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oZam Oct 05. 2020

이언 피어스 핑거포스트, 1663

노랑잠수함의 북리뷰

무명강사 블로그 : http://zurl.io/lecture

무명강사 페이스북 : https://www.facebook.com/mmlecture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까? 이언 피어스의 핑거포스트, 1663 - 보급판 세트 

이언 피어스 (지은이) | 김석희 (옮긴이) | 서해문집 | 2005-03-10 | 원제 An Instance of the Fingerpost (1997년)


 리뷰를 쓰기 위해 검색을 해보니 워낙 오래전에 출판된 책이고, 현재는 절판된 상태다. 중고로나 몇 권 나와 있을까, 구입하기 쉽지 않은 책이다.


 그럼 난 이 책을 어떻게 구입했는가 하면, 서울 은평구 연신내에 큼직한 알라딘 중고서점이 있다. 가끔 거길 들르면 눈에 띄는 책 몇 권 사들고 나오곤 하는데, 절대 중고라고 볼 수 없는 보관상태(어쩌면 재고를 내놓은 걸지도 모르지만...)와 핑거포스트라는 제목에 이끌려서라고 말할 수 있겠다. 중고책방이니 싼값도 한몫했음은 당연한 거고...


이 책은 하나의 사건을 네 명의 사람이 진술하는 내용이다.

영국의 중세시대, 왕정이 심하게 위협받던 그 시기에 벌어진 의문의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처형 받게 되는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모두 네 명, 그들은 각자 자신의 시각으로 살인사건과 관련된 진술을 한다. 그것도 사건이 벌어지고도 한참이 지나서, 젊어서 겪었던 사건에 대한 뒤늦은 서술...


이 책의 표지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 “지식 추리 소설의 대가, 이언 피어스의 최고작”

글쎄? 지식추리소설이 정확하게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한가지는 확실하게 알 것 같다. 작가는 중세 영국에 대해 상당히 박식한 사람이든, 철저하게 공부를 한 사람이든 둘 중 하나라는 것.


이 책을 읽으며 내가 가장 먼저 놀란 것은 중세 시절, 즉 이 책의 주 무대가 되는 시기인 1663년 그 당시 영국은 그다지 볼품없는 나라였다는 점이다.


영국인들 스스로도 자국의 문화에 대한 자긍심도 높지 않고, 실제 문화를 향유하는 것도 지극히 일부에 국한되어 있었던 것 같다.


게다가 지금 우리가 말하는 신사의 나라 영국이라는 수식어도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뭐랄까? 우리가 자주 보는 역사 드라마 속에서의 별볼 것 없는 조선시대의 몰락한 양반을 보는 느낌?


책을 읽는다는 것은 정보를 얻든, 작가의 이야기를 듣든, 무언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그런 관점에서 이 책은 두루 유익하다.


중세 영국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는 점, 즉 정보의 제공 측면에서 무척 훌륭한 역할을 했다.

그리고 살인사건과 범인에 대해 추리하는 진지한 게임도 즐거웠다.


누군가 회고록을 집필한다고 하면 보통 진실을 이야기할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렇지 않다는 걸 다 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무척이나 욕을 많이 드시는 전직 대통령 두 분이 회고록을 출간해서 욕을 엄청 드셨고, 급기야 그 중 어떤 양반의 책은 배포금지까지 당했으니...


이 책은 살인사건을 회고하는 글이다. 회고하는 사람은 당시 죽은 사람, 그를 죽였다고 의심받는 여성과 어떤 형태로든 관계있는 이들이고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사건을 이야기한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뒤 “결국 믿을 인간 하나도 없다는 이야기군!”라는 생각을 했다. 네 번째 회고를 읽고 나서야 어떻게 된 사건인지 알 수 있게 만드는 작가의 정교한 장치가 대단하다.

그리고 회고를 한다고 해서, 설령 그게 추리소설 속의 이야기일지라도 절대 믿지 말라는 경고도 한 셈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1663년이라는 그 시기는 역사적으로 꽤 중요한 시기였던 모양이다. 영국은 내전이나 다름 없는 상황이었던 모양이고, 1600년대 초에는 메이플라워호가 북아메리카로 영국의 청교도들을 실어나르기 시작했으니 1663년에는 아마도 미국으로 건너가는 영국인도 흔했던 시기인 모양...


이 책의 주인공인 ‘살인누명을 쓴 여인’ 역시 그렇게 미국으로 건너가는 배를 탄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작가의 의도가 무엇이었든 간에 나로서는 조금 아쉬웠던 건 이 여성을 핍박받으며 스스로를 구원하고, 궁극적으로는 신이 되어 버린 존재로 묘사했다는 게 아쉽다.


같은 사건을 네 번이나 반복해서 읽어야 한다는 지루함도 있지만 그 지루함을 중세영국에 대한 세밀한 묘사로 잘 달래주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읽었던 추리소설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 방식이 새롭다.


https://youtu.be/tFXxtGD0Nog

매거진의 이전글 김이나 작가의 (나를 숨 쉬게 하는) 보통의 언어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