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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A Nov 20. 2017

회사 생활을 추억하며

회사 생활이 남겨준 것들 3




 나는 항상 다른 사람들에게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쑥스럽다.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떤 부분은 자랑을 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한없이 부끄러워 지는 것이다. 나는 내가 부족한 점이 너무나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처음 본 사람에게도 자신이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어떤 가치관을 가진 사람인지 가감 없이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보면 왠지 부럽다. 그들은 사람들이 이야기를 들은 후 자신을 어떻게 바라볼 지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 튼튼한 마음을 가진 것이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나는 나에 대해 ''을 쓰기 시작했다. 글을 쓰고 업로드할 때는 상대방의 얼굴이 눈앞에 보이지 않으니 창피한 마음에서 조금 자유롭다. 어떤 사람들이 글을 읽었는지, 혹은 읽었는지 아닌지도 알 수 없으니 안심이 되는 것이다. 나는 부족한 사람이다.





 이 곳, 캐나다의 한 레스토랑에서 같이 일을 하는 동료들이 '너 한국에 있을 때는 어떤 일 했어? 지금처럼 레스토랑 서버로 일했어?'라고 물어보면, 나는 조심스럽게 '아니, 나 한국에서는 회사 다녔어..'라고 끝을 얼버무린다. '어떤 회사였어? 어땠어?'라고 물어보면 '매일 야근하고, 주말에도 가끔 출근했는데 overwork에 대해 따로 pay를 받지도 않았어.'라고만 이야기하고 대화 주제를 다른 것으로 돌린다. 속으로는 '그리고 너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매일 병들어가는 기분이었어'라는 말은 삼킨다. 이렇게까지 얘기하면 내 회사 생활이 너무 힘들고 슬펐던 걸로만 느껴진다. 분명 나만의 방식으로 그 삶을 즐겼다. 내가 진행한 일이 성과를 거두었을 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성취감을 느꼈고, 큰 성과급을 받았을 때는 하나도 남지 않을 것들에 탕진하는 즐거움을 느끼기도 했다. 모두가 하는 그 직장 생활을 나도 똑같이 했었다.





 2017년 11월,

내가 회사를 그만둔 지 1년 3개월째, 워킹홀리데이로 캐나다에 온 지 4개월 째이다.


 어쩌다 보니 부족한 글솜씨에도 불구하고 글의 내용이나 성격에 따라 분류한 4개의 매거진을 브런치에 연재하고 있다. 그리고 내 글 중 구독자를 가장 많이 늘리고, 하트를 얻는 글은 회사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다시 시작할 힘'  매거진의 글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아마도 브런치의 주된 독자가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의 감성적인 직장인들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라고 짐작한다. 사실 내 이야기는 20대 여자 직장인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여성 독자 분들에게만 어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종종 남성 독자 분들로부터 공감의 댓글을 받을 때마다 뿌듯하기도 하다. 내가 회사를 이직하거나 퇴사했을 때 사람들에게 그 이유를 자세하게 말하지 않은 이유는 좋지 않은 이야기는 해서 좋을 게 없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거쳐왔던 곳에 대해 험담을 하는 것결국 그곳에 있었던 나를 욕하는 것과 다름없다. 게다가 지인들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다. 내가 한 선택이고 책임은 언제나 스스로의 몫이다.






 나는 대학교에서 광고 홍보학을 전공했다. 3학년을 마치고 토익과 스펙을 위해 휴학을 하던 중에 어떤 기회를 통해 광고 실무를 시작하게 됐다. 온라인 광고일을 하는 스타트업이었고, 초기 멤버였기에 처음부터 직책과 직급이 있었다. 나 자신이 일을 잘 하는 것과, 팀이 일을 잘 하게 하는 것 모두를 고민하면서 회사 생활을 했다. 굉장히 많은 고민을 했고 그 고민들의 답을 얻기 위해 책을 읽었다. '린스타트업' 같은 스타트업 관련된 책, '결단이 필요한 순간', '팀장이라면 어떻게 일해야 하는가?' 등의 리더십에 관련된 책, '트렌드 코리아' 등의 사회 현상 파악을 위한 책, 디자이너와 원활한 소통을 위해 '디자이너가 아닌 사람들을 위한 디자인북', 유니타스 브랜드의 각종 브랜딩 책 등을 필요하다고 느낄 때마다 구입을 주저하지 않고 사들였다. 무역, 컨설팅, 헬스 케어 등 새로운 분야의 일을 하게 될 때마다 청바지를 입고 교보문고에 주저앉아서 몇 시간 동안 책에 얼굴을 파묻었다. 하나라도 더 머릿속에 채워서 남들보다 일을 잘하고 싶었다. '역시 듣던 대로 일 잘하네' '-라면 믿을 수 있겠네' 이런 말을 듣고 싶었던 것 같다.









 2016년 8월 중순 회사를 퇴사하고 2달이 조금 넘게 유럽 여행을 했다. (이때 이야기도 브런치에 업로드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다녔던 회사는 헬스 케어 기기 분야의 스타트업이었는데, 제품이 출시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엔젤 투자자의 투자금과 각종 스타트업 경진 대회의 상금으로 회사가 운영됬었다. 이때 자본금 대신 목표와 신념으로 운영되는 진정한 스타트업의 세계를 경험했다. 스타트업이 모여있는 공간에 입주해서 생활해보기도 했고, 해외 출장도 몇 번 다녀왔다. 일을 처음 시작하면서 했던 광고 기획과 실행에서 벗어나 하드웨어 개발부터 서비스 및 어플리케이션 기획 등의 업무를 했다. 손으로 만져지는 '제품'이 있는 회사는 '서비스'만 판매하는 회사와는 다른 부분이 많이 있었다. 제품을 만드는 공장의 일정, 제품 인증을 위한 법적 절차 등 외부적인 요소에 의해 회사 스케줄이 조절되어 내부에서 직접 100%를 한다는 느낌이 적었다. 사람과 컴퓨터만 있으면 모든 것을 할 수 있었던 온라인 마케팅과 다르게 필요한 것도, 소모되는 것도 많았다.





 내가 회사를 그만둔 이유는 믿고 일을 했던 회사와 그곳 사람들에게 받은 실망감 때문이었다. 다른 회사를 가더라도 이런 일이 반복될 거라고 생각했기에 더 이상 '회사'라는 곳에 가지 않기로 결심했다. 내가 다른 것을 포기하면서도 믿고 일해왔던 것이 무너지는 현상을 다시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유럽 여행을 하면서, 타지에서 정착해서 씩씩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났고 나도 외국에서 오랫동안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인생 한 번뿐인데 남하는 것처럼 회사 다니면서 결혼 준비하다가 20대를 끝내기는 아깝지 않은가. 나를 아는 사람들이 전혀 없는 새로운 곳에서, 그동안 해보지 않은 새로운 일을 하면서, 새로운 인생을 사는 것에 마음이 끌렸다. 여행에서 돌아와서 바로 워킹홀리데이를 지원했고 출국 전까지는 프리랜서 일과 와인샵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다. (내가 와인을 좋아하게 된 이유도 브런치에 업로드되어 있다.) 프리랜서 일은 예전에 일을 하면서 알게 된 분들에게 소개를 받았고 하는 일의 종류마다 스스로 단가를 책정해서 선불 혹은 후불로 일을 했다. 처음 시작하는 회사를 위해 내부 운영을 위한 각종 계약서와 문서, 광고 기획서 혹은 보고서의 샘플 작업, 업무 매뉴얼과 노하우, 직원 평가서를 정리한 자료 등을 만들어 회사 세팅을 돕기도 했고 가장 익숙한 분야인 SNS 광고 대행을 혼자 맡기도 했다. 사람 때문에 그만둔 회사 생활이지만, 그것이 아이러니하게도 좋은 사람들을 남겨주기도 했다.  







 다른 회사를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꿈의 회사로 불리는 제니퍼소프트, 사내 식당이 유명한 데브시스터즈나 눔코리아, 회사의 신념이 확실한 배달의 민족, JOH 등의 회사를 알고 있고 모집 요강을 찾아보기도 했었다.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은 음식이나 건강 관련 스타트업을 볼 때는 여기서 이런 캠페인이나 이벤트를 진행하면 서비스 이용자를 많이 늘릴 수 있을 것 같은데 라는 아이디어가 생각나 짬짬이 적어둔 게 메모장 한 가득이다. 비슷한 분야의 일을 하던 전 남자 친구가 카톡으로 '우리 회사에서 이번에 이 기업에 스폰 제안하려고 하는데 어떤 방식이 좋을까?' 하고 질문하면 1초의 생각도 없이 기본적인 제안 방향부터 아이디어 회의가 필요한 부분, 홍보방안을 타자로 적었다. 머리도 많이 굳고, 트렌드에서도 멀어져 살고 있지만 그 일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회사 PR도 행사 및 서포터즈 운영 대행도, 클라이언트 관리도 다 너무 익숙한 것들이다. 문제는 이 더 이상 나를 쏟아부어서 일을 할 자신이 없다는 것이다. 잘 하려면, 내가 만족할 만큼의 성과가 나게 하려면 다시 일에 나를 바쳐야 한다. '열정'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고 '삶의 의미'나 '자아실현'으로 정의되는 노력이 필요하다. 회사가 예뻐하는 직원은 '회사 일'을 '내 일'로 생각하는 직원이다. 그런 사람만이 무언가를 포기해야만 하는 일상을 견딜 수 있다. 하루의 대부분을 회사에서 보내면서 삶의 의미와 목적을 '회사'에서 찾았기에, 그곳을 나왔을 때 인생의 상실감이 너무나 컸다. 결국 '회사 일'은 '내 일'이 아니었기에 나는 행복하지 못했다.









회사 생활을 할 때와 현재 내 생활이 어떻게 다른지 실감 나게 설명하려면 하루 일과를 비교해보는 것이 가장 좋다.


직장인이었을 때 내 하루는 5분 단위로 맞춰 놓은 알람과의 씨름에서부터 시작했다. 떠지지 않는 눈으로 양치를 하고 지옥철을 타고 출근을 했다. 미팅이 끝나고 사무실에 오면 구두와 정장을 벗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컴퓨터 앞에 앉았다. 전화를 받고, 회의를 하고, 피드백을 주고, 내 일을 하고 '아무래도 오늘도 야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일찌감치 사무실로 저녁을 배달시켰다. 배가 고프면 일에 하나도 집중이 안 되는 편이라 식사 시간도, 간식 시간도 많았다. 몇 번 가지도 못할 걸 알면서도 끊어 놓은 요가 학원에서 언제쯤 오시고 물어보는 문자를 클라이언트에게 보낼 메일을 마저 쓴다. 일이 끝나면 좀비처럼 집에 돌아와서 이대로 하루를 보내기가 아쉽다는 생각에 화장도 안 지운채 침대에 누워서 핸드폰을 몇 시간 만지작 거리다가 잠에 들었다.




 현재 내 하루는 알람 없이 눈뜨는 일과로 시작한다. 핸드메이드 요거트로 아침을 차려먹고 모아 놓은 빨래를 돌린다. 방에 머리카락을 롤러로 밀고 네이버에서 밑반찬 레시피를 검색한다. 책상에 앉아 어제 서점에서 사 온 매거진을 펼치고 유튜브로 좋아하는 음악을 켜놓는다. 목이 뻐근해지는 걸 느끼면 잠시 요가매트에 앉아 스트레칭을 한다. 오후 1시 반이 지나가면 머리를 감고 출근 준비를 한다. 검은 옷을 챙겨 입고 나가는 길에 버릴 분리수거 통도 챙긴다. 걸어서 15분 정도면 일터인 레스토랑에 도착한다. 주문을 받고, 음식을 서빙하고, 테이블을 치우고 6시간 정도를 일하고 다시 집에 온다. 집에 오면 서서 일을 하느라 잔뜩 부은 다리를 마사지하고 화장용 브러시를 세척하고, 스케치북에 어제 그리다 만 밴쿠버 풍경을 조금 그리다가 잠에 든다.







 자잘한 일들을 하면서 하루를 보낸다. 회사 생활을 할 때와 비교하면 삶이 훨씬 헐겂다. 매일이 비어져 있는 듯 채워져서 지나간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렸을 때는 무엇을 좋아했고 지금은 무엇을 좋아하는지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서 몇 시간을 보낼 때도 있다. 이것저것 생각할 시간이 많은 것이 여유를 의미하는지 내가 해야 할 무언가를 안 하고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그냥 하루가, 일주일이, 한 달이 100% 나의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맨날 귀찮아서 미루던 일들을 바로바로 하고, 몸의 구석구석을 신경 쓰거나, 미래와 연결되지 않지만 그냥 좋아서 하고 싶은 것들에 시간을 쓰고 있다. 처음 한국에서 백수가 되어 다들 일하는 평일 낮에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마음의 평온함을 느꼈다. 돈을 벌기 위해 와인샵에서 시급 6500원을 받으며 아르바이트를 할 때 이렇게 인생을 살아도 된다는 것을 체감했다. 캐나다에 와서 아침에 일어나 출근 전까지 해변에 가서 누워있을 때 나에게 이런 삶이 맞는구나 라는 것을 깨달았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었던 회사 생활을 하면서 그 생활을 버티기 위한 힘이 되었던 것들, 그리고 그 생활에서 완전히 벗어난 현재를 살면서 매일 느끼는 것이 많다. 그때는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하루를 버티는 큰 힘이 되었다. 주말에 친구들과 맛집을 가거나 취미 생활을 하는 것도 좋았고, 월급으로 유행하는 옷을 사고 예쁜 쓰레기를 사모으는 일상을 좋아했다. 가끔은 서로가 각자의 역할을 하고 그것을 모아서 무언가를 이루던 일이 그리울 때가 있다. 시간도 촉박하고 할 일도 많은 힘든 상황에 서로가 고생해서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고, 다가오는 다음 문제를 열심히 해결하자고 동지애를 다지는 그런 것들 말이다.



 아직도 나는 걸어갈 때마다 광고 카피가 눈에 들어오고, 이벤트에 참여할 때마다 스폰서로 들어간 광고주가 보인다. 영화는 항상 상영 시간 15분 전에 들어가 스크린 광고를 다 봐야 속이 편하고, TV CF 사이트 접속은 끊었지만, 인플루엔서 광고 경향은 살피고 있는 것이다. 젠장.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이 곳에 오고 facebook은 끊었다. 광고의 홍수에서 조금은 벗어난 삶을 살고 있는 것에 감사하다.


 



 내가 일했던 직종은 워낙 많은 업무량에 야근이 많은 편이다. '을'이어서 받는 스트레스는 매일 쌓이는 데다 여자로서 결혼 후 가족을 생각하면서도 지속하기에 어려웠다. (슬프게도 한국에 있는 대부분의 회사들이 그럴 테지만.) 항상 같은 분야 사람들끼리 술자리에서 주고받는 이야기가 '이번에 그 회사 사내 커플이 퇴사하고 강원도에 한 서핑 샵을 오픈했다더라.', '제주도의 많은 카페 사장님들이 서울의 광고 회사 출신이라더라.' 등의 이야기였다.


요새 대학에서 같은 전공을 공부한 동기, 후배들이 다양한 직종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심심치 않게 듣고 있다. 스튜어디스가 되거나, 미용 쪽 기술을 익혀 가게를 내거나, 블로그 마켓을 운영하거나 하는 것 같다. 한 때 같은 미래를 꿈꿨지만 모두가 다른 길을 찾았다. 그리고 누가 더 행복하거나, 더 좋은 삶을 살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걔 회사 그만두고 지금 캐나다 가있데"


아 그건 내 이야기다.




 





글쓴이 한 마디 >>


 브런치 댓글로 독자분께 지금 행복하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네, 저 지금 진짜 행복해요"라고 말하는 건 거짓말인 것 같아요. 컴퓨터는 안 하지만 무거운 접시를 들기에 여전히 손목은 아프고, 외국에 혼자 사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불행하지는 않습니다. 머리를 쓰지 않고 일을 하고, 하루 종일 넷플릭스를 보다가 저녁에 어떤 음식을 해 먹을지 생각하면서 하루가 가는 것이 만족스러워요. 이런 일상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집세를 내고 장을 볼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레스토랑에 가서 일을 하는 것도 아직까지는 만족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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