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명적인 순간들
항상 경계 위에서... - 제다이로 살기 -
제다이의 숙명은 언제나 경계선에 산다는 것.
삶과 죽음, 회복과 장애, 개선과 악화, 성공과 실패...
항상 반대되는 결과의 경계선에서 잔인한 승부를 한다.
유착이 심한 경막을 박리할 때
튀어나온 신경을 밀어 넣고 경막을 꿰맬 때
신경과 혈관을 피해서 나사못을 밀어 넣을 때
신경손상 환자가 수술 후 깰 때의 발가락
감염증 환자의 CRP, ESR 수치를 확인할 때
사지 마비 환자의 MRI를 확인할 때
내 심장 박동 소리를 들으며 살 떨리게 결과를 확인한다.
클릭 후 검사 수치 및 영상이 뜰 때, 아니면 환자가 수술 후 깰 때, 그 짧은 순간 수많은 시나리오가 뇌리를 스친다.
제다이가 된 순간부터 나는 양자역학 내지는 평행우주론의 신봉자가 되었다. 그 치명적인 순간의 결과에 의해 환자에게는 극과 극의 다른 삶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사실 대부분의 수술은 성공적이다. 그들은 수술 전보다 덜 아프고 더 행복해진다. 밝은 표정으로 고맙다는 말을 남긴 채 집으로 향한다. 참으로 보람 있는 순간이다.
그러나, 소수의 환자는 행복하지 않다. 크고 작은 합병증이 생기거나 추가 수술을 하게 되어 고통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수술의 합병증에는 몇 가지 부류가 있다.
1. 불가항력적이고 무작위적인 경우
2. 환자의 위험인자에 의한 경우
3. 의료진의 기술적인 문제
4. 상기 요인들이 결합된 형태
어떤 경우도 발생하면 괴롭지만 수술 시의 기술적인 아쉬움이 있던 경우는 더욱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럴 때 담당의사는 마치 가해자가 된 것처럼 괴로워지고, 채무자처럼 환자를 대하게 된다. 마치 나비 효과처럼, 그때 그 순간에 신경막이 찢어지지 않았다면, 나사못을 좀 더 세심하게 삽입했더라면, 등등... 후회가 밀려온다.
외과 수술에는 각각의 기술별로 학습곡선 (learning curve)이 존재한다. 특히 초보 의사의 경우 이 관문을 비켜갈 수 없다. 술기를 마스터할 때까지 그들은 선배의 어시스트를 서면서 배우고, 전문가의 지도 감독하에 수술을 시행하게 된다. 그렇지만 그 어떤 교재와 감독으로도 전달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 이 부분은 오롯이 괴로운 경험을 헤쳐나가면서 체득하지 않으면 안 된다. 보이지 않는 노하우까지 마스터한 후에야 비로소 독립적인 외과의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척추의 분야는 항상 신기술이 출현하고 수술기법은 눈부시게 진화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학습곡선과 수술자의 역량이 특히 중요하다. 척추수술은 경험과 손기술이 중요하다. 아슬아슬하고 치명적인 찰나의 순간을 겪어내는 한편 장기적인 환자의 변화를 두루두루 경험해 내야만 제다이가 될 수 있다. 그들은 외롭고 고달프지만 환자에게 유익하다.
가장 에지 있는 연령대는 40대 중반에서 50대 중반 사이이고 (물론 나이를 잊고 날카로움을 유지하는 존경하는 선배님들도 있다). 직위는 대학병원의 교수 또는 부교수 또는 전문병원의 진료원장 급이다. 여러분의 선택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 내 병에 도가 튼 나만의 제다이를 찾으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