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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향 Oct 01. 2016

안아주세요, 외롭지 않게

사랑을 미뤄 둘 시간이 없다

생명이란 얼마나 신비롭고 소중한 것인지


큰아이 영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 생리를 시작할 나이가 되었을 때 나는 ‘엄마와 영이가 함께 자는 날’을 정해 매주 수요일마다 아이의 침대에 나란히 누웠다.


그렇게 잠들기 전까지 여자들만의 이야기를 나눈다. 밤톨만큼 봉긋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 가슴 이야기도 하고 엄마의 첫 생리이야기도 자연스럽게 들려주고, 학창시절 엄마의 첫사랑 이야기, 아이의 어린 시절 이야기도 들려준다.


“네가 미숙아로 태어나 인큐베이터에 두고 엄마 혼자 퇴원할 때 정말 죽을 것 같았어. 그런데 백일이 지나니까 정상아 체중이 되더라. 그리고 또 얼마 지나니까 의사 선생님이 비만아 된다고 조심하라 하셨어. 히히.”


“네 어릴 적 별명 알지?”

“똥구멍!”

“그래, 네가 아기 적에 얼마나 예뻤는지 똥구멍까지 예쁘다고 엄마아빠가 그렇게 불렀어.”

“할아버지가 처음에 네 이름을 은실이라고 지어 주셨어.”


아이가 우리에게 얼마나 큰 기쁨을 주었는지, 생명이란 얼마나 신비롭고 소중한 것인지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응애’하고 태어나던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우리 모두가 너와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 주며 우리는 언제까지나 같은 편이라는 생각을 들게 해주고 싶었다.  


사랑을 확인하고 전할 시간이 필요해

 

살기 바쁜 세상이다. 아침이면 전쟁터처럼 각자 집 나설 준비로 바쁘다. 식탁에 둘러 앉아 마주보며 밥 한 끼 먹기 힘든 게 현실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사랑을 확인하고 전할 시간이 필요하다. 온가족이 함께 추억 만들기가 힘들다면 이런 방법은 어떨까. 끼리끼리 파트너를 바꿔가며 시간을 갖는 것이다.


남편과 둘째딸 원이는 둘만의 야간 장보기를 즐긴다. 밤 9시도 넘은 시각에 둘이 집을 나선다. 엄마가 좋아하는 단팥빵, 언니의 팥빙수, 내일아침 먹을 우유도 사서 돌아온다. 남편과 영이는 찜닭 마니아다. 가끔 둘만의 외식을 즐긴다. 나와 원이는 지난겨울에 2박 3일 동안 둘만의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남편과 영이는 부녀(父女)캠프에 참가하기도 하고 함께 테니스를 치러 다니기도 했다. 영이와 원이는 둘이 시내에 있는 고양이카페에 차를 마시러 가기도 하고 사이좋게 목욕을 다니기도 한다.


남들이 보면 콩가루 집안처럼 왜 따로 따로 노느냐 의아해 하겠지만 그 나름으로 재미가 있다. 매주 수요일 잠자리에서 영이가 엄마랑 나누던 대화와는 다른 화젯거리가 아빠와의 시간에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엄마아빠 빼고 아이들끼리 통하는 이야기도 있지 않겠는가.


사랑을 미루어 둘 시간이 없다


직장동료가 어머니를 여의었다. 평상시처럼 아침밥 먹고 출근했는데 두어 시간도 안 되어 사고가 났다는 연락이 왔다. 그렇게 임종도 보지 못하고 어머니를 떠나보냈다. 학창시절에 아버지도 교통사고로 졸지에 떠나보냈다며 그는 넋을 잃었다.

우리 사는 삶이 이러하다. 사랑을 미루어 둘 시간이 없다. 느낀 바가 있어 긴급으로 가족회의를 소집했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 서로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 같다. 아무리 바빠도 스킨십을 하고 가자. 뽀뽀도 좋고 포옹도 좋고 하이파이브도 좋다.’고 제안을 했더니 쑥스럽게 뭐 그렇게까지 하냐고 두 아이가 반대를 한다. 큰아이를 초콜릿으로 매수(?)하여 결국 3대 1로 통과시켰다. 머리에 수건을 싸매고라도 현관으로 달려가 아이의 엉덩이를 두드려준다.


“학교 가서 친구들하고 재미있게 놀다와~! 사랑해.”


공부하러 가는 아이에게 ‘성적 좀 쑥쑥 오르게 공부 좀 열심히 해!’하고 말하고 싶은 게 엄마의 진심이지만 이럴 땐 살짝 숨겨 두는 센스.


일상에 지치고 힘들지만 ‘애써’, ‘억지로’라도 먼저 말해주세요.

사랑한다고, 난 영원한 네 편이라고.

끈적끈적 땀은 나지만 ‘꾹 참고’, ‘강제로’라도 꼬옥 안아주세요.

사랑이 전해져 외롭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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