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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향 Oct 02. 2016

작은 기쁨을 나누듯 잎을 나누다

                    - 세월을 곱씹어 먹으며 천천히

중독은 술이나 약, 혹은 어떤 사상이나 사물에 젖어 그것 없이는 생활을 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매일 아침을 진한 커피 한 잔으로 시작하는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커피 중독에 빠져 있다. 하지만 요즘 그 진한 커피 향보다 나를 꼼짝 못 하게 중독시킨 녀석이 있다. 바로 ‘다육이’라고 불리는 다육식물이다.   


꽃 하나 피울 것 같지 않은 무뚝뚝해 보이는 첫인상  

다육이는 사막이나 높은 산 같은 건조한 지역에서 살아남기 위해 줄기나 잎에 많은 양의 수분을 저장하고 있는 식물을 말한다. 종류가 천 가지가 넘을 정도로 다양해서 다육이 전문 화원 사장님도 녀석들의 이름을 다 기억 못 하겠다고 한다.


두어 해 전 대전 동학사에 갔다가 잠시 들른 찻집에서 처음 다육이를 보았다. 동행한 분들이 입을 모아 집에서 키우고 있는 다육이 얘기를 꺼냈지만 꽃 하나 피울 것 같지 않은 무뚝뚝해 보이는 첫인상이 나에게는 전혀 매력적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지난봄 팔공산에 갔다 오는 길에 들른 화원에서 다육이를 다시 만났다. 주먹만 한 화분에 심긴 이상하게 생긴 녀석들이 모두 다육이란 걸 주인에게 물어보고야 알았다. 찻집에서 보았던 다육이와는 색깔도 모양도 크기도 달랐다. 입에서 “어머, 세상에나!”

가 절로 나왔다.

 “얘도 다육이예요?”

“사장님, 얘는요?”

를 감탄사 사이사이에 섞어 가며 귀찮도록 묻고는 계란만 한 화분에 다육이 몇 개를 심어 돌아왔다.


 그 날 이후 나의 하루 일과가 달라졌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베란다에 나가 녀석들을 살피는 것으로 하루가 시작되었다. 햇볕은 좋아하지만 습기를 삼가야 하는 습성 때문에 혹시 소나기라도 내릴까 창문을 열고 닫으며 일기예보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퇴근 무렵에도 몸은 피곤하지만 화원에 들러 다육이 구경을 하고 싶어 몸이 근질거렸다. 휴일에는 딸아이를 데리고 화원에 나가 실컷 눈요기를 하고 아이의 맘에 드는 녀석을 품에 안고 돌아왔다. 남편에게도 저녁 산책을 가자고 하여 화원으로 향했다. 나를 위해 만 원만 쓸 수 있냐고 애교를 부려 다육이 가족수를 늘리기도 했다.   


세월을 곱씹어 먹으며 천천히 강하고 단단하게  


다육이는 한 달에 한두 번씩 물을 먹고도 잘 자란다. 다른 화초들처럼 쑥쑥 키가 자라지 않고 세월을 곱씹어 먹으며 천천히 자란다. 매일 물주는 재미도 없고 하루하루 커가는 재미도 없는데 무슨 재미로 키우느냐 하는 사람도 있지만 오히려 난 그런 점이 더 끌린다.


자작나무처럼 하얀색 나무줄기에 아래쪽 잎이 하나씩 떨어지면서 작은 상처를 하나를 남기며 자라는 다육이 하나를 큰아이 책상에 놓아주며 “이렇게 바싹 마른 흙에 뿌리를 내리고도 파란 새잎을 피운다. 정말 대단하지? 신기하고 기특하지 않니?”

했더니 자기와 같은 고3 같단다. 이런 걸 감정이입이라고 하나 보다. 강한 햇볕 아래에서 더 씩씩하게 자라는 녀석이 그저 귀엽기만 한 나의 느낌과는 달리, 고달픈 입시생인 고3 딸아이의 눈에는 그런 다육이의 모습이 가엾고 힘겨워 보이는 모양이다.

그 후 나는 그 녀석의 이름을 ‘고삼이’라고 짓고 다른 녀석들보다 더 편애하며 정성을 들이고 있다. 우리 집 고3도 더 힘을 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작은 기쁨을 서로 나누듯 잎을 분양하며 


무식해 보이는 잎 사이로 꽃대를 뽑아 올리는 녀석도 있다. 그리고는 또 한 번 사람을 놀라게 한다.

“야~ 그 빛깔은 네게 어울리지 않아.”

충고하고 싶을 정도로 화려한 빛깔의 꽃을 연이어 피운다. 다육이에게서 봄을 느낀다.

쪼글쪼글해진 다육이에게 물을 주었더니 잎들이 탱글탱글해진다. 여름날에 느낄 수 있는 싱그러움이랄까.

햇볕을 많이 받으면 가을 단풍처럼 빨갛게 물이 들기도 한다. 다육이에게서 느낄 수 있는 때 아닌 가을 이미지이다.

겨울에는 추위를 견디며 잠시 성장을 멈추고 겨울잠을 잔단다. 다육이의 겨울이다. 작은 잎에 사계(四季)가 숨어있다.


다육이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보다 ‘잎꽂이’다. 아래쪽 잎사귀를 하나 떼어 흙에 꽂아두면 아니 그냥 뿌려두기만 해도 실 같은 뿌리가 나고 파란 싹이 빼죽 얼굴을 내민다. 강한 생명력, 왕성한 번식력이라는 말로 간단히 표현하기에는 부족한 ‘경이로움’ 그 자체이다. 잎사귀 하나에 엄청난 생명의 에너지가 담겨 있었나 보다. 깨알 같은 아기들이 얼굴을 내밀고 자라기 시작하면 원래 꽂아두었던 엄마 잎은 조금씩 말라 없어진다. 그렇게 천천히 아주 천천히 강렬한 햇볕 아래에서 강하고 단단하게 자란다.


큰언니 집에서 떼어온 다육이 잎 하나를 종지에 심었더니 깨알 같은 아기들이 인사를 한다. 요 녀석들을 잘 키워 나도 막냇동생에게 분양을 해주리라 생각하고 있다. 정성 들여 키운 다육이 잎사귀 하나를 작은 기쁨을 나누듯, 사랑을 나누듯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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