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 海印
차무진 (지은이) | 엘릭시르 | 2017-05-25
십 년 전쯤 알게 된 사람이 있다. 당시 잘 나가던 게임회사를 때려치우고 작가가 되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힌 제법 잘 생기고 나보다 몇 살 어린 사람이었다. 나이 덕분에 그 사람에게서 ‘형님’대우를 받게 되었는데 난 솔직히 말해서 그를 보면서 ‘정신 나간 친구’라고 생각을 했다. 잘 나가는 게임 회사에서 안정적인 월급을 받으며 사는 걸 던져 버리고 작가가 되겠다니 제 정신은 아닐 거라고 생각을 했다.
얼마 뒤 이 사람이 두툼한 장편 소설을 한 권 발표를 했다. “김유신의 머리일까?”라는 이상한 제목의 책이었다. 재미있게 읽기는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잘 팔릴 것 같지 않다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아마 내 생각이 맞았을 게다.
그에게서 오랜만에 전화가 왔다.
반갑게 통화를 하다가 갑자기 주소를 물어본다. 책을 새로 냈는데 한 권 보내주겠다고 한다. 당연히 사서 보는 게 작가에 대한 예의일 텐데 보내준다니 감사한 마음에 넙죽 받았다.
그렇게 해인(海印)이라는 제목의 책 한 권을 읽게 됐다.
차무진 작가의 소설을 읽으면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진다. 아마 게임 개발을 하던 경험 때문인지 등장인물이나 무대에 대한 상세한 설명, 그리고 무척 그럴듯한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다. 이 책 역시 그렇다. 만일 이 책을 영화로 만든다면 꽤 멋진 볼거리들이 풍성할 것 같다.
1979년 10월, 병원 중환자실에서 일흔을 넘긴 여자가 죽는다. 그녀를 사랑하는 젊어 보이는 남자는 평온하게 이별을 대한다. 그녀가 죽는 순간, 병실에 있던 또 하나의 환자가 사라진다. 그렇게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 책은 우리 민족의 역사를 줄줄이 읊어댄다.
임진왜란, 이순신이 등장하고, 고려시대의 쌍성총관부를 무대로 이야기가 이어진다. 다시 조선시대 흥선대원군이 등장하고 팔만대장경을 보여준다.심지어 녹두장군 전봉준마저 등장인물이 된다.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인물은 윤심덕! 그리고 이야기는 2010년 광화문 광장에서 마침표를 찍는다. 아니, 정확하게 말을 하자면 여전히 이야기는 이어지는 것이고 다만 그쯤에서 소설이 마무리되는 것일 게다.
세상을 바꿀, 천지를 개벽할 수 있는 아기장수의 탄생을 기다리는 사람들.그리고 그 아기장수를 잉태할 성모와 성모를 지키는 사람, 그리고 당연하겠지만 그 성모를 차지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역도 있다. 끝날 즈음 등장하는 반전 역시 그럴 듯 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든 몇 가지 생각들...
우선, 작가는 이 책을 쓰기 위해 정말 많은 자료를 뒤지고 공부를 했겠구나 싶다. 이 책에는 요즘은 쓰지 않는 표현이 많이 등장한다. 조선시대, 고려시대까지 아우르는 책이라 그렇겠지만 심지어 무슨 뜻인지 조차 모를 단어가 있다. 대략 문장 앞뒤 문맥을 보며 때려 맞추는 기분으로 읽었다. 책을 읽으면서 사전까지 펼쳐 들어야 한다면 아무래도 몰입해서 읽는 재미는 떨어질 테니 말이다.
작가가 왜 이런 단어와 표현을 선택했을까 궁금하다. 머언 과거를 더 실감나게 표현하기 위해서 아닐까 싶기도 하고, 어쩌면 그 단어와 표현이 아니면 이야기의 맛을 살리기 어렵다고 생각해서일지도 모르겠다.
이순신이 등장하는 부분에 이런 내용이 있다.
88P
“여러 문집이 이 난세를 기록하겠지. 후세의 어느 탁월한 문장가가 당신과 저 물바람을 표현할지도 모르겠네.”
“이렇게 버려진 땅에 봄이 온다는 것이 믿기지 않습니다.”
“좋군. 그런 구절도 인용하겠지. 저렇게 꽃이 아름다우니 후세의 어느 문장가는 첫 구절을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라고 시작할지도 모르겠네.”
작가는 이 책을 쓰면서 이순신에 관한 부분에서 김훈의 칼의 노래를 읽으며 그 분위기를 참조했는지 모를 일이다. 그리고 칼의 노래라는 책을 쓴 김훈 작가에 대한 고마움을 이렇게 표현했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약간의 유쾌한 농담 한 토막?
이 책에서 느낀 또 하나는 인간의 두려움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아기장수’, ‘성모’, ‘박마’까지 인간의 두려움이 만들어낸 것이고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지만 정작 그들마저도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아닐까 싶다.
이 책의 주인공인 남자, 백한은 불사의 몸이다. 누군가에 의해 죽음을 당하면 다시 살아난다. 백한이 지키는 ‘성모’는 계속 다시 태어난다. ‘아기장수’를 낳을 때까지 성모의 윤회는 멈추지 않는다. 번번이 백한보다 한발 빠른 악인 정만인 역시 죽어도 죽지 않는다.
그들의 불사와 윤회는 인간에게서 절대 떨어지지 않는 두려움을 이야기하는 건 아닐까?
이 책 490페이지의 대사 중에 이런 부분이 있다.
“어쩌면 이 모든 게 나의 두려움에서 시작된 것이다. 너무 두려워진 탓에 내 운명을 너에게 맡겼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몇 년 전, 이런저런 이유로 꽤 많은 책을 부지런히 읽었던 적 있다. 당시 읽었던 책 중에서 인간의 두려움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인류의 발전은 인간이 갖는 두려움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궁극적인 두려움은 결국 죽음에 대한 공포일 것이고, 이런 공포는 인간의 지성을 발전시키면서 다양한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인간의 두려움을 이야기하고 있고, 결국 마침표를 찍지 않고 끝낸다. 먼 옛날 고려 시대에서 시작된 성모와 박마의 굴레는 현재에 와서도 결국 끊어지지 않는다. 어쩌면 ‘아기장수’에 대한 바람은 인간의 종말이 닥쳐오는 그 순간까지도 이루어지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우리가 사는 건 어쩌면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은 나을 것이라는 헛된 희망,그리고 어제나 오늘이나 별 차이 없었다고 하는 실망이 반복되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 평범하고 당연한 굴레...
이 책은 어쩌면 그런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 아닐지 모르겠다.
맞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얼마 전 무척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도깨비’가 생각났다. 일단 주인공은 죽지 않고 몇 백년을 넘게 산다는 공통점이 있으니...
내가 종종 올라가는 우리 동네 앞산의 옛 이름이 천마산이다. 아기장수가 태어났는데 역적으로 몰릴 것을 두려워한 가족들이 그 아기장수를 죽여 버렸고, 아기장수의 죽음을 슬퍼하며 말 한 마리가 하늘로 올라갔다던가 하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작가가 혹시 이 이야기를 듣고 이 책을 쓴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