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게도 나쁘게도 그것은 사람을 바꾸어 놓는다.
그 시절을 생각하면 머릿속에 생생하게 떠오르는 몇 가지 장면이 있다.
첫 번째로 내가 어디에 있던(화장실이던, 탕비실이던, 다른 팀 사무실이던) 정신없이 울려대는 내 핸드폰을 들고 급하게 뛰어오던 사람들.
두 번째로 영업을 위한 미팅 자리에서 눈은 움직이지 않은 채 입꼬리만 올리는 형식적인 웃음을 짓고 있는 나의 모습.
짧고 굵었던 3년 간의 직장 생활을 돌이켜보면,
고생했던 기억부터 난다.
분명 좋았던 기억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때는 그 세계가 인생의 전부였다.
일의 결과가 하루의 기분을 좌지우지했고, 일로 만난 사람들과 일주일을 보냈으며, 일의 성공 여부가 내 인생의 성공 여부인 것처럼 느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어처구니없는 인생이다.
내가 일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 같았으니 말이다.
작년에 만났던 남자 친구가 이런 말을 했었다.
"누나는 항상 차분해서 좋아."
맞다. 나는 차분한 편이다.
전화로 상대방이 비명소리를 질러도 침착하게 다음 말을 기다린다. 어떤 사건이 생겨도 큰 반응을 보이거나, 같이 호들갑 떨면서 놀라지 않는다.
'근데 내가 원래 차분한 성격이었나?'
자아성찰을 해보니 아닌 것 같다.
대학생 때까지만 하더라도 정말 호들갑의 대명사였다. 입으로 하는 감탄사로도 모자라 손과 발로 수많은 리액션을 했었다.
그럼 나는 왜 차분한 성격이 되었을까?
아 그래, 회사 생활을 하면서 성격이 바뀐 게 분명하다.
끊임없이 사건이 터지는 일과였다.
갑의 이슈, 병의 이슈, 모두의 입장에서 크고 작은 이슈가 터졌고,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와 메일로 사건이 터졌음을 알리는 연락이 왔다.
다른 사람들이 놀라지 않게 침착하게 대응하는 본보기가 되어야 했고, 빠르게 차선책을 강구해야 했다. 아무에게도 내색하지 못했지만 하루에도 심장이 쪼그라들었다 펴졌다를 수십 번 반복했다.
그래서 어떤 일을 들어도 표정도 목소리도 놀라지 않는 습관을 들였다. 이슈마다 감정을 소모하기에 체력도 정신력도 부족했다.
"네, 네. 알겠습니다. 확인해서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차분한 성격을 가졌다는 건 어떤 의미로는 좋은 일이지만, 어떤 의미로는 무감각한 사람이 된 것 같아 조금 슬프다.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정말 딱딱하게 일을 했다. 담당자가 어려서 못 미덥다는 이야기를 듣지 않게 일부러 FM으로 말을 하고 메일을 작성했다. 나이가 비슷한 또래의 팀원들과도 너무 친하지 않은, 격식 있는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너무 어렸다.
아무도 나한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사수도, 부사수도 없었고 피드백을 주는 사람도 없었다.
혼자 찾아보고 알아보고 정립해서, 다른 사람들한테 피드백도 줘야 했다. 다른 사람의 감정 상태를 살피지도 못했고, 나 자체도 다스리지 못해서 많이 혼났다.
"네가 그렇게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으면, 너네 팀원들이 다 처지잖아. 표정 관리 좀 해"
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를 다그쳤다.
나 자체가 너무 버거워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친절하지 못했다.
"수고했어. 잘했어. 잘했는데, 이거는 이런 방향으로 조금 더 수정하면 좋겠다."
이렇게 말하기보다는
"왜 이렇게 했어? 네가 정말 잘못한 점이 뭔지 알아?"
이런 말을 먼저 했다.
듣는 사람도, 말하는 사람도 마음이 아픈 일터를 만들었던 시기가 있었다. 그것은 아직까지 마음속 깊이 남아 내가 살면서 저질렀던 잘못으로 상기되고는 한다.
책상을 유난히 더럽게 쓰는 편이었다. 아무리 정리해도 살림살이들 때문에 금방 더러워지고는 했다.
상사와의 관계도 너무 어려웠다.
상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나와 팀원들을 쥐어짜서 본인의 사리사욕을 챙기는 악덕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가 지시한 일이 이해가 가지 않거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불만을 표출했다. 나보다 직급이 높은 사람이 오히려 내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을 만드는, 나는 상사에게도 대하기 어려운 직원이었다. 그 당시의 나는 누군가 무슨 말을 하면 가지고 있던 가시를 잔뜩 뿜어내는 못난이 고슴도치 같았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회의에서 상사가 말하는 내용을 듣다가 우리 팀을 고려하지 않은 결정에 너무 황당해서 얼굴이 굳어져 손이 떨렸다. 친하게 지내던 팀장님이 내 상태가 심각한 걸 알아채고 카톡으로 "나중에 대표님한테 따로 이야기할 거니까, 우선 여기서는 알겠다고 해요." 라고 보내줘서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그때 결정이 모든 것을 좌우하는 것이 아니고, 세상의 모든 일이 내 마음에 들게 돌아갈 수는 없는데. 중요한 건 그 상황을 대처하는 마인드와 행동이라는 것을 나중에 배웠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대표님이 해주셨던 이야기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그분이 예전에 어떤 대표님을 모실 때, 그 대표님이 공식 회의에서 "A안으로 가자"라고 말하면 그 자리에서는 "네, 알겠습니다." 하고는 그 대표님한테 B 안이 더 좋다는 내용을 계속 보여줘서 결국 최종 회의에서 대표님이 "거봐, 내가 B 안이 더 좋다고 했잖아"라고 이야기할 때 자신은 희열을 느끼신다고.
나는 그런 걸 못했었다. 돌아가더라도 나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면 되는 건데.
(결국 추천받은 삼국지 전권을 읽고, 한비자의 처세술 책을 5권이나 산 뒤 어느 정도 깨달음을 얻었다. 지금은 쳐다도 안보게 되었지만.)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를 줘야한다.
나는 직장생활에서 그걸 배웠다.
건강을 챙기겠다고 디톡스 주스를 정기 배달시켜먹기도 했고,
몸에 좋다는 각종 즙을 가방에 잔뜩 넣어 다녔고,
피부에 좋을 것 같은 음료를 한꺼번에 엄청나게 소비하기도 했다.
팀원들을 모티베이션 시키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고, 내가 해줄 수 있는 선에서 많은 것을 해주려고 노력했다. 내가 일을 잘 하는것 보다, 그들이 일을 잘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내역할이라고 생각했다.
회사의 입장에서 생각하기보다는 직원의 입장에서 먼저 생각했고, 그것 때문에 리더와 다툼이 잦았다.
매일 야근하고 스트레스받으면서 일하는 동료들이 너무 안타까웠다. 그들이 더 많은 것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힘든 업무들을 견뎌내기 위해 서로를 의지했고, 챙겨주며 그들이 '친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회라는 곳은 대학처럼 쉽게 친구를 만들고 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 사람들이 내게 보인 마음이 진심이 아니었을 수 있겠다는 상황을 맞닥뜨리자 밤에 잠이 안 왔다. 자다가도 눈이 번쩍번쩍 떠져서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이기지 못할 술을 마시고 집에 기어가기도 했다.
내공이 부족했던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언제든 객관적으로 자신에게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나만 멍청하게 감정에 휩싸여서 고액의 연봉과 조건을 내팽개칠 수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 회사를 나오니 그 해의 나의 삶이 모두 없어진 것 같이 느껴졌다. 다른 곳에 가서는 깊게 사람을 사귀지 못했고, 회사 사람들한테는 정을 주는 게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결국 회사에 가는 것을 포기했다.
연차가 조금씩 쌓이자 회사일에서 감정을 분리할 수 있게 되었다.
어쨌든 사람이 하는 일이다.
실수가 발생할 수 있고, 상사도 클라이언트도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다.
설정한 목표가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세상이 무너지지 않는다. 무엇보다 내 마음의 건강한 감정 상태가 중요하다. 그 모든 스트레스는 절대 당연한 것이 아니다.
직장 생활은 어렵다.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회사를 바꿔가지도 못했고,
내 가치와 맞는 회사를 찾아가지도 못했다.
모든 회사를 일반화시켜서 '회사란 조직은 나와 맞지 않는다' 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그래서 한 패배자는 오늘 위스키를 홀짝이며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