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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Zam Aug 19. 2020

백일몽? 상상의 끝! 황희 작가의 "기린의타자기"

노랑잠수함의 북리뷰

백일몽? 상상의 끝은 어디까지일까? 황희 작가의 "기린의타자기" - 노랑잠수함의 북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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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의 타자기  | 미스티 아일랜드 Misty Island  

황희 (지은이)들녘2020-07-14


 황희 작가의 신작 제목은 “기린의 타자기”이다.

 책 제목의 기린은 아마도 기린아 麒麟兒에서 나온 표현인 것 같다.


 어쩌다 보니 황희 작가의 작품을 몇 권 읽었다.

 월요일이 없는 소년, 빨간 스웨터, 부유하는 혼, 내일이 없는 소녀 그리고 이번에 새로 나온 기린의 타자기까지...

 검색을 해보니 단편모음집도 있는 것 같은데 그것까지는 읽지 못했네.


 미스터리? 판타지? 혹은 스릴러?

 딱 한 가지 장르로 한정지을 수 없는 것이 이 책 작가가 발표한 작품의 특징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작가는 우리네 살아가는 속에서 만나는 더 없이 슬픈 비극을 소설로 다시 빚어낸다.

 전작인 “내일이 없는 소녀”가 그랬고, 그 전에 발표한 작품들이 그랬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고통 받는 사람이 있고 그 고통을 벗어나려는 몸부림, 그리고 크건 작건 그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누군가가 있다. 그 작은 관심이 피해자에게 용기를 주고 변화의 동력이 되어 결국에는 희망을 찾는다. 그렇게 해피엔딩...


 사람은 절대 혼자 살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고 상호 유기적인 존재이며, 결국 구원자 역시 저 먼 하늘 위의 신이 아니라 내 곁에 함께 살아 숨쉬는 사람이라는 것...

 이것이 황희 작가의 책이 갖는 큰 특징이 아닐까 싶다.


 지금까지 읽었던 황희 작가 작품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꼽으라면 방금 언급한 전작 “내일이 없는 소녀”다.

 그 책의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은 내가 지금까지 읽었던 책들 중에서 단연코 최고의 시작과 끝이었다고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내 나이 열여덟 이것으로 끝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교복이 너무 잘 어울려 코끝이 찡했다.”로 마침표를 찍었고 책을 읽은 지 1년 반이 지난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그래서일까?

 이 책을 펼치자마자 첫문장과 마지막 문장을 찾아 읽었다.

 “모두 맨발이다.” 이게 이 책의 프롤로그 첫 문장이다.

 그리고 에필로그 마지막 줄은 “비행기 안은 백일몽에 빠지기에 좋은 곳이다.”로 끝난다.


 나는 책을 읽을 때 습관이 있다.

 첫 페이지를 대충 읽고, 마지막 페이지를 먼저 읽는다.

 뭐, 딱히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뜬금없고 의미도 모른 채 읽은 마지막 페이지가 책을 읽는 동안 조금씩 자릴 잡아가는 느낌이 꽤 재미있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뒤, 첫 문장을 다시 읽었다.

 “모두 맨발이다.” 뒤에 이어지는 이야기를 떼어내고 이 문장만 따로 읽으니 책 전체의 내용과 겹쳐지며 묘한 여운이 남는다.


 그래. 어쩌면 이 세상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결국 맨발인 걸지도 모르지.


 마지막 문장에서 눈에 띄는 단어는 “백일몽”이다.

 이 책의 시작과 끝을 관통하는 주제다.

 302페이지에서 작가는 제시카 라헤이라는 작가의 컬럼 하나를 인용해서 갖다 놓았다.

 컬럼의 제목은 “당신의 아이에게 백일몽 꾸는 법을 가르치세요(teach kids to daydream).”이다.

 “백일몽은 겉으로 보기에 시간을 죽이는 게으른 행동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창조성과 학습의 숨겨진 원천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뇌는 두 개의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다. 일하는 뇌와 백일몽을 꾸는 뇌다. 두 가지는 동시에 작동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가 일하는 네트워크를 작동시킬 땐 상상에 잠긴 네트워크를 차단한다.”


 아마 황희 작가는 이 문장을 만난 뒤 이 책, 기린의 타자기를 구상하지 않았을까?


 소설을 리뷰 할 땐 참 조심스럽다.

 줄거리를 이야기하다 보면 스포일러가 되어 버리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고, 줄거리 없이 리뷰를 쓰면 “무슨 소설 리뷰가 줄거리도 없어?”가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이 책은 줄거리 소개가 책 읽는 재미을 빼앗아 버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최대한 간단하고 단순하게...

 가정폭력의 피해자인 엄마와 딸의 이야기다.


 그 폭력에 길들여진 엄마와 폭력에 맞서는 대신 탈출하는 딸이 어떻게 각자의 세상을 살아가고 어떻게 화해하는지 이야기한다.


 미스터리, 판타지, 스릴러라는 키워드에 걸맞게 이야기가 진행된다.

 어디까지가 현실인지조차 분간이 애매하게 진행되던 이야기는 뒤로 갈수록 아주 명확하게 구분을 하고 선을 긋는다.


 처음에는 뭐가 뭔지 모르지만 잘 읽히는 맛에 책장을 넘기지만, 후반부로 가면 이야기는 아주 깔끔하게 정리된다.


 이렇게 정리하는 것도 작가의 능력이겠지?


 만일 누군가 내게 “황희 작가의 소설 재밌어?”라고 묻는다면 아무런 거리낌 없이 “응. 재미있어!”라고 대답하지는 못할 것 같다.


 나는 황희 작가의 작품 네 권을 읽었고 그래서 익숙한 느낌이 드는 지금은 그의 작품이 무척 재미있지만, 처음 접하는 독자라면 무척 낯설고 불편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런 부분 역시 황희라는 작가의 의도일지도 모른다.

 세상은 원래 불편하고 낯선 곳이니 소설이라고 해서 편하고 안락하게 읽히는 것만 있어서는 안 된다는...


 하지만 그의 작품들은 일단 책장이 잘 넘어간다. 술술 읽힌다. 물론 그 과정에서 머릿속이 무척 복잡해지고 쉽게 매듭이 풀리지 않는 실뭉치가 되기도 한다. 그 실뭉치를 풀려 하지 말고 그냥 읽으면 된다. 그러면 뒤로 가면 작가가 알아서 꼬인 부분도 매듭도 다 풀어준다.

 그러니 일단 책장을 넘기고 이 책의 첫 문장, “모두 맨발이다.”부터 읽어나가면 된다.


 이 책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느낌을 정리하고 마무리 지어야겠다.

 몇 년 전, 한동안 나는 “가정법‘이라는 단어에 집착했었다.

 ”만약 ~ 하다면...“이고, 영어로는 ‘If ~ Then” 쯤 될 것이다.

 오죽 했으면 그 당시 내가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명함에는 내 이름 석 자 앞에 마치 호처럼 “만약”이라고 써두었을까?


 언젠가 책에서 읽었던 문단이 그 흔히 말하는 “화두”를 내게 던진 것이다.


 내용은 대충 이랬다.

 “사람이 집단을 이루고 사는 곳에서는 문화나 문명의 수준이나 집단의 규모와 상관없이 가정법을 사용한다. 이 가정법이 아주 정교하게 발달한 인간집단일수록 문화와 문명은 더 많이 발달한 모습을 보인다.

 생각해보면 우리 인간은 현실이 아닌 가정에 살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원시시대에는 야생동물의 습격을 피할 수 있는가에 대한 가정과 고민이 안전한 주거방식을 만들게 되었고, 먹거리를 오래 보존하는 기술을 발전시켰다는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가정법 언어습관”은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돈”이라는 시스템을 만들게 된다. 사실 돈 그 자체는 말 그대로 무가치하다. 돈이라는 형태는 수시로 바뀌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들은 돈에 일정 수준의 가치를 부여하고 그 돈의 크기에 따라, 즉 돈에 부여한 가치의 양에 따라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꼼꼼하게 따진다.


 그로 인한 부작용이 무수히 많지만 여전히 돈이 작동하는 것은 아직 우리의 상상력이 돈 이후의 가치 부여 대상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뭐, 대충 이런 내용이었는데...


 그런 관점으로 세상을 보면서, 물론 내 삶이 비약적으로 변화한 건 이니지만, 조금은 다른 시각과 해석을 시도하게 되었다.


 이 책은 내가 말하는 습관으로는 “가정법” 또는 “상상”에 해당하고, 이걸 작가는 “백일몽 daydream”으로 드러낸다.

 그리고 그 백일몽이라는 단어로 할 수 있는 꽤나 비약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이 아닌가 싶다.


 오늘 밤, 나는 또 다른 상상을, 황희 작가의 표현을 따르자면 백일몽에 빠져들어야겠다.


 작가의 다음 작품이 여전히 기대된다.


https://youtu.be/VfzSo9sBbY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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