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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A May 26. 2020

사람들이 나를 의지할 때

인생이 피곤해진다.



 밴쿠버에서 워킹홀리데이를 한 지 6개월이 조금 지났을 때, 한국분이 운영하시는 식당에서 서버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휴식 없이 7시간을 쭉 일하던 로컬 식당과 달리 한국 식당에서는 식사 시간도 있고, 밥도 제공해준다고 들었기 때문에 내심 일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가게는 사장님께서 직접 음식을 만드시면서, 주방과 홀에 있는 모든 직원들을 관리하는 구조였다. 사장님은 가게 문이 열리면 가장 먼저 인사를 해서 서버들에게 손님이 온 것을 알렸고, 주방에서 나오는 음식이나 홀에서 일하는 서버들의 업무 능력까지 모든 것을 신경 쓰셨다. 한국 식당들은 로컬 식당과 달리 서버들끼리 테이블이 구별되어 있지 않고, 다 같이 여러 테이블을 관리한다. 이렇게 하면 당연히 손님들이 기다리는 시간이 적어지고 모든 것을 빠르게 처리할 수 있다. 책임감보다 속도가 우리에게 더 익숙한 일처리 방식이었던 것이다. 이런 구조에서는 팀워크가 중요하다. 한 사람이 테이블을 치우러 갔다가 옆 테이블의 주문을 받아 올 수 있어야 하고, 내가 받은 손님의 요청 사항을 다른 직원들에게도 공유해 가장 빨리 혹은 적게 움직여서 처리할 수 있는 누군가가 일을 해야 효율적이다. 누구 한 명이 특출 나게 일을 잘하는 것도 의미 없고, 누구 한 명 구멍이 있는 것도 좋지 않았다. 어차피 시급이 같고 팁도 n분의 1로 나눠 갖기 때문에 모두가 비슷한 실력으로 비슷한 양의 노동을 해야 공평한 것이다.





 일한 지 한 달쯤 됐을까. 가게에 촬영 장소 섭외를 위한 방송 관계자가 찾아왔다. 사장님은 영어 울렁증이 심해 외국인과의 대화를 극도로 싫어하시는 분이셨다. 원래 밴쿠버에서 자란 교포 친구가 영어를 써야 하는 일을 맡아서 하곤 했는데 학교 수업 때문에 오전에는 가게에 없었다. 여차 저차 해서 내가 통역을 위해 사장님과 함께 테이블에 앉게 되었다. 그 당시 내 영어는 정말 부족했지만 간단한 단어로 관계자의 설명을 사장님께 전달하고, 사장님의 질문을 관계자에게 물어보면서 미팅이 끝났다. 이 일로 사장님께서 내가 영어를 잘한다고 생각하시게 되었다. 사건의 시작이었다. 그 이후로 영어가 필요한 모든 일에 내가 불리기 시작됐다. 건물주에게 무언가를 요청할 때, 물건을 배송해주는 업체와 이메일로 소통을 할 때, 손님에게 컴플레인이 들어왔을 때 모두 나를 찾으셨다. 내가 다른 일을 하고 있다가도 뛰어가서 그 일들을 처리해야 했다. 공평하게 업무 분담을 해야 하는 직장에서 나만 업무가 많아진 것이다. 속으로 불평불만이 쌓이기 시작했다. 내가 돈을 더 받는 것도 아닌데 왜 이런 일을 해야 하지? 내가 매니저도 아닌데 이런 일에 책임을 져야 하지? 머릿속에 의문이 가득했다. 대신 사장님께서 나를 대놓고 예뻐해 주셨다. 점심 식사를 내가 좋아하는 메뉴로 챙겨주시거나, 나만 따로 불러서 업무나 영업에 관련된 이야기를 해주셨다. 스케줄이 늘어났고, 따라서 업무 능력도 조금씩 상승했다. 사장님께서 알려주시는 실무 방법이 도움이 많이 되었다. 또 한편으로는 실력을 인정받는다는 생각에 불리는 대로 더 열심히 뛰었다. 점차 다른 동료들도 일처리에서 문제가 생기면 가장 먼저 나를 쳐다보게 되었다. 사람들이 나를 의존하기 시작한 것이다.





 예상할 수 있듯이 문제는 오래되지 않아 터졌다. 몸이 너무 힘들었다. 사장님께서는 다른 사람이 할 수 있는 일도 내가 직접 처리하기를 원하셨다. 그러면 내가 원래 하던 일은 누군가가 해줄 수 있어야 하는데, 직급이 있는 것이 아니니 다른 사람들에게 업무 지시를 내릴 수 없었다. 결국 내가 여러 번 움직여서 모든 것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기대를 저버리고 싶지 않으니 무리해서 일을 하게 되고 더욱 일이 벅차고 힘들어졌다. 당연히 일하는 것도 즐겁지 않았다. 더 이상 일이 일로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갉아먹는 일이 된 것이다. 회사를 다닐 때가 생각났다. 그때 나를 힘들게 했던 것 중 하나는 일을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이었다. 한 번의 실수로도 다른 사람들이 나를 우습게 볼 것 같고, 알고 보니 별로 실력 없는 사람이었네 하고 뒤에서 수군거릴까 봐 더 자신을 몰아붙였다. 또한 나 스스로가 결과에 대해서 원하는 기준치,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퀄리티가 있으니 모든 부분에서 그 이상을 달성하기 위해 애썼다. 완벽주의 성향이 있는 사람들은 이해가 쉽다. 눈은 이만치 높은데 그것을 달성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니 그 사이의 괴리감에 번아웃이 오는 것이다. 나는 아직 경험치가 부족한 사람이었고, 괜한 자존심에 다른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않겠다고 오기를 부리다 지쳐버린 것이다.





 결과적으로 나의 한국 식당 노동은 퇴사로 끝났다. 만약 능력을 엄청나게 발전시켜서 체력을 유지하면서도 요구되는 일들을 다 잘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내가 '저 이거 못해요'하면 사장님은 '하게 만들어야지, (너를 성장시켜야지)'라고 대답하셨다. 성장을 강요받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그 과정에서 나를 몰아붙이는 것이 건강한 일일까? 내가 했었어야 하는 것은 나를 의지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무언가를 잘할 필요가 없는 사람'임을 인지시키는 것이었을 것이다. 한때 내가 입버릇처럼 말하던 문장이 있었다. 일상에서 사람들과 새로운 일을 시도하고 결과를 이야기하는데도 '잘하지는 못했는데,-'라고 말했다. 곁에 있던 분이 나에게 물었다. "왜 잘하려고 해요?" 순간 깨달음이 왔다. '아 맞다, 이것은 일이 아닌데... 설사 일이라고 하더라고 왜 잘해야 하지? 모든 것을 잘할 필요가 없는데...' 나는 발전할 부분이 많은 사람이다. 이 나이에 이 경력으로 완벽하게 일을 한다면 앞길은 하락세만 남아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현재 내가 만들어내는 결과에 만족감을 가져야 한다. 사람은 완벽하지 않기에 항상 똑같은 결과를 낼 수는 없다. 어떤 날은 기대치만큼 일이 성공적이지 못했을 수도 있다. 시간을 투자해서 다시 하면 더 잘 될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거기서 멈출 줄 아는 것이 방법이다. 왜냐하면 첫째, 다시 했을 때 더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보장이 없다. 정확하게 어떤 부분이 문제인 건지, 그것을 명확하게 해결할 대안의 존재 여부를 아직 모르고 있을 수 있다. 둘째, 결과물이 나에게만 부족해 보이는 걸 수 있다. 내가 100을 기대하고 일을 했는데 70의 결과가 나오면 당연히 실망감이 든다. 자신감이 떨어지고 이 일을 계속하는 게 맞나 회의감도 든다. 하지만 알고 보니 사람들이 기대했던 것은 50이어서 결과물 70에 대해 생각 이상의 만족감을 느낄 수도 있다. 나의 기준과 다른 사람의 기준이 다르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나를 객관화시켜서 '적당히 스스로 만족할 줄 아는 것'이 나를 더 나아가게 한다.


 



 '너만 믿는다'는 말로 책임감을 전가하거나, 연차에도 연락해 자잘한 의사결정을 요구하는 동료들에게 휘둘리지 말자. 내가 해야 하는 일의 몫과 완성도를 미리 사람들에게 공유해서 모두가 수용할 수 있는 결과물을 목표로 해보자. 그렇다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대충 하면서 '이게 최선이야'라고 합리화하라는 것은 아니다. 부담 없이 일에 집중하고 성취감을 얻는 분위기에서 롱런할 수 있음을 갑을 모두가 인정하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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