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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향 Jun 14. 2020

만약 내 삶에...

   -  If Note를 정리하며

어쩌다 보니 죽음에 대한 글을 여러 편 쓰게 되었다.

티베트 여행 후에 쓴 글 '우리에게도 언젠가는 그날이'도 그렇고

최근에는 영남일보 책읽기상에 응모하여 수상한  글 '죽어야 할 운명임을 다시 기억하며'도 그렇다.


십 년 전 발병한 면역질환을 평생 친구로 삼고 살아가게 되면서부터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누구에게나 한 번은  반드시 찾아오게 되는 그 순간을

좀 잘 맞이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

누구나 그렇겠지만...


백혈병으로 긴 시간 투병하시던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도,

치매로 여러 해동안 가족조차 알아보지 못하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모습도,

두 분만큼이나 지켜보는 가족들이 고통스러웠다.


지난해 남편과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를 작성하였다.

혼자 마음 결정을 하고,

 관련기관을 방문하기 전에

남편에게는  이야기를 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에 얘기를 건넸더니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손잡고 갈 동반자이니 함께 하는 게 맞다며 선뜻 동참해 주었다.

안내에 따라 설명을 듣고 사인을 했다.

의사의 판단에 더 이상 회생 가능성이 없는 연명치료 - 심폐소생술이나 인공호흡기 착용, 혈액 투석 등을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또 하나, 사후 각막과 장기 기증, 인체 조직 기증에도 동의를 했다.

여러 날 뒤에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 등록증과 함께 운전면허증에 붙이는 하트 세 개가 도착했다.

다음에 면허증을 재발급받을 땐 함께 기록되어 발급된다고 한다.

만약에 나에게 예기치 못한 일이 생긴다면 남겨진 두 딸아이가

어려운 결정을 내리지 않아도 되도록 하고 싶다.

또 나의 주검이 누군가의 남은 삶에 작은 보탬이 된다면

이 또한 기쁨이 아닐까.



여러 해 전 티베트 여행 중에 간덴사원 뒤에 있는 조장(鳥葬)터를 찾은 적이 있었다. 천장(天葬)이라고도 불리는 그 장례의식은 시신을 새들의 먹이로 주어 온전히 자연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다.  인도 여행 때도 갠지스 강가 화장터에서 시신을 화장하고 그 재를 그냥 강물로 쓸어내리는 것을 보았을 때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소멸된다는 것은 허무한 일이지만 돌려 생각해보면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웰빙(Wellbeing)만큼이나

사람이 사람답게 죽는 웰다잉(Welldying)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엔딩 노트를 정리해 보기로 했다.

한 장 한 장 적어나가는 일이 처음엔 조금 고통스럽기도 했다.

죽음에 한 발씩 다가가는 것 같아서 ㅜㅜ

하지만  누군가에게, 특히 남아있는 가족들에게 무언가 흔적을 남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삶을 돌아보는 진지한 시간되어갔다.

내 삶에서 가장 소중했던 순간과

가장 슬펐던 순간은 언제였더라...

내가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일기를 쓰듯 조금씩 정리하다 보면

참 이상하게도

엔딩노트를 정리하는 이 시간이

죽음으로 성큼성큼 다가가는 시간이 아니라

오늘 하루하루를  더 소중하게 걷게  마음을 갖게 하는 시간이라 느껴진다.

삶의 마지막을 고민하는 것이

앞으로의 인생을 계획하는  것과 같다는 말처럼.


(상투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어제와 같은 오늘에 감사하며,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이 하루하루를

천-천-히-

천-천-히-

소중하게 여기며

걷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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