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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유표 Dec 27. 2015

20. 지속가능한 삶의 핵심, 순환 (4)

빈부격차, 저임금노동, 자유무역체제에 의한 자본의 정체

자본의 순환 1
빈부격차와 저질의 일자리


자본의 순환은 기본적으로 상품과 서비스, 용역의 거래로 이루어집니다. 물건을 사고파는 대가로 돈을 주고, 노동을 제공하는 대가로 월급을 받는 것이지요. 다른 한편으로 자본(금융) 그 자체가 순환의 매개체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본을 투자하여 창업한 기업에서 수입을 거둔다든지, 주식 투자, 부동산 거래, 은행과 기업에 돈을 빌려주어 이자를 받으면서도 돈을 벌 수 있습니다. 때론 상속을 받아서 돈을 얻기도 하지요. 이른바 "돈이 돈을 버는" 자본주의 특유의 시스템입니다.


어쨌건 이렇게 얻은 수입들은 "소비"와 "수요"의 원천이 되며, 기업들이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하고 판매하는데 중요한 축이 됩니다. 따라서 소비자들이 돈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 구매력이 높아지고, 기업들은 그만큼 물건을 많이 팔 수 있으니 시장이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갖추어지는 것이지요.


다만 돈이 순환하는 방법에서 노동의 대가가 아닌 금융 거래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게 되면 몇 가지 부작용이 발생하게 됩니다. 사람들의 개인 능력에 따라 돈을 버는 것보다 타고난 재력으로 돈을 버는 것이 더 많은 수입을 거두게 되면, 가진 사람은 기하급수적으로 재산이 늘어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항상 그 자리에 맴돌 수밖에 없는 빈부격차가 생겨나는 것이지요.


이렇게 빈부격차가 심해지면 소비 시장(상품 시장) 구조도 왜곡되기 시작합니다. 첫째로 부자 한 명이 돈을 아무리 많이 써봤자 그 양의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둘째로는 그들이 지출하는 소비의 범위가 사치품이나 고급품 위주로 한정되기 때문입니다. 상품 시장은 사치품이나 고급품 위주로 재편되며, 이것들을 생산하는 소수의 몇몇 사람들에게만 돈이 순환됩니다. 일반인 대상의 대다수 상품 시장에는 돈이 메말라서 관련 기업들의 경영 환경은 나빠지게 되지요. 기업들에 소속되어 일하는 근로자들의 생계도 위협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자본이 잘 순환되기 위해서는 금융 거래보다 다수의 사람들이 안정된 벌이를 할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가 많아야 합니다. 그들의 소비는 비교적 대중 상품들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그만큼 여러 분야의 기업들이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하고 팔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일자리도 불안정하고 임금도 형편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나라 사회는 이미 금융 거래가 노동에 의한 수입을 앞지른 상태이고, 일자리마저도 비정규직 비중이 확대되고 있는 추세입니다. 여기에 주거 및 교육비와 같은 기초생활비에도 큰 돈이 들어가니 실질적으로 쓸 수 있는 돈은 얼마 남아있지 못한 상황입니다. (참고자료1 : "The Winner Takes It All"(바로가기 링크), 참고기사2 : 비정규직 627.1만명, 사상최대... 근로 여건은 악화(바로가기 링크), 참고자료3 : "주거 불안정"(바로가기 링크))


가정과 개인들은 수중에 돈이 남아있질 않은데, 우리나라 GDP는 역대 최고를 갱신하고 있다며 경제 신문을 장식하고 있습니다.(최근에는 조금 떨어졌지만요...) 2015년 기준 우리나라 1인당 GDP가 28,000 달러에 가깝다고 합니다. 4인 가족 기준 1년에 112,000 달러, 환율 1,100원 기준 1억 2천3백만 원가량의 수입이 있는 게 평균이어야 하는데 이 돈은 다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사람들이 저질의 임금을 받으며 일하는 동안 몇몇 대기업은 사상 최대의 이익을 거두었습니다. 사람들이 주거 등 기초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지출한 금융이자는 은행의 수익으로 돌아갔지요.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양질의 일자리마저 없어지니 돈은 순환되지 못하고 꽉 막혀 정체되기 시작했습니다.


가정과 개인이 호주머니가 가벼워진 문제는 다시 부메랑이 되어 기업들의 목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물건을 사질 못하니 내수 시장은 위축되었고, 기업들은 시장에 내어놓은 상품과 서비스가 잘 팔리지를 않아 어려움에 처하게 된 것이지요. 돈을 곳간에 쌓아둔 몇몇 대기업도 남의 일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시장 상황이 좋지 않으니 적당히 투자할 만한 곳을 찾기 힘들어진 것이지요. 은행도 돈을 기업에 빌려주어 투자 수익을 거두어야 하는데 마땅한 투자처를 정하기가 곤란합니다. 그나마 수익이 보장된 부동산 쪽의 대출을 많이 증가시켰지만 이젠 그마저도 여의치 않게 된 상황입니다. 한 치 앞 천 길 낭떠러지에 서있는 꼴이 된 것이지요.




자본의 순환 2
자유무역체제(국제시장개방)


시장이 국제화되면서 사정은 더 복잡해졌습니다. 굳이 국내에 물건을 팔지 않고 국제 시장에 내어놓아도 기업은 생존할 수 있게 되었거든요. 기업들은 가능하면 국내에서 적은 임금을 주고 생산을 해서 해외에 비싸게 팔며 수익을 극대화시킵니다. 생산비를 낮출 수 있다면 해외에 공장을 세우는 방법도 적극적으로 추진합니다. 그만큼 국내 가정이 벌어들이는 돈은 줄어들고 구매력도 낮아져서 시장 규모가 축소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흐름이 1998년 금융위기 이후 어쩔 수 없는 선택에 의해 시장이 대폭 개방되면서 더 심화되기 시작했지요.


사실 세계를 하나로 묶는다는 글로벌 경제 개방 정책은 더 많은 자본을 가진 이들을 위해 경쟁력을 덜 갖춘 시장 참여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수단에 불과합니다. 자본주의의 특성상 실제 수익보다 더 많은 기대 매출에 의해 기업의 주가가 결정되고, 기업들은 어찌 되었든 무조건 성장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상황에서 급속한 몸집 불리 기를 시도할 수밖에 없거든요. 넘쳐나는 상품과 서비스를 팔기 위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만 합니다. 하나의 국가 시장이 포화에 이르면 새로운 3세계 국가를 편입시켜 상품을 파는 식으로 확장하는 정책이 바로 자유무역의 실체입니다. 더 많은 공급자와 수요자가 시장에 참여함으로써 경제를 활성화시킨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타국의 허약한 상품 분야를 공략하여 영원한 캐시카우로 만들려는 속셈이 깔려있는 것이지요.(참고자료 : 주식시장이 갑자기 폭락하는 이유(바로가기 링크))


상품 시장을 장악당한 국가의 소비자는 벌어들이는 돈은 얼마 없는데 소비만 하게 됩니다. 소비를 통해 얻은 기업의 수익이 그들에게 돌아가지 못하고, 다른 나라의 기업과 근로자에게 돌아가게 되는 것이지요. 반대로 우리 쪽에 유리한 기업의 상품은 더 잘 팔리지만, 그렇게 일어난 수익은 오로지 해당 기업과 그 기업의 근로자에게만 돌아갑니다. 사회적으로 부가 더 편중되는데 일조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타 국가 대비 경쟁력이 있는 상품 분야가 적다면, 더욱 빠르게 국가 전반적인 구매력이 낮아지고 내수 시장이 축소됩니다. 사람들은 돈을 벌지 못해도 소비는 해야 살아갈 수 있으니 일단 빚을 내서라도 물건을 사게 되지만, 빚을 감당할 수 있는 어느 시점에 붕괴되는 수순에 이르게 됩니다.


이런 상황이 가장 극명하게 잘 드러난 사건이 올해(2015년) 발생했던 그리스 채무불이행 사태입니다. 제조 산업이 빈곤헀던 그리스가 EU 단일 경제권으로 통합되면서, 제조 강대국인 독일의 기업들에게서 많은 상품들을 값싸게 구매할 수 있게 됩니다. 독일 건설사들을 불러 국가 기간 시설들을 세우고, 독일제 생필품들을 값싸게 구매하면서, 필요한 돈은 유럽 중앙은행에서 빌립니다. 유럽 중앙은행은 독일이 2011년 기준 18.94%로 가장 많은 지분을 가지고 있는 기관입니다. 사실상 독일의 돈을 빌려다가 독일의 상품을 사 다쓰는 모양새가 된 것이지요. 빚은 계속 불어만 가고 빚으로 이자를 다 갚지도 못하는 지경에 이르자, 유럽 중앙은행에서 특단의 조치가 없는 한 더 이상 그리스에게 돈을 빌려주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 그리스 사태의 전말입니다.


그리스에 극도의 경제 불황이 찾아오고 국민들은 대부분 실직자가 되었으며, 각종 복지들은 삭감당하는 고통을 떠안았습니다. 우리나라가 1998년 IMF 금융위기를 맞았을 때와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지요. 아이러니한 건 그 와중에도 소수의 자본가, 기업가들, 정치인들은 큰 피해를 입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붕괴된 시장에서 기간 시설을 싸게 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얻게 됩니다. 우리나라도 그때 당시 (외국 자본을 포함한) 부자들은 폭락한 부동산을 싸게 사들여 재산을 서너 배 이상 불렸습니다. 중산층들은 자신이 소유하던 시설 및 부동산 등의 생산수단을 다른 사람에게 팔아넘기고, 렌트의 형식으로 매달 일정 비용을 내며 사용하는 신세로 전락하게 되었습니다. 겉보기에는 예전과 똑같이 시설 및 부동산을 사용하고 있지만, 이제는 여차하면 내쫓길 수 있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 것이지요.


그래서인지 이렇게 악화되어 가는 상황에서도 기득 정치인들은 큰 우려를 하지 않습니다. 코퍼라토크라시(Corporatocracy), 즉 기업이 정치를 지배하는 세상에서 정치인들도 기업들에게 유리한 정책들만 추진하는 상부상조의 관계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고급 정보를 서로 주고받고 보이지 않는 뒷거래를 통해 자신들만을 위한 사회를 건설하는데만 힘을 쏟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를 통해 정치권력을 바꿀 수도 있겠지만, 기업가에 의해 자행되는 교묘한 매스미디어 놀음은 일반 국민들이 진실을 알지 못하게 눈을 가리고 있어서 늘 힘과 권력이 가진 사람들의 입맛에 따라 정치도 좌우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자본의 순환은 정체되고, 문제는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자유무역체제를 거부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세계적인 추세에서 우리만 쇄국 정책을 펼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기왕이면 문호를 개방하되 우리가 잘 살 수 있는 방향으로 협상하고 국내의 자본이 잘 순환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한데 정치인들은 그런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상황이 뻔히 보이면서도 힘이 없는 개인들은 어떻게 할 도리가 없습니다. 알면서 당할 바에 철저하게 힘을 가진 사람의 논리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그나마 남은 해결책인 걸까요?






본 글은 연재 형식으로 2015년 10월부터 2016년 1월까지 작성되었습니다. 여기 있는 내용들을 더 다듬고 짜임새있게 구성하여, 2017년 5월『이기심의 종말』로 출간되었습니다. 내용을 보시고 흥미가 동하신 분들은 아래 소개를 참조하시여 책을 구매해 보시면 더욱 알차고 최신화된 글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



신자유주의적 시장자본시스템에 의해 파편화-양극화된 사회,

한계비용 제로사회와 4차 산업혁명이 가져다줄 희망과 위기,

힘없는 개인은 혼돈의 미래를 헤쳐나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첨단 기술 사회 속 우리는 어디에 서있고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


사회, 경제, 정치, 문화, 교육, 역사, 미래기술 등 다양한 영역의 현상을 조망하고 원인을 분석하여, 순환의 가치관과 이타적 본성의 공동체의 탄생을 주문하는 『이기심의 종말』(부제: 당신은 어떤 내일을 꿈꾸십니까)이 출간되었습니다.


미래가 어찌 흘러가게 될지 궁금한 분들, 두루 넓은 영역의 시대상과 기본적인 원리를 살피고픈 분들,

통합의 관점에서 사회 문제를 바라보고자 하는 분들, 원칙과 상식이 있는 사회를 만들기를 원하시는 분들,모두에게 자신있게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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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목차 정보 >

1장. 우리 앞의 현실

1. 자본주의와 개인소유 사상
자본주의 / 블라인드 스팟 / 개인소유 사상
2. 개인소유 사상의 사회문화
생존과 투쟁, 공동체의 역사 / 한국의 공동체 해체 / 혼자가 될 때까지 / 경영과 노동 / 기업 조직 문화 / 교육 / 자녀 양육 / 국가 정치/ 경제 제도 / 학문과 문화 / 성 역할 갈등 / 이성 교제 / 행복
3. 지속가능한 삶의 위기 - 개인편
경제 능력의 상실 / 직업의 귀천 / 실직과 사회 안전망 / 결혼, 출산, 경력단절 / 산업 구조의 변화 / 주거 불안정 / 자녀교육 / 질병, 사고, 장애 / 다시 일어설 기회가 없는 사회
4. 지속가능한 삶의 위기 - 사회편
빈부 격차, 소득 격차 / 청년 빈곤 / 저출산, 노령화 / 산업 성장의 정체 / 미래 인재의 부재 - 교육과 기업문화 / 필연적 불황과 전쟁 


2장. 선택의 시간

5. 순환, 지속가능한 삶의 가능성
개인의 위기, 사회의 위기 / 순환의 부재 / 기업 내 개인의 순환 / 기업 스스로의 순환 / 기업 밖에서의 개인의 순환 / 자본의 순환 / 직업 분배의 모순 / 직업의 가치, 개인의 가치, 사회적 효용 / 순환이 있는 사회
6. 공유경제와 한계비용 제로사회
공유경제의 역사 / 공유지의 희극, 인터넷 / 인터넷 + 자본주의 = 한계비용 제로사회 / 에너지 인터넷, 운송 인터넷 / 공유경제의 현재와 미래
7. 제4차 산업혁명과 위기의 미래
제4차 산업혁명 / 이제 기업과 노동자는 어떻게 돈을 벌지? / 현대판 러다이트 운동 / 창의적 직업으로의 전환, 가능할까? 


3장. 미래를 여는 열쇠

8. 공유경제 시대의 사상들
협력적 공유주의자의 시대 / 망중립성, 오픈소스 운동가들 / 공유가 소유를 앞서 나가는 시대 / 공유가 가진 힘의 원천 / 공유경제 시대의 동반자들
9. 지속가능한 삶을 향한 의식적 연대
대안적 삶을 추구하는 이들의 연대 협력의 필요성 / 기술의 진보, 연대의 가능성 / 중앙 집중화된 권력에서 분산된 권력으로 / 연대 협력의 장애물들
10. 개인소유 사상의 그림자
미래를 결정하는 것 / 자기포장, 위선, 성장 절대주의 / 배려와 공감이 없는 자기중심 사고 / 불신 / 물질만능주의와 소유욕
11. 개인에서 공동체로
내려놓기 / 보다 영속적인 가치 / 관심, 인정, 배려 / 공동체 의식의 확장 


4장. 우리가 꿈꾸는 세상

14. 우리가 꿈꾸는 세상
소유자, 생산자, 소비자가 하나 된 공유기업 / 생의 지속가능성이 보장되는 사회 안전망 / 최소 지원(복지)의 기준 : 주거, 교육, 질병 / 개인의 성장과 사회적 기여에 특화된 직업 / 변화된 교육이 바꾸어갈 세상 / 제약적 가족 관계에서의 해방 / 여성에 대한 관념의 변화 / 여성, 남성이 아니라 개인으로 대접받는 사회 / 지속가능한 삶이 있는 사회
15. 우리를 넘어 세계를 향해
  페이비언 사회주의, 칼 폴라니, 제3의 길 / 서양과 동양의 문화적 차이 / 언어의 힘, 한민족의 정신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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