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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Zam Apr 14. 2021

"내성적인 사람은 강의 못 하나요?"

노랑잠수함의무명 강사생존기 시즌 2

"내성적인 사람은 강의 못 하나요?" 30년 경험으로 알려주는 확실한 해결책

- 노랑잠수함의 무명 강사 생존기 시즌 2


 * 내성적인 사람은 강사 못 하나요?


 강의를 하면서 자주 받는 질문을 꼽으라고 한다면 대략 두 가지쯤 된다.

 하나는 “강사 할 만해요?”라는 거고, 또 하나는 “내성적인 사람도 강사 할 수 있나요?”다.


 첫 번째 질문은 여러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을 것이다. 안정적인 직업인가, 수입은 괜찮은가, 업무 스트레스의 강도는 어떤가 등등...

 따라서 한 마디로 “할 만하다” 또는 “그렇지 않다”라고 대답하기 어렵다.


 반면 “내성적인 사람도 강사 할 수 있나요?”는 딱 한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본다. 대중 앞에 서는 걸 힘들어하는 사람이 강의를 하고 싶은데 가능하겠느냐는 물음이다.


 이 질문에 대해서는 앞선 질문과 달리 명확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그것도 아주 잘할 수 있다!”가 그것이다.

 내가 그렇기 때문이다.


 나 역시 꽤나 내성적이어서 지금도 ‘강의를 제외한’ 사람이 모이는 곳에 참여하는 걸 무척이나 불편해한다. 인터넷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동호회가 몇 있는데, 그 동호회의 오프라인 모임에는 참여해본 적이 거의 없다.

 어쩌다 한 번 참석해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가 “노랑잠수함님, 조용한 성격이시네요. 게시판에서는 무척 적극적으로 참여하시던데...”라는 말이다.


 유튜브 채널에 예전 강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영상을 올린 적 있는데 그 영상에서도 소개했던 나의 첫 번째 강의 에피소드는 “강의 시작한 지 20분 만에 울면서 도망친 사연”이었다.

 주위에서 강의 경험이 없어서 떨린다, 긴장된다고 토로하시는 분께 꼭 들려드리는 나의 경험담이다.


 30여 년 전, 압구정동에 있는 디자인 학원에서 강사로 근무를 시작했다.

 학원 원장님께서 경험이 없는 나를 배려해주신다는 마음으로 부담 없이 강의를 하라고 하셨는데, 수강생이라고는 달랑 여학생 한 명이 있었다.


 매킨토시 컴퓨터를 한 번도 본 적 없다고 말하는 여학생에게 전원을 커는 법, 마우스 사용하는 방법, 전원 끄는 법을 알려주는 첫 수업이었다.


 말도 더듬거리고 얼굴이 벌게져서 쩔쩔매는 나를 이상한 사람 쳐다보듯 하는 그 여학생의 눈길이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결국 20분도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죄송합니다” 한마디 던지고 눈물 글썽이며 강의실에서 도망쳤다. 강사실에 있는 가방도 챙기지 못하고 그대로 집으로 돌아와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혼자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난다.


 연애도 해보고, 직장에서 여직원들과도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는 데 문제가 없는 지극히 평범한 성격인데 강의실에서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건 또 다른 차원의 일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때, 난 두 번 다시 강의라는 걸 못할 것 같았다.

 숨이 차고, 발음은 꼬이고, 얼굴을 달아오르고...

 그 끔찍한 경험을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았다.


 그때 내게 용기를 북돋아 준 사람은 그 학원의 원장이었다.

 전화를 받고 약속 장소로 나가면서 잔뜩 혼나고 퇴사 처리될 거라고 예상했는데, 원장님은 내가 두고 간 가방까지 챙겨 들고 나오셔서 함께 포장마차에 가자고 하셨다.


 원장님 자신도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처음 강의할 때 무척 힘들었다며 술을 권하셨다.

 그때 원장님께서 알려주신 방법은 “외우기”였다.

 한 달 후에 다시 개강을 할 테니 그때까지는 매일 근무시간에 강의 원고를 만들라고 하셨다.


 강의 일정을 보고 매시간 어떤 내용을 강의할지 상상하며 혼자 강의를 해보고, 그 내용을 녹음하고 녹음한 내용을 받아 적고...

 그렇게 충분한 연습을 한 뒤 새로 강의를 시작하면서 내가 준비한 또 하나는 두툼한 스프링 노트였다.

 강의 틈틈이 무슨 말을 했는지, 어떤 기능을 설명했는지, 음료수를 마셨는지, 수강생과 농담을 했는지, 어떤 질문을 받았는지... 심지어 강의 시작시간과 끝나는 시간, 중간 휴식시간까지 메모를 했다.

 나중에 그 노트는 십 년 넘게 내 강의를 지켜주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내성적인 성격을 고치기 위해 스피치를 배운다거나, 많은 연습을 한다는 사연을 종종 접한다. 마치 내성적인 성격은 사회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만다는 부정적인 요소라고 보는 것 같다.


 정말 그럴까?

 내성적인 사람은 직장 생활도, 사회생활이나 인간관계도 제대로 할 수 없는 문제를 떠안고 사는 심각한 상황인 걸까?


 물론 내성적인 성격이 조금 불편할 수는 있다.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활발하고 유쾌하게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을 보면 대단하다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그 몇몇 사람들이 대중의 분위기를 활기차게 이끌어가는 덕분에 유대감이 커지고 결속력이 다져지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남들과 전혀 어울리지 못하고 말 한마디 못하고 혼자 구석을 찾아 숨어든다면 그건 내성적인 성격이라고 볼 수 없다. 그건 심리 상담을 받아야 할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적절한 치료가 필요한 병일지도 모른다.


 “내성적인 사람은 강의를 못 하나요?”라는 질문을 던질 정도라면 대부분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조금 불편하고, 정말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남들 앞에서 자신의 의견을 밝히는 걸 꺼리는 정도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건 아마도 우리나라의 교육과도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학교에서는 아직도 주입식 교육이 만연하고 학생들을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고 친구들과 토론할 기회를 거의 얻지 못한다. 그렇게 초, 중, 고 12년을 보내고 나면 대중 앞에서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고 반박하는 경험을 얻지 못한다.


 첫 취업을 앞에 둔 젊은 층에서는 심지어 직장에서 전화 응대하는 것조차 어려워한다고 하는데, 이런 문제들은 결국 실제 상황을 접하면서 배우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지 않을까 싶다.


 사실 내성적인 성격이라 강의가 힘든 게 아니라, 대중 앞에서, 불특정 다수 앞에서, 모르는 사람 앞에서 이야기를 하고 이끌어 가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다.


 활발하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해서 강의를 쉽게 하는 건 절대 아니다.

 강의는 성격으로 하는 게 아니고 실력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성적인 사람은 강의를 못 하나요?”는 전제가 잘못된 질문이다.

 제대로 질문을 하자면 “강의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대답 역시 지극히 평범하다.

 “충분한 준비와 연습이 필요합니다.”



https://youtu.be/8mC3oof8n5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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