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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Zam Aug 03. 2021

강사의 가방, 그 속엔 무엇이 들어 있을까?

무명 강사노랑잠수함의 가방 속 들여다 보기

강사의 가방, 그 속엔 무엇이 들어 있을까?

- 무명 강사 노랑잠수함의 가방 속 들여다 보기


 대학 시간강사를 비롯한 출장 강의를 전문으로 하는 강사를 “보따리장수”라고 부르기도 한다.

 대학교나 직업학교와 같은 특정 기관에 소속된 강사는 강의실 이외에 자신만의 방이나 책상을 갖고 있어서 강의실에 들어갈 때 강의에 필요한 최소한의 자료만을 들고 간다.


 이에 반해 출장 강사는 강의실 외에 따로 머무를 공간이 없는 경우가 많고, 설령 있다고 해도 딱히 이용해야 할 필요가 적다.

 그래서 강의실에 들어갈 때 큼직한 가방을 그대로 들고 들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모습이 마치 보따리에서 물건을 주섬주섬 꺼내어 파는 보따리장수를 연상하는 것일 테다.


 그 보따리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내가 대학이라는 곳에서 처음 강의를 한 건 1999년 9월.

 인천에 있는 2년제 대학에서 컴퓨터 그래픽 관련 과목을 담당하게 됐다.


 처음 강의를 하러 가서 학과 사무실에 들렀다가 지도교수 연구실에서 학과 교수님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나와 같은 시간강사들은 죄다 가방을 하나씩 들고 있었고, 학교에 소속된 교수들은 복장도 편해 보였고 손에 수첩 정도 말고는 별다른 걸 들고 있지도 않았다.


 연구실은 벽면을 빙 둘러 책꽂이와 선반이 자리를 잡고 있었고 다양한 책과 논문, 자료들이 수북했으며 책상에는 컴퓨터와 함께 서류 더미도 보였다.

 연구실 한쪽에는 테이블과 소파까지 갖추어져 있어서 우리는 그곳에 앉아서 조교가 건네준 커피를 한 잔씩 들고 담소를 나누었다.


 강의 시간이 되자 교수님들은 출석부와 강의에 필요한 자료를 들고 강의실로 향했고, 나를 비롯한 시간강사들은 가방과 출석부를 들고 강의실에 들어섰다.


 강의실은 강의하기에 딱 알맞게 꾸며져 있었으며, 가방을 둘만 한 곳이 마땅하게 없었다. 결국, 가방은 책상 아래에 아무렇게나 내려놓았다.

 강의를 진행하다가 강의 자료가 가방 속에 있다는 걸 떠올리고는 가방을 뒤적여서 자료를 꺼내야 했다.


 그때 이후 강의 경력이 쌓이면서 강의 중에 사용할 자료들은 꺼내기 쉬운 앞쪽에 넣거나 따로 꺼내 들고 강의실로 들어갈 정도까지 요령이 생겼다.


 아마 대학에 출강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다 같은 생각을 할 텐데, 그 당시 나는 정말 연구실을 가진 교수들이 부러웠다.

 연구실에 앉아서 강의 준비하다가 필요한 것만 딱 들고 강의실로 향하는 그 뒷모습이 정말 부러웠다.


 대학에 따라서는 시간강사-때에 따라서는 외래강사라고 부르기도 한다-를 위한 강사 휴게실을 갖춘 곳도 있기는 했다.

 큼직한 공간에 편하게 앉을 수 있는 소파와 컴퓨터 몇 대, 가끔은 강사 이름이 적힌 사물함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제아무리 잘 갖춰져 있다고 해도 불특정 다수가 사용해야 하는 강사 휴게실은 말 그대로 잠깐 쉬는 곳 이상의 의미는 갖지 못했다.


 나는 강의를 많이 할 때는 일주일 동안 대학교 세 군데와 직업학교까지 강의를 다녔다. 대학 강의의 경우에는 한 학교에서 오전, 오후 강의를 진행하기도 했으니 강의 중간 애매하게 쉬는 시간이 가장 난감했던 기억이 난다.


 결국 시간강사는 강의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모든 걸 다 챙겨서 들고 다녀야 한다.

 그럼 시간강사의 가방에는 도대체 어떤 것들이 들어있을까?


 처음 대학 강의를 나갔을 때, 무얼 넣어서 들고 가야 할지 몰라서 이것저것 모조리 쑤셔 넣고 갔단 기억이 난다.


 그때는 컴퓨터도 지금만큼 발달하기 전이었으니 필요한 자료는 대부분 플로피 디스켓이나 외장 하드디스크를 이용해야 했다.

 강의용 자료를 출력해서 정리한 클리어 파일도 있어야 하고, 필기를 위한 다이어리와 볼펜류도 필요하다.

 레이저 포인터나 강의 지시봉과 같은 강의에 실제로 사용할 도구도 자리를 차지한다.

 강의 중간에 필요할지 모르니 물이나 음료수를 넣은 텀블러도 하나쯤 있어야 할 것이고, 중간 쉬는 시간을 활용하기 위해 책도 한두 권쯤 갖고 다녀야 한다.


 요즘엔 플로피 디스켓이나 하드디스크 대신 USB 메모리를 사용하고, 중요한 자료라면 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용해서 자료를 올리기도 한다.

 가방이 좀 가벼워졌을까? 만일을 대비한 노트북이 자리를 차지한다. 중복이라는 걸 뻔히 알고 막상 강의 때 사용할 일이 거의 없다는 걸 모르지는 않지만, 태블릿도 빠지지 않고 챙긴다.


 주섬주섬 챙겨 넣다 보면 제법 큼직한 백팩에 꽉 들어찬다.

 그런데 막상 강의하러 가서 가방을 전혀 열지 않고 강의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가끔은 무거운 가방에 짜증이 나서 과감하게 작은 손가방 하나 달랑 들고 가는 때도 있다. 하지만 그건 어쩌다 한 번일 뿐, 그다음 주에는 여전히 큼직한 백팩을 들고 낑낑거린다.

 일종의 안전판이라고 할까?


 강의는 철저하게 계산된 이벤트이고, 강사는 무대 위의 연기자이자 강의 시간 전체를 연출하고 관리하는 총감독이다.


 관객이라고 할 수 있는 수강생들에게 무엇을 이야기하고 어떤 걸 보여줄지 알아서 결정하고 진행하는 게 강사가 해야 할 일이다.


 게다가 그 무대는 반복된다. 절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같은 관객을 앞에 두고 매번 조금씩 다른 이야기를 꾸준히 연출해야 한다.


 혹시라도 무대 장치가 내가 원하는 대로 꾸며져 있지 않을 수도 있고, 가끔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도 있으며, 모든 게 문제없이 돌아가는 상황이라고 해도 내가 준비한 것과 동떨어진 경우도 있다.


 그런 상황이 되면 강단에 오르는 강사는 위축될 수밖에 없고, 결국 그날의 강의는 망쳤다는 자괴감에 빠져들 수도 있다.


 사실 강사가 그 무거운 가방을 들고 다니지 않아도 강의하는 데에는 거의 지장이 없다. 요즘처럼 컴퓨터와 인터넷이 흔하고 누구나 스마트폰을 이용해서 필요한 정보를 검색할 수 있는 세상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그런데도 강사의 가방 무게는 줄어들지 않는다.

 그 가방 안에 들어있는 온갖 잡다한 물건들은 어쩌면 강사가 강의에 쏟는 열정, 바로 그것일지 모른다.

https://youtu.be/9sS4ounpi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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