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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Zam Jun 11. 2017

해인 海印 | 차무진

해인 海印
차무진 (지은이) | 엘릭시르 | 2017-05-25


십 년 전쯤 알게 된 사람이 있다당시 잘 나가던 게임회사를 때려치우고 작가가 되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힌 제법 잘 생기고 나보다 몇 살 어린 사람이었다나이 덕분에 그 사람에게서 형님대우를 받게 되었는데 난 솔직히 말해서 그를 보면서 정신 나간 친구라고 생각을 했다잘 나가는 게임 회사에서 안정적인 월급을 받으며 사는 걸 던져 버리고 작가가 되겠다니 제 정신은 아닐 거라고 생각을 했다.
얼마 뒤 이 사람이 두툼한 장편 소설을 한 권 발표를 했다김유신의 머리일까?”라는 이상한 제목의 책이었다재미있게 읽기는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잘 팔릴 것 같지 않다고 생각을 했다그리고 아마 내 생각이 맞았을 게다.
  
그에게서 오랜만에 전화가 왔다.
반갑게 통화를 하다가 갑자기 주소를 물어본다책을 새로 냈는데 한 권 보내주겠다고 한다당연히 사서 보는 게 작가에 대한 예의일 텐데 보내준다니 감사한 마음에 넙죽 받았다.


그렇게 해인(海印)이라는 제목의 책 한 권을 읽게 됐다.
차무진 작가의 소설을 읽으면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진다아마 게임 개발을 하던 경험 때문인지 등장인물이나 무대에 대한 상세한 설명그리고 무척 그럴듯한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다이 책 역시 그렇다만일 이 책을 영화로 만든다면 꽤 멋진 볼거리들이 풍성할 것 같다.
  
1979년 10병원 중환자실에서 일흔을 넘긴 여자가 죽는다그녀를 사랑하는 젊어 보이는 남자는 평온하게 이별을 대한다그녀가 죽는 순간병실에 있던 또 하나의 환자가 사라진다그렇게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 책은 우리 민족의 역사를 줄줄이 읊어댄다.
임진왜란이순신이 등장하고고려시대의 쌍성총관부를 무대로 이야기가 이어진다다시 조선시대 흥선대원군이 등장하고 팔만대장경을 보여준다.심지어 녹두장군 전봉준마저 등장인물이 된다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인물은 윤심덕그리고 이야기는 2010년 광화문 광장에서 마침표를 찍는다아니정확하게 말을 하자면 여전히 이야기는 이어지는 것이고 다만 그쯤에서 소설이 마무리되는 것일 게다.
  
세상을 바꿀천지를 개벽할 수 있는 아기장수의 탄생을 기다리는 사람들.그리고 그 아기장수를 잉태할 성모와 성모를 지키는 사람그리고 당연하겠지만 그 성모를 차지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역도 있다끝날 즈음 등장하는 반전 역시 그럴 듯 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든 몇 가지 생각들...
우선작가는 이 책을 쓰기 위해 정말 많은 자료를 뒤지고 공부를 했겠구나 싶다이 책에는 요즘은 쓰지 않는 표현이 많이 등장한다조선시대고려시대까지 아우르는 책이라 그렇겠지만 심지어 무슨 뜻인지 조차 모를 단어가 있다대략 문장 앞뒤 문맥을 보며 때려 맞추는 기분으로 읽었다책을 읽으면서 사전까지 펼쳐 들어야 한다면 아무래도 몰입해서 읽는 재미는 떨어질 테니 말이다.
작가가 왜 이런 단어와 표현을 선택했을까 궁금하다머언 과거를 더 실감나게 표현하기 위해서 아닐까 싶기도 하고어쩌면 그 단어와 표현이 아니면 이야기의 맛을 살리기 어렵다고 생각해서일지도 모르겠다.
  
이순신이 등장하는 부분에 이런 내용이 있다.
88P
여러 문집이 이 난세를 기록하겠지후세의 어느 탁월한 문장가가 당신과 저 물바람을 표현할지도 모르겠네.”
이렇게 버려진 땅에 봄이 온다는 것이 믿기지 않습니다.”
좋군그런 구절도 인용하겠지저렇게 꽃이 아름다우니 후세의 어느 문장가는 첫 구절을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라고 시작할지도 모르겠네.”

  
작가는 이 책을 쓰면서 이순신에 관한 부분에서 김훈의 칼의 노래를 읽으며 그 분위기를 참조했는지 모를 일이다그리고 칼의 노래라는 책을 쓴 김훈 작가에 대한 고마움을 이렇게 표현했을지도 모르겠다어쩌면 약간의 유쾌한 농담 한 토막?
  
이 책에서 느낀 또 하나는 인간의 두려움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아기장수’, ‘성모’, ‘박마까지 인간의 두려움이 만들어낸 것이고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지만 정작 그들마저도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아닐까 싶다.
이 책의 주인공인 남자백한은 불사의 몸이다누군가에 의해 죽음을 당하면 다시 살아난다백한이 지키는 성모는 계속 다시 태어난다. ‘아기장수를 낳을 때까지 성모의 윤회는 멈추지 않는다번번이 백한보다 한발 빠른 악인 정만인 역시 죽어도 죽지 않는다.
그들의 불사와 윤회는 인간에게서 절대 떨어지지 않는 두려움을 이야기하는 건 아닐까?
  
이 책 490페이지의 대사 중에 이런 부분이 있다.
어쩌면 이 모든 게 나의 두려움에서 시작된 것이다너무 두려워진 탓에 내 운명을 너에게 맡겼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몇 년 전이런저런 이유로 꽤 많은 책을 부지런히 읽었던 적 있다당시 읽었던 책 중에서 인간의 두려움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인류의 발전은 인간이 갖는 두려움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한다궁극적인 두려움은 결국 죽음에 대한 공포일 것이고이런 공포는 인간의 지성을 발전시키면서 다양한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인간의 두려움을 이야기하고 있고결국 마침표를 찍지 않고 끝낸다먼 옛날 고려 시대에서 시작된 성모와 박마의 굴레는 현재에 와서도 결국 끊어지지 않는다어쩌면 아기장수에 대한 바람은 인간의 종말이 닥쳐오는 그 순간까지도 이루어지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우리가 사는 건 어쩌면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은 나을 것이라는 헛된 희망,그리고 어제나 오늘이나 별 차이 없었다고 하는 실망이 반복되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 평범하고 당연한 굴레...
이 책은 어쩌면 그런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 아닐지 모르겠다.
  
맞다이 책을 읽는 내내 얼마 전 무척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도깨비가 생각났다일단 주인공은 죽지 않고 몇 백년을 넘게 산다는 공통점이 있으니...
  
내가 종종 올라가는 우리 동네 앞산의 옛 이름이 천마산이다아기장수가 태어났는데 역적으로 몰릴 것을 두려워한 가족들이 그 아기장수를 죽여 버렸고아기장수의 죽음을 슬퍼하며 말 한 마리가 하늘로 올라갔다던가 하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작가가 혹시 이 이야기를 듣고 이 책을 쓴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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