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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리 Oct 16. 2017

괜찮았다. 그리고 괜찮다.

이사 갈무리 


분명 괜찮다고 생각했다. 이사 전 마지막 파티를 기획하면서 즐거웠고, 방 하나를 가득 채운 옷을 하나 둘 꺼내어 정리를 하면서도 진정한 미니멀 라이프로 들어서는구나 싶어 마음이 가벼워지기도 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여전히 내 마음은 화를 내고 있었다. 마지못해 이사하는 이 상황에 대해서.

 

시작은 피아노였던 것 같다. 아니면 그전부터 애써 화를 눌러 담고 있었던 것일까. 연휴가 끝을 향해 가던 어느 날 아침, 피아노가 운반되었다. 어차피 헐값에 팔릴 연식이 오래된 피아노라 필요로 하는 친구가 있다면 그냥 주자 싶었다. 그렇게 결정을 내리고, 주변에 이야기를 하자 한 친구가 흔쾌히 가져가겠노라 했다. 피아노가 옮겨지던 날, 이 곳으로 이사 오기 전부터 집구석 한편을 차지하고 있던 녀석이 비워지는 데는 단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건장한 아저씨 두 분은 현관 미닫이 문을 뚝딱 떼어내더니 영차 하고 피아노를 들어 트럭에 옮겨 실었다. "이 피아노 의자도 가져가는 거예요?" "네." 그게 피아노와 이별하던 순간 나눈 대화의 전부였다.



 


1층 거실 한편을 차지하고 있던 묵직하고 검은 녀석의 존재감은 컸다. 30여 년 전, 아빠는 딸을 피아니스트까지는 아니더라도 제법 잘 치는 수준으로 가르치고 싶으셨다. 덕분에 나는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피아노 학원을 다녔지만 그다지 좋아하지는 못했다. 한 번은 피아노 학원이 너무나 가기 싫은 나머지 집에 숨어 버린 바람에 학원 선생님이 집까지 찾아왔던 기억이 있다. 그래도 아빠는 미련을 못 버리시고 피아노를 장만하셨고 아쉽게도 나는 아빠의 노래 실력은 이어 받았지만 피아노 연주에는 소질이 없었다. 어쩌면 좁은 공간에 갇혀서 반복적으로 해야 하는 재미없는 연습과정이 싫어서 반항한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아빠는 늘 딸내미의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는 꿈을 꾸셨지만 안타깝게도 그 꿈은 꿈으로 끝났다. 그 뒤로 세월은 계속 흘렀다. 우리 집을 방문하는 누군가에 의해 연주되는 일이 종종 생기기는 했지만, 일 년에 열 번 이하로 건반 커버를 들춰볼까 싶을 정도로 피아노는 한자리에 방치되었다. 손주들이 하나 둘 태어나고 어린아이들이 재미로 뚱땅거리며 노는 때 이외에는 쓸모가 없어진 지 오래였다. 시커멓고 커다란 채로 계속 그 자리에 있었지만 우린 치울 생각도 하지 않았고 그렇게 있는 것이 익숙했다. 이 집처럼. 늘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존재감 하나만으로 피아노의 의미는 충분했다. 때때로 조율을 해주어 청아한 소리를 울리기도 했지만 그때 잠시였을 뿐. 오랜 세월 끼고 살면서 기꺼이 버릴 수 없었던 부모님의 애착의 대상이었을 수도 있겠다. 이 집만큼은 아니지만 집의 일부가 되어버린.

 

이 집에서 다음 주인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을 모를 피아노는 결국 떠나고 말았다. 줄곧 자리만 차지했는데, 덜렁 들려 순식간에 눈 앞에서 사라지는 것을 보니 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트럭 위에 실려져 다른 행선지로 향하는 모습이 늘 한자리에 있을 것만 같이 여겨지던 터전을 옮기는 지금 우리와 다를 바가 뭐가 있을까. 그냥 여기 있던 것처럼 당연히 존재해야 할 무엇이 사라져 버린 기분. 어느 순간 생겨 버린 거실 한편 피아노의 빈자리처럼 내 마음속에도 채워지지 않을 공간이 생겨버렸다.

 

 

그렇게 당연히 늘 존재할 것 같은 세상 모든 것이 한순간 사라지곤 한다


 



이 피아노는 다른에게는 그저 낡고 오래되고 고장 투성이인 고물 피아노에 불과하지만 우리에겐 30년 삶의 기억이었다. 이 집도 누군가에게는 언덕 위의 낡은 동네에 불과해 아파트로 대체되어야 할 곳에 불과하지만, 우리에게는 어떤 것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우리만의 '집'이었다. 그곳을 이제 정말 떠난다. 빼앗기든 떠나는 기분은 상쾌하지 않다. 울컥 화도 나고 조금이라도 더 머물러 있고 싶지만 그리할 수 없음에 분노도 치솟는다.

 

 

그래도 이별할 때 배우고 성장한다


우리 집.. 그리고 그 안에서 함께 했던 많은 것들과 이별한다. 아프고 서글프다. 하지만 난 분명 배우고 있다. 즐겁고 아름답게 이별하는 방법을. 친구들을 초대해 축제를 벌이고 마지막 추억을 쌓고 있다. 아쉬움을 나누지만 지독히 비극적이지는 않다.

 

그리고 꿈꾼다. 우리 부모님이 우리 남매를 키워낸 이 집처럼, 나도 내 아이들과 함께 할 보금자리를 찾아가는 희망을 품는다. 이 집을 건강하게 추억할 미래를 꿈꾸며. 더 이상 우리 집이 아닌 어딘가에서 누군가에 의해 연주될 피아노의 모습을 상상하며.


 





나금의 방배동 생활은 여기서 멈춥니다. 이 집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들, 추억쌓기는 할 만큼 한 것 같아요. 이제 왕산리에서 소식을 전할 공간을 따로 마련했습니다.

 

https://brunch.co.kr/@etoiles


나우리와 함께 하는 부분은 그것대로 집중하면서 저 혼자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담아보려 합니다.


어떤 이야기들이 쏟아질지.. 저도 아직은 다 모르겠지만, 이사와 더불어 새로운 시작을 한다니 설레이기도 합니다. 귀한 시간 쪼개어 잠시 들려보셔도 좋을만한 이야기가 되도록 애써볼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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