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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A May 02. 2017

회사 생활이 남겨준 것들 2

집단 상담에 대한 기록



 고백하자면,

2016년 초, 아직 봄이 오는 것을 기대할 수 조차 없던 날씨에, 나는 홍대 근처에 위치한 심리 상담 센터에 다녔다.


그 당시 나는 새로운 회사의 출근을 앞둔 상태였는데, 전 직장에 대한 생각들을 떨쳐내지 못해 히스테리를 부리고 있었다. 정확히는 전 직장 상사에 대한 분노에 사로잡혀 있었다.



퇴사를 한참 앞둔 시점부터 그가 나에게 일을 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그와 대화를 해야 하는 것 자체가 소름 끼치게 싫었다. 일을 떠나 사람 자체가 싫어진 것이다. 나는 그와 밀접하게 소통을 해야 하는 위치에 있었고, 그것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에 몸과 마음이 병들어 갔다.




그는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기 위해 회사 사람들을 상대로 이간질을 했고,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 행동들을 했으며, 자신과 같이 행동하지 않는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세웠다. 그와 하는 대화는 언제나 숨이 막혔고, '내가 너까지는 챙겨줄게. 돈이든 차든' 수시로 하는 꼬임 성 말을 들을 때는 내가 지금 회사를 다니고 있는 건지, 직원들을 쥐어짜며 돈을 벌고 있는 건지 헷갈려 머리가 아팠다.



나는 회사에 이슈가 있을 때마다 그와 싸웠고,

그의 이기적인 행동에 이성을 잃고 화를 내는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와 전화로 싸웠던 기억들은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 퇴사 후에도 내 정신을 갉아먹고 있었다. 상사에게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을 했다는 죄책감도 나를 괴롭히는 것 중 하나였다.




새 직장에 가서 새 사람들을 만나기 전에 내 마음은 정리가 필요했다.





 친구가 알려준 심리 상담 센터에 전화를 걸어 상담을 문의하니 적지 않은 비용을 안내받았다.

1번 이상의 개인 상담이 필요하고 그 이후에는 10주 이상의 집단 상담이 진행 가능하다고 했다. 집단 상담은 여러 명의 사람들이 일정 시간 동안 둘러앉아서 서로 이야기를 하고, 듣기도 하는 상담으로 전문 상담사가 리더로 포함되어 있는 상담이다. 이 집단에 내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을지는 자신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다른데 이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도 없었다. 내 주위에 누구도 회사에서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해 본 사람이 없었다.




개인 상담을 하면서 상 선생님께 이런 말을 했다.


"제가 이렇게까지 상사라는 사람을 싫어할 수 있는지 몰랐어요. 그 사람이 망했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되는데 제 도움이 필요하다면 도울 생각도 있어요."


 

상담사 선생님이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HANA 씨는 집단 상담을 진행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집단을 작은 사회라고 생각하면 돼요. 그 집단에도 사회처럼 내가 좋아하는 사람, 싫어하는 사람이 생겨요. 그리고 분명히 전 직장 상사랑 비슷하다고 느껴지는 사람이 있을 거예요. 그 사람과 싸워도 되니까 정말 끝까지 대화해보세요. 그 사람의 솔직한 생각을 들어보기도 하고, HANA 씨 생각을 남김없이 표출해보기도 하세요. 진짜 사회에서는 직급 때문에 하고 싶은 말을 100%까지 하지는 못했을 거잖아요."




그래서 10주 동안 집단 상담을 진행했다.




아, 나는 전 직장 상사 때문에 심리 상담 센터에 다닌 직장인이었다.






 결과적으로 상담이 그에 대한 내 분노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그 상담을 통해 얻은 것은 나 자신에 관한 몇 가지 고찰이었다.


집단에 있던 사람들이 나에게 했던 이야기 중에 공통된 것은 '내가 불편하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들을 때 항상 상대방을 평가하는 것 같다.'

'분석당하는 기분이 들어서 대화를 하기가 싫다'

'집중해서 공감하는 것이 아니라 말을 정리 하고 있는 것 같다 '

 


그들의 말은 충격적이었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내가 전 직장에서 했던 업무 중 가장 큰 부분은 면접을 봐서 새 직원을 뽑고, 팀원들을 평가하는 일이었다. 그때의 나는 지인을 제외하고, 만나는 모든 사람들의 표정과 행동에서 그 사람의 성향을 읽고 있었다.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사람인지, 일하면서 마음에 안 드는 것을 바로 표출하는 성격인지 이런 것들을 읽어내려고 노력했다.


좋은 직원을 뽑는 일은 매우 중요했다. 직원들에게 가장 큰 복지이자 선물은 최고의 동료를 안겨주는 것이니까 말이다.







빙 둘러앉아 서로 이야기하는 1시간 반이 나에게는 회사에서 하던 회의 같았다. 머릿속에서 나도 모르게 회의록을 작성하고 있었다. 누가 무슨 말을 했고, 어떤 피드백이 나왔는지 요약하고 정리했다. 상담은 결론지어지는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



퇴사 후 쉬는 동안 읽었던 책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사람은 분석의 대상이 아니라 이해의 대상이라고.


회사 생활에서 견디기 힘든 것은 야근도, 주말 출근도, 클라이언트의 쪼임도 아니다.

같이 일하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과 일하면 이 스트레스가 줄어들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직을 할 때에는 회사의 규모, 하는 일, 연봉 수준보다 같이 일하는 사람을 제일 먼저 봤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만약 내가 작년 초에 다른 회사로 이직을 했더라면,

작년 가을 베를린에서 귀국하자마자 다시 취업을 준비했더라면,

지금까지 일을 하고 있을까?



좋아하는 일을 하는 회사에 갔더라면, 다른 20대 후반 직장인들처럼 결혼을 준비하며 미래를 대비하고 있을까 이런 생각 말이다.


아침마다 열어보는 옷장엔 매일 출근복으로 입던 정장들이 가득하고, 회사별 명함들이 아직 다 쓰지 못한 채 남아있는데 어느 곳도 지금 내가 소속된 곳이 없다.


내가 "나는 더 이상 어떤 회사도 가지 않을 거야"라고 선언했을 때, 나는 한국 사회의 모든 곳으로 부터 동떨어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아침부터 밤까지 나와는 다른 일상을 살고 있는 주위 사람들과 심리적 거리감이 생긴 탓이다. 내가 부럽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나와 같은 선택을 는 이유는 나를 보는 시선에 '걱정'이 다분히 섞여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 시선에서 항상 자유롭지 못하다.












 한창 회사 생활을 할 때에는 화를 다스리기 위해 주말에 명상을 배우 다니기도 했고, 심리학 책도 굉장히 많이 읽었어요. '왜 나는 사소한 일에도 화를 낼까?' 이런 책 말이에요.


회사에 다니지 않은 지 9개월에 접어드는데도 매일 해야 할 일이 없는 일상이 아직 어색해요.

예전에는 분명 일에서 재미를 찾기도 했고 나의 존재감, 사회성 등을 느꼈던 것 같은데, 요새는 왜 일에서 그런 것을 찾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조금 멍청해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해요. 많은 생각을 하거나 머리를 쓰지 않고 살아가고 있거든요.


여담인데, 얼마 전에 전 진장 동료랑 밥을 먹었는데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줬어요.

저번 주에 비행기 소리가 엄청 시끄럽게 나던 날 회사에서 일하고 있던 사람들이 장난으로 "안돼, 이렇게 죽을 수는 없어"라고 이야기했는데 모두 격하게 공감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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