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향 Sep 30. 2016

흔들리는 그대여

가슴에 녹슬지 않는 철주 하나 품으소서

해질 무렵 감은사지에서 마음이 울리다


감은사지 석탑을 보고 왔습니다. 몇 해 전이던가요. 온가족이 함께 떠난 ‘달빛신라역사기행’ 때 그 석탑을 바라보며 저녁 도시락을 까먹었지요. 그때가 처음은 아니었는데 다른 때보다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문화재는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맞나 봅니다. 동행한 문화해설사가 석탑 꼭대기에 박힌 쇠로 된 찰주(擦柱, 刹柱) 이야기를 들려주는 순간 마음이 찡해졌습니다. 상륜부라 불리는 탑의 윗부분의 중심기둥을 ‘찰주’라고 한답니다.


동해의 용이 물길을 따라 올라와 금당에 머물다

 

감은사는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이 새 나라의 위엄을 세우고 나라의 안정을 도모하고자 세운 절입니다. 시도 때도 없이 쳐들어오는 왜적을 불심으로 막아보려는 의도도 있었다고 하구요. 그래서 동해 바닷가에 터를 잡은 모양입니다. 하지만 문무왕은 절을 완성하지 못한 채 죽고, 그 아들인 신문왕이 부왕의 유지(遺志)를 이어 682년에 완공하였다고 합니다. 문무왕이 누군지 아시지요? '죽은 후에도 나라를 지키는 용이 되리라'는 유언을 남겨 동해에 안장된 수중왕릉의 주인공 말입니다. 아버지의 업적과 은혜에 감사하다는 뜻으로 신문왕은 ‘감은사(感恩寺)’라 이름 지었답니다.


감은사는 좀 특이한 구조를 갖고 있었다는데 특히 금당은 바닥으로부터 일정한 높이의 빈공간이 만들어지게 특수하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왜냐 하면 죽어 동해의 용이 된 문무왕이 수중왕릉인 대왕암에서 하천 물길을 따라 올라와, 동해 바닷물이 고여 있었다던 용담(龍潭)이라는 연못을 거쳐 금당 바닥 아래로 들어와 머물게 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삼국유사》의 기록에도 이런 내용이 있다고 하니 참 신기하고 감동적입니다. 그러고 보면 감은사는 참 사연이 많은 절입니다.


황량한 절터를 굳건하게 지키고 서있는 두 탑

 

하지만 감은사는 사연만큼이나 아름다웠을 가람을 모두 잃고 지금은 절터만 남아 있습니다. 그 황량한 절터를 굳건하게 지키고 서있는 탑이 오늘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감은사지 삼층석탑입니다. 통일신라 석탑 중 가장 규모가 큰, 높이 13.4m의 쌍탑입니다. 국보 112호로 지정되어 있다지요. 유홍준 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의 표지에 등장하기도 하는 탑입니다.


저는 오늘 이 글을 쓰기 위해 궁금한 몇 가지를 확인하기 위해 신라문화원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감은사지 석탑의 꼭대기 찰주는 원래 그 모양이었습니까?"

“무슨 말씀이지요?”

“다른 탑들은 탑의 상륜부가 화려하게 생겼는데 감은사지 석탑은 철심만 박혀 있잖습니까?"

“네, 원래 돌로 된 장식들이 있었는데 부서지고 그 중심이 되는 찰주만 남아 있는 것으로 짐작하고 있습니다.”

“왜 복원을 하지 않죠?”

"복원할 수 있는 근거가 없습니다. 원래 모양을 알 수 있는 자료가 남아 있지 않거든요. 하나도.”

“석가탑 상륜부도 원래 그 모양이 아니었던 걸로 아는데.”

“네, 실상사 삼층석탑을 모방해 만든 것입니다. 하지만 감은사지 석탑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지금 모습 그대로 보여 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변치 않을 철심 하나씩 가슴에 품고


그때 달빛기행 때 해설사의 설명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석탑 꼭대기에 우뚝 세워진 높이 3.3m의 철제(鐵製) 찰주(擦柱) 이야기 말입니다. 제 아무리 강하다는 쇠로 된 것이라 해도 무려 1300년이 지난 지금까지 부식되지 않고 당당하게 바다를 향해 중심을 잡고 서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것입니다. 보통은 세월이 흐름에 따라 부식되어 삭아 없어지기도 한다는데, 천 년의 세월동안 소금기 가득한 해풍에 얼마나 시달렸을까요? 그러나 감은사지의 두 석탑은 상륜부의 구성재들이 세월에 떨어져 나가 버린 지금까지 너무도 당당한 모습으로 중심을 잡고 하늘을 향해 있습니다. 그때 해설사의 설명대로라면 수 백 번, 수 천 번 달구고 두드려 쇠에 섞인 불순물들을 모두 제거했기 때문에 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변치 않는다 합니다.


그대여, 그렇습니다. 뜨거운 불에 달구어지고 수 천 번 두드려 맞은 쇠만이 천 년을 견디나 봅니다. 모두가 힘들고 힘든 세월입니다. 불의(不義)한 유혹도 많은 세상입니다. 하지만 오래 오래 변치 않을 철주 하나씩 가슴에 품고 이 세월은 견디어 봅시다. 맞을수록 더 강해진다지 않수? 불순(不純)한 것 다 빠지고 순수함만 남은 쇠는 저렇게 당당하지 않수?

 

흔들리는 그대여, 가슴에 녹슬지 않을 철주(鐵柱) 하나 품으소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