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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A Dec 09. 2017

다시, 여행

또 계획 없이 떠난 여행




 나도 내가 워홀 기간 중에는 여행을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둥 바둥하는 타향 살이 중에 큰돈을 써가면서 삶을 즐길 '여유'가 생길 것 같지 않았다. 1년밖에 되지 않는 워킹 비자가 유효한 동안에는 열심히 돈을 벌어 나중에 갈 여행 비용을 마련해야겠다는 계획이 있었다. 늘 그렇듯이 계획대로 하지 않을 걸 알면서도.





 10월 본격적인 레인 쿠버가 시작되자, 밴쿠버의 관광객도, 거리의 유동 인구도 현저히 줄었다. 내가 일하는 가게는 주로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레스토랑 이기 때문에 손님이 줄자 당연히 Shifts가 줄었다. 일주일에 5개씩 나오던 시프트가 1개 혹은 2개로 준 데다, 손님이 적어 팁도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일을 하지 않으니 시간이 많이 생겼다. 문제는 그 시간에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다른 일을 구해서 생계비를 더 마련해야 하는지, 이 참에 맘 잡고 영어 공부를 더 해야 하는지,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도해야 하는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머릿속에 가장 크게 자리 잡고 있는 생각은 이제 슬슬 앞으로의 진로를 결정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밴쿠버에 온 지 4개월이 지났으니 남은 8개월 뒤에 한국으로 돌아갈 것인지, 아니면 이 곳에서 조금 더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던지 하는 '미래' 일에 대한 결정이 필요하다. 이곳에 오기 전에는 그때 가서 마음 상태에 따라 결정하자는 생각이었는데, 막상 상황이 되었는데도 결정이 내려지지 않았다. 지금껏 하고 싶은 걸 찾아서 스스로 결정하고 꾸려온 인생인데, 이제는 내가 어떤 걸 하고 싶은 건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삶이 더 행복할 것인지, 이 삶을 선택하면 어떤 것들을 버려야 하는지, 과연 내가 선택한 것을 잘 해낼 수 있을 것인지 많은 생각과 걱정에 휩싸였지만 어떤 것도 깊이 다가오지 않았다. 고민이 머릿속을 표면적으로 떠돌고 마음으로 들어오지 않는 느낌이랄까. 결론 없는 생각들로 머리가 아픈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다.

 




시프트가 거의 없으니 스케줄을 조절하는 것도 어렵지 않고, 4개월 동안 모아 놓은 돈으로 경비는 마련할 수 있다. 모은 돈을 다 쓰고 돌아오면, 먹고살기 위해 다시 열심히 일을 해야겠다는 결심이 설지도 모르는 일이다. 지인들에게 이곳에서 겨울 시즌에 갈 수 있는 여행지를 물어보니 미국 서부 쪽을 추천했다. 여름에는 40도가 넘게 올라가는 미국 서부 날씨가 10~11월에는 여행하기 딱 좋은 초가을 날씨가 된다고 한다. 일주일을 잡고, 많은 사람들이 묶어서 가는 2곳을 여행지로 선정했다. 여행 일정은 밴쿠버에서 비행기를 타고 Nevada주의 Las Vegas간 뒤, Las Vegas에서 Califonia주의 Los Angeles로 버스를 타고 이동, LA에서 다시 비행기를 타고 밴쿠버로 돌아오는 여정을 짰다. Skyscanner로 비행기 표를 검색하니 각각 편도로 끊어도 총합 21만 원이 되지 않았다. Las Vegas에서 LA로 넘어가는 버스를 약 2만 6천 원에, 미국 여행을 위한 ESTA 비자 발급을 1만 6천 원에 끊고 나니 1차 여행 준비가 끝났다.








 각각 여행지에서 지낼 소까지 예약하고 난 뒤, 대략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검색을 했다. 라스베이거스에서는 당일로 그랜드 캐년 투어를 해야겠다. 기회가 되면 3대 쇼를 봐야지. 이 클럽이 좋다고 하더라. 정도만 찾아두고 준비를 접었다. 혼자 가는 여행이기에 일정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으니 세부적인 여행 계획은 세우지 않기도 한다. 그날 그날 일어나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되니까. 여행을 하루 앞두고 도서관에 가서 온갖 티켓들을 프린트했다. 외국은 어떤 부분에서는 아날로그 적일 때가 많아서 문서가 없으면 업무 처리를 해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프린트된 종이를 가지고 있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 지금 머리를 아프게 하는 모든 것은 다녀와서 생각하기로 한다. 미국 여행은 내년에, 혹은 언젠가 이루고 싶은 위시 리스트에 들어있었는데, 예상보다 빠르게 이루게 되었다. 그것이 좋은 결과가 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그리고 여행을 끝내고 다시 밴쿠버로 돌아왔다. 생각을 그만 하려고 가는 여행인데, 항상 생각이 더 많아져서 돌아온다. 지난번에 차로 시애틀 당일 투어를 한 것을 제외하고, 미국을 마음먹고 여행한 것이 처음이었기에 느낀 것이 많이 있었다.







 생각해보니 대학생이 되고 처음 해외여행을 생각했을 때, 가고 싶은 곳은 미국보다는 유럽이었다. 미국과 유럽을 비교하자면 미국이 상업적인 도시의 느낌, 유럽은 낭만적인 시골의 느낌이다. 사실 미국에도 많은 해변과 휴양지가 있고, 유럽도 도시의 느낌이 강한데 상상되는 이미지가 그렇다. 누군가 나에게 '유럽'과 '미국' 중 어떤 곳을 여행하는 것이 더 좋았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유럽'이라고 대답할 것 같다. 나는 유럽 도시의 길바닥이 좋다. 무슨 말이냐면 하이힐을 신고 걸으면 사이사이 틈에 굽이 빠지는 그 '돌길'이 좋다. 미국의 시멘트로 된 길바닥은 캐리어를 끌고 다니기에는 편하지만, 내가 지금 '여행'보다 '이동'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 같다. 나에게 유럽이 '살고 싶은 곳'이었다면 미국은 '그냥 한번 여행하고 싶은 곳'이었다. 밤에 숙소 근처 펍에서 혼자 칵테일 한잔을 마시는 것도, 안전을 비롯해서 신경 써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모든 걸 내려놓고 감상적이게 되기보다는, 가지고 있던 욕구를 충족시키는데 급급한 여행이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미국 여행은 계획 없이 가기에는 어렵다는 교훈을 얻었다. 하루 종일 걸어서 시내를 다 볼 수 있는 프라하, 지하철을 타고 유명 관광지를 이동할 수 있는 파리 같은 유럽과 달리, 미국은 차 없이는 이동이 너무 힘든 곳이었다. 특히 LA는 교통수단이 잘 되어있는 편이 아니어서 이동을 위해서 항상 Lyft와 Uber를 이용해야만 했다. 그때그때 마음 가는 대로 장소를 이동하기에는 이동 거리가 상당해서 동선을 생각하지 않으면 아예 방문이 어렵기도 했다. 여담이지만, 개인적으로 UX는 Uber가, UI는 Lyft가 더 잘 돼있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 어플리케이션을 실행했을 때 Uber는 '내가 가고 싶은 장소'를, Lyft는 '현재 내가 있는 장소'를 설정하도록 되어있다. 이동을 위해서 어플리케이션을 찾는 것이기 때문에 머릿속에 먼저 떠오르는 '목적지'를 설정하는 것이 편했다. 하지만 Pick up 할 Driver의 정보를 보여주는 화면을 비롯한 어플리케이션 구동 전체 디자인은 Lyft가 더 친절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실시간 수요에 따라 요금이 천차만별인 Uber에 비해 장거리 이동에 후발주자인 Lyft가 더 저렴한 것도 사실이었다.



 마지막으로 LA는 여행하면서 새로운 즐거움을 찾기보다는, 가보고 싶었던 장소를 방문하는 데 목적이 강한 여행이었다. 기왕 가게 되었으니 여행 기간 중 LA LA LAND 촬영지 몇 곳을 방문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이름만 들어봤던 커피 브랜드의 매을 방문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막상 이 두 가지 목적을 하루에 이루고 나니 다음날 일정을 붕 뜨는 상황이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LA 가 볼 만한 곳'을 찾아서 나온 미술관과 천문대가 휴무날이라 방문이 불가능했다. 미국 여행 정보를 얻는 카페에서 동행을 구해보려고도 했지만, 당일날 서로의 일정을 맞추기가 어려웠다. 나는 이미 전날 가보았던 여행지이거나, 서로의 숙소가 멀리 떨어져 있어 동선을 맞추는 것도 일이었다.  





 막상 기대했던 커피 브랜드에 방문했을 때도 마음이 설레지 않았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메뉴가 나에게는 맞지 않기도 했다. 새롭게 무언가를 찾기에는 리스크가 컸고, 다른 사람들이 다 하는 것을 하기에는 재미가 없었다. 갑자기 내가 어떤 여행 스타일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됐다. 혼자 하는 여행을 많이 해봤고, 즐긴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번 여행은 너무 외로운 여행이었다. 내년에 다른 곳을 여행할 기회가 생긴다면 절대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가지 말아야지. 사람들이 '여행 어땠어?'라고 물어보면 '너무 좋았어'라기 보다 '한번 해본 것에 만족해'라고 말해야지. 



그곳의 야경이 정말 멋지긴 했지만.






제대로 담지 못하는 카메라를 원망할 만큼



 





<함께 쓴 글>


1. 라라랜드 여행지 총정리.


2. 라스베가스 여행기.


3. LA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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