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에 느꼈던 불안은 대부분 실없는 것들이었다. ‘어떻게 하면 덜 혼날 수 있을까’, ‘실수로 집에 있는 물건이 망가졌는데 이걸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까’라는 것부터, ‘친구가 화를 빨리 풀었으면 좋겠는데’,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을까’ 등 내 나름의 진지한 문제들까지 대충 이런 것들이었다. 그러나 당시에 느낀 불안은 긴장에 더 가까운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불안'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가까이, 자주 왔으며 내 몸에 지장을 주기까지 했다. 불안함을 느끼는 순간 심장이 빠르게 뛰었고 집중력이 떨어졌으며 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어떨 때는 내가 원하는 방향과 정반대로 상황이 벌어지는 꿈을 꾸기도 했다. 이처럼 불안함을 느낀다는 건 나 자신을 갉아먹는 일이기도 하다. 이제는 불안이 크기가 다를 뿐 중요한 일에서 점점 사소한 일로 번져갔다.
책 사이에 책갈피를 꽂아두는 일. 나에게 책갈피는 있어도 없어도 불안한 물건이다. 책갈피는 책을 애써 구기거나 표시를 하려고 낙서를 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이 좋은 물건을 두고 나는 종종 불안을 느끼곤 한다. 내 급한 성격 탓에 책을 ‘휙!’ 하고 들었는데 바람과 힘에 의해 책갈피가 빠져나올 수도 있고, 책을 읽으려고 책갈피를 뺐는데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이 풀려 책이 접혀버린다면 나는 내가 읽은 곳을 애써 기억해내야 한다.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책 펼치는 부분이 아래로 향하게 들었다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책갈피가 떨어질 수도 있다.
해외여행 갔을 때 데이터 무제한 유심을 구입했음에도, 몇 번이고 내가 구입한 유심의 정보를 검색해 보면서 와이파이가 터지는 장소에서는 굳이 (데이터를 사용하는 것보다 느린) 와이파이 사용을 고집하기도 했다. 외출할 때는 또 얼마나 유난을 떠는지 모른다. 휴대폰, 지갑, 충전기, 화장품 등 챙길 것은 다 챙겼는지 가방을 뒤적거리며 수도 없이 괴롭힌다. 모르는 장소에 가는 날이면 전날 밤부터 시뮬레이션에 들어간다. 지도를 잘 보는 편이 아니라 일단 가는 법을 찾아 놓고도 로드뷰를 따라 미리 그곳에 다녀오기도 한다. 그리고 가는 법과 그 주변 지도를 캡처해서 사진첩에 저장을 하고 확인까지 해야 마음이 한결 편해진다.
나를 괴롭히는 가장 힘든 일은 중요한 일을 앞두고 일단 부정하고 보는 버릇이다. 한 마디로 ‘망치면 어떡하지’ 같은 것들이다. 예를 들어, 완벽에 가깝게 시험 준비를 했는데 시험지를 받자마자 머릿속이 하얘지는 상상을 한다. 선배에게 내가 만들어낸 결과물에 대한 피드백을 받을 때, 할 말이 없을 정도로 형편없을까 봐 전전긍긍한 적도 허다하다. 아니면 친구와 1시까지 만나기로 했는데 눈을 떠보니 1시가 훌쩍 넘었고 부재중 전화가 5통 넘게 찍혀 있다면 그 친구는 나를 다시 만나주지 않을 거다. 그렇게 나는 친구들을 잃어갈 것이다.
나는 아직까지도 같은 꿈을 반복해서 꾼다. 긴 여름방학을 지나 개학하는 날. 실내화, 운동화를 두고 와 맨발이 되어 있거나 기껏 해온 방학 숙제를 다 놔두고 오는 멍청한 순간들이 펼쳐진다. 그리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감한 상황에 처한 어린 나를 마주하게 된다. 잃어버리는 과정은 생략되지만 잃어버린 후 나의 불안한 모습이 적나라하게 꿈에 그려진다.
이런 사소한 불안을 넘어서 어쩌면 내가 살아가는 것 자체가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 불안함을 안고 가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한 때는 ‘불안하다’라는 마음이 크게 와닿지도 않았고, 그걸 깊게 느낄 만큼 세상의 많은 걸 알지도 못했다. 그리고 그만큼 열심히 살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그냥 흘러가면 흘러가는 대로 나는 딱 이 정도니까, 거기에 머물렀다. 크게 욕심을 부리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불안함을 느끼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뭐가 됐든) 온전히 내 잘못이기 때문에
-아무리 잘해도 남들만큼 잘하지 못해서
-생각이 너무 많아서
-그냥 내가 문제다
하지만 아닌 것 같았다. 아니라고 하고 싶다.
매번 100만큼의 노력이나 힘을 들이진 않았겠지만 그 뒤에는 항상 잘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다. 상을 받진 못할지언정 칭찬 한 마디만 듣고 싶었고 결과가 완전하진 않아도 내 노력을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잘 해내고 싶었다. 그게 일이든 사람과의 관계든 나를 나타내는 모든 것들, 그게 뭐가 됐든 간에.
내가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려는 순간, 불안은 나에게 격려를 하고 있었다. 어차피 결과가 뻔히 보이는 일들, 기대가 없는 일들에 대해서는 진작에 포기했겠지만, 그렇지 않기에 내일을 기대하며 그 속에 불안함을 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여기서 잘못하면 안 되니까, 내 행동에 좀 더 떳떳해지기 위해 보호막을 치는 것 같은.
다시 말해, 불안의 순간들은 잘하기 위해 나와 상대방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갖는 마음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잘하려는 순간 결과로 이어질 때까지 중심을 잡아주는 무언가가 되기도 한다. 어느 순간 불안하다는 걸 애써 부정하지 않기로 했다. 물론 좋은 결과만 가져다주는 건 아니었지만 반대로 부정적인 결과만 가져다주는 것도 아니니까. 불안하다는 것은 결코 위태롭다는 신호가 아니다.
불안은 ‘잘 해내기 위해 견뎌내야 하는 일종의 심리적 압박감’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