 가구를 놓을 수가 없겠더라구요. 물론 제주도에 이사오면서 많은 짐을 정리할 생각이었지만, 최소한 아이들 책장 정도는 들어가야한다는 기준이 있었기에 첫 번째 집은 포기했습니다. 만약 마당이 조금 줄어들고 그만큼 방이 넓었다면 충분히 마음에 들었을 집이었습니다. 집을 나서며 대문입구에 있는 오렌지 나무가 다음 집으로 향하는 제 마음을 설레게 했습니다. 두 번째로 본 집은 주인집과 붙어있는 구조였습니다. 거실과 방이 넓어서 공간활용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냄새가 마음에 걸리더라구요.주인집과의 경계도 뚜렷하지 않아서 우리가 살 집으로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제주도에서 집을 구할 때 좋은 부동산 사장님을 만나는 일은 그야말로 큰 행운입니다. 당연히도 언제나 그런 행운이 따르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장님은 물어보는 것 마다 호통치듯이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이걸 물어보는게 실수인가? 라는 생각이 들만큼 화가난 듯한 말투였지요. 저도 경상도에서 나고 자라, 다소 거친 말투에 익숙하다고 생각했는데도 불구하고 유독 대답이 퉁명스러워 마음이 불편해졌습니다. 집이 아무리 마음에 들어도, 이런 분과는 계약하지 말아야지하고 다짐을 할 정도였습니다. 어떤 사장님은 자꾸 말끝을 흐리시거나 온라인에 올라온 매물과 다른 대답을 하시는 분도 계셔서 신뢰가 가지 않기도 했습니다. 어떤 사장님은 큰 열정 없기도 하고요. 어떤 사장님은 너무나 친절하시나 마음에 드는 매물을 가지고 계시지 않아 계약을 할 수 없어 아쉬웠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 속에서 저희가 완전히 마음을 빼앗긴 부동산 사장님이 계십니다. 바로 저희와 비슷한 또래아이를 키우는 부동산 사장님이셨습니다. 매물을 팔려고 하기보다, 각 집의 장점과 단점을 모두 나열하고 난 후에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그리고 '벌레가 나올 때 퇴치법' 혹은 '주변 생활 편의시설과 동네 팁' 그리고 제가 관심을 가진 학교와 인근 학교의 정보까지 친절하게 설명해주셨습니다. 단순히 매물을 계약하려는 사람이 아니라 완전히 이웃주민으로서 설명을 해주시더라구요. 그 분 덕분에 저희는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고, 집을 구하는 여정에서 든든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차를 몰고 가다가 우연히 본 바다
각 매물에 대한 정보는 세세하게 다이어리에 기록했습니다. 특징 및 연세


그렇게 첫 날아침 9시에 제주도에 도착해 오후 4시까지 여덟 곳의 집을 둘러보았습니다. 매물은 사진과 흡사했습니다. 그러나 주변환경을 같이 보았을 때 단점이 생기기도 하고, 장점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초등학교와 무척 가까워 좋지만 주차난이 있는 곳도 있었고, 인테리어가 정말 예쁘고 넓고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만 도로에 있어서 창문을 통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집이 다 노출되는 집도 있었습니다. 사진에는 멀끔하지만, 실제로 가보면 너무나 좁은 곳도 있었고, 사진에 담을 수 없는 냄새를 맡을 수도 있었습니다. 저의 경우 부동산 사장님께 집주변에 사는 사람들의 유형을 자주 물어보았습니다. 아무래도 아이들을 키우는 주민들이 많으면 공감대도 잘 형성되고 서로 돕는 분위기가 있거든요. 그래서 집을 볼때마다 주변에 어떤 분들이 거주하시는지를 꼭 여쭤보았습니다.


온전히 집중해서 매물을 살펴보고나니 배가 무척 고팠습니다. 그래서 미리 검색해두었던 근처 보말칼국수 집에 들어갔습니다. 자리에 앉아 고기국수 하나 보말칼국수 하나를 주문했는데, 아쉽게도 고기국수는 다 떨어졌다고 하시더라구요. 하는 수 없이 보말칼국수 두 그릇을 시키고 배고픔을 참으며 기다렸습니다. 1분이 1시간처럼 길게 느껴질만큼 허기가 졌습니다. 드디어 보말칼국수가 내 앞에 놓아졌습니다. 보말칼국수를 한 젓가락 입에 넣자마자 진한 바다의 향이 입안 가득 퍼졌습니다. 땡초가 들어가 있어 얼큰하고 칼칼한 맛이 느껴졌고. 국물 속에는 밥알까지 들어있어서 보말죽 같기도, 칼국수같기도 했습니다. 그때부터 허겁지겁 먹기가 시작됩니다. 그렇게 든든하게 한끼를 먹고 나니 온 몸이 편안해졌습니다. 식사를 마친 후 우리는 곧장 숙소로 향했습니다. 한 여름 내내 햇빛을 받고, 에어컨 없는 집을 돌아다니다보니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거든요. 숙소에 도착하고 온 몸에 긴장이 풀리자 쉬고싶은 충동이 올라왔지만 얼른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나가자고 남편을 채근했습니다. 우리에게 1박 2일은 굉장히 소중한 시간이거든요. 숙소 밖으로 나와 학교 주위를 걷고 돌아다니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동네 돌아보기가 빨리 끝나더라구요. 그래서 근처에 있는 카페로 향했습니다.



- 3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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