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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A Mar 23. 2017

지금 이대로 괜찮은 걸까?

출근하지 않은 지 벌써 7개월.




 문득 달력을 보다 회사에 가지 않은 지 벌써 7개월 차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베를린에서 귀국한 게 엊그 같은 데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흘렀지..'

하는 생각이 무심하게, 어느새 해가 바뀌었고 손끝 시리던 겨울도 끝나 봄이 왔다.


나는 지금 프리랜서라는 직함을 단 반백수이며, 좋아하는 와인을 파는 일을 아르바이트로 하면서 생활을 연명하고 있다. 28살에 말이다.




지금 이대로 지내도 괜찮은 걸까?



요새 부쩍 머릿속에 이 생각이 든다.




평일 낮에 디뮤지엄도 가고 브런치도 함께 하던 친구가 새 직장을 얻었다.

작년 가을, 내가 유럽으로 도피했을 때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쉰 지 약 4개월 만이다.



그녀와 마지막으로 즐겼던 평일 낮술을 추억하며..



이 친구는 작년에 와인 모임에서 만났는데 집이 가깝고 성격이 비슷해서 종종 같이 백수 라이프를 즐곤 했다.

점심때 집 근처에서 같이 김치고등어찜을 먹기도 하고, 저녁에는 곱창볶음에 소주 한잔을 곁들인 채 볼링을 치러 가기도 했었다.


친구의 출근 날짜가 확정되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와인 한 병을 땄다.

물론 나는 앞으로 회사에 갈 생각이 전혀 없지만 이렇게 동지를 잃으니 뭔가 씁쓸한 마음이 든다. 



친구는 언젠가는 다시 회사에 갈 생각이었고,

그동안 모아 둔 돈으로 백수 생활을 즐겼지만 더 이상 쉬면 감을 잃어버릴 것 같다고 출근을 선택했다.

이번에 들어가는 회사의 조건이 완벽하게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지만 일을 하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으니까...







 최근에 지인들과 브런치를 하면서 일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이 나이 때의 여자들이라면 모두가 공감할 만한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1. 서래마을 브런치 (with 대학교 지인들)


재클린




 이날 주로 나왔던 화두는 '왜 우리는 기술을 배우지 않았을까'였다.



강남에 유명한 눈썹 문신 샵 사장님은 돈 많은 중국인들이 비행기표를 보내서 모셔오는데 그렇게 떼 돈을 번다더라.



공대를 졸업한 지인이 얼마 전에 취업을 했는데 초봉이 일반 문과생의 3배가 넘는 걸 보니 자괴감이 들더라.



아 우리는 전공을 잘못 골랐다.

너무 일이 많고, 야근이 많고, '을'로 살아야 하는 직종이다.

어렸을 때는 '재미'라는 밝은 면만 보고 그 어두운 이면을 보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우스운 이야기인데, 신입생 시절 나는 취업할 때가 돼서야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하는 사람들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전공으로 골라서 대학교에 입학하는 게 당연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주관이 분명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부끄럽고 오만한 생각이었다.



동갑내기 동기는 지금 마케팅팀에서 일을 하고 있는 데 올해 안에 개발을 배워서 개발자로 직종을 변경할 예정이라고 한다. 2살 어린 후배는 전공을 살린 회사는 정말 가기 싫어서 비슷한 다른 계열로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 셋은 4년제 대학 같은 학부, 같은 학회에서 광고를 공부했다.






2. 연희동 브런치 (with 전 직장 동료)


Minimal kitchen



 내가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만난 C양은 아직 학교를 졸업하지 않은, 1살 어린 동생이다. C양은 경영학을 전공했고 연합 광고 동아리에서 줄기차게 광고 공모전을 하면서 대학 시절을 보냈다. 그녀와 나는 2013년 겨울 매일 같이 밤을 새 가며 PPT를 만들었고 몸과 정신이 모두 아려오는 피곤함힘듬을 함께 나누던 동료다. 그녀를 볼 때면 아직도 그때 고생시켰던 것에 대한 미안함이 먼저 떠오른다. (C양은 언니가 고생시킨 게 아닌데 왜 그런 생각을 하냐고 반발하겠지만..)



그녀는 얼마 전에 인턴을 마치고 여름에 예정된 입사를 기다리며 현재 건강을 챙기고 있다고 했다.

얻은 게 많았던 인턴 생활이지만 일주일 동안 채 10시간도 자지 못하고 일을 했다고 한다. 살이 찌고 몸이 부어서 쉬지 않고는 바로 회사에 갈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건강식을 먹었다.



그녀와 나의 이야기는 이렇게 흘러갔다.


'정말 회사에 가기 싫은 데, 내 일을 할 나만의 콘텐츠가 없어요.'


나도 프리랜서 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오랫동안 고민했던 문제다.


우리는 자신 혼자 할 수 있는 무언가로 밥을 벌어먹고 살 수 있는 예술 계열도 아니고, 가게를 차리거나 사업을 할 수 있는 돈이 있지도 않다. 가진 것이라고는 예쁜 카페와 디저트를 좋아하는 감성과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는 취미뿐.






3. 집 근처 새로운 아지트 (with 새로운 술친구)



알려주고 싶지 않은 혼술 아지트


 얼마 전 집 근처 새로 생긴 술집(와인과 위스키와 맥주를 판다)에서 알게 된 Y양은 내 친동생과 동갑인 94년생이다. 나이는 어리지만 음악적 취향이 비슷하고, 직장과 술에 대한 생각이 너무나 같아서 요즘 가장 좋은 술친구로 함께하고 있다.


Y양도 짧았던 회사 생활에 대해 이야기할 땐 이렇게 말한다.

매일 내가 소모돼서 없어지는 기분이었다고. 아침에 회사 건물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숨이 턱턱 막히기 시작해서, 결코 적응할 수 없는 사무실 분위기에 사직서를 쓸 수밖에 없었다고.



그녀는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홍보대행사를 다니다가, 지금은 대학원을 다니며 지인들과 함께 술집을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 카톡이 안되는 2G 폴더폰과 아이팟을 같이 들고 다닌다. 우리는 문자로 연락을 주고 받는다.)





그녀가 말했다.


"언니, 나는 다시는 회사에 갈 수 없을 것 같아."


내가 말했다.


"나도 마찬가지야...."









 무언가 새로운 상황에 대한 고민이 생길 때는 그 상황을 선택함으로써 내가 얻은 것과 잃은 것을 비교해 보곤 한다.




나는 무엇을 잃었을까.




먼저 바로 구매를 잃은 거 같다.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 가장 좋았던 것은 사고 싶은 물건을 더 이상 장바구니에 담아두지 않고 바로 구매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그것이 정말 필요한 것인지 고민하기보다 빠르게 결제하고 배송을 기다리는 즐거움을 누렸다.


요즘은 찜하기 / 장바구니 물건 중 고심하고 고심해서 한 가지만을 결제한다.




기분 좋을 때마다 "내가 살게" 말하는 습관도 잃은 거 같다.


연회비 20만 원짜리 신용카드가 부담스러워졌고, 예전부터 선호하던 수많은 브랜드들은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는다. 사람들의 시선보다 가성비 대비 나의 만족을 충족시켜주는 것들을 찾게 되는 것 같다.




피부과 정기 방문도 나와 상관없는 단어가 된 것 같다.


피부를 관리를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집에서 할 수 있는 천연 팩을 인터넷으로 찾아본다. 기분 전환으로 가끔 받던 메이크업샵 전화번호도 지웠다. 머리를 자르는 횟수도 조절하려고 노력한다.




좋은 것을 선택하는 기준도 잃은 게 분명하다.


먹고 싶은 것, 몸에 좋은 것 대신 저렴하면서 몸에 나쁘지 않은 것을 선택하고는 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전부 과 관련된 것들이다.


비싼 음식을 먹으며 부내 나는 생활을 즐기거나, 미래를 위해 결혼 자금을 준비하는 일 따위는 나와 이미 너무 멀어져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택에는 항상 이 단어가 붙어야 매력적이니까.)




내가 지금 생활에 만족할 수 있는 이유는 적은 돈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익히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여유로운 아침을 얻었다.


매일 아침 식탁에 앉아 간단하게 플레이팅 한 아침을 먹고 있다. 요거트를 수제로 만들어서 각종 견과류와 과일을 올려 먹기도 하고, 요리라고 할 수 있는 작은 행위를 해서 혼자 느긋하게 식사를 한다. 많은 재료도 없고 레스토랑처럼 예쁜 테이블에 세팅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스스로 밥을 차려먹는 활동은 뭔가 인생의 주도적인 느낌을 가지게 한다. 이 재미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는 게 즐겁다.





매일 느긋하게 휘겔리한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일상을 얻었다.


인스타에서 보고 적어둔 카페 중 오늘 기분과 어울리는 카페를 하나 골라서 집에서 조금 멀더라도 일단 출발해본다. brunch 글을 쓴다는 핑계로 노트북을 들고, 혹은 요새 빠져있는 책을 들고. 비록 가서 멍만 때리고 오는 때가 더 많더라도. '갈 수 있을 데 하나라도 더 가야지'라는 생각으로 말이다.




운동을 매일 가고 있다.


GUAVAPASS를 통해 1:1 PT, 필라테스 수업을 월요일부터 (가끔은) 토요일까지 매일 가고 있다. 그동안 잘못된 자세로 하던 업무 때문에 틀어진 골반을 바로잡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다. 지금 바로 잡지 않으면 더 나이 들어서 크게 아플 거라는 선생님 말씀을 들을 때마다 '지금이 때였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재미있는 일을 해볼 수 있는 시간도 얻었다.

얼마 전에 자주 가던 공방에서 서울 디자인 재단 지원으로 4주 동안 공예 체험 교육을 무료로 진행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매주 목요일 저녁 7시부터 2시간가량 진행하는 수업이었는데, 지금 가진 것 중 가장 많은 것이 시간인 반백수는 바로 신청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완성한 수제 도자기 컬렉션.




말하기 조금 부끄럽긴 하지만, 요새는 재미 삼아 소믈리에 자격증을 공부하고 있다. 이쪽으로 진로를 정한 것도 아니지만,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와인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더 알고 제대로 느끼고 싶어서 공부를 시작했다.






모두 회사에 다녔으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를 버려야 한다.

내가 회사 생활에서 가장 크게 얻은 깨달음이다.






어떻게 살 것 인가



20대에 들어서부터 끊임없이 하던 질문의 답을 아직도 찾고 있다.

아마도 평생 찾을 것 같다.



캔디는 돈에 관해서 말하는 법이 없었어. 오로지 사랑에 대해서만 말했지.

- '나는 그녀를 사랑했네' 안나 가발다




함께 답을 찾는 동지들이 더 많이 생겼으면.








p.s 이 글을 쓰면서 요 몇 주 마음 한 구석을 차지하던 의문에 대한 정리가 된 느낌이에요. 원래는 회사생활에 관련된 글을 쓰고 있었는데, 그때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한없이 우울해져서 결국 마무리짓지 못하고 작가의 서랍에 넣어뒀어요. 어서 떨쳐버리고 다시 오지 않을 이 계절을 제대로 즐길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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