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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향 Apr 19. 2022

내 마음속 연가시 한 마리

‘연가시’라는 벌레가 있다. 사진으로 처음 본 녀석의 첫인상은 마치 녹슨 철사 같기도 하고 갈색 국수가락 같기도 했다. 그런데 학자들조차 요 녀석이 분류학적으로 기존의 어느 부류들과 연관이 있는지 아직 찾아 내지 못한 채 그냥 선충류의 한 가지라고만 규정하고 있다고 한다.

 <출처: Muriel Gottrop at Wikipedia.org /Adamantios at Wikipedia.org/물속 생물 도감>

녀석의 유충은 물속에 살다가 사마귀 같은 육식성 곤충의 몸에 들어가 기생을 하는데, 보통은 30~40센티미터까지 자라며 길게는 1미터까지 자란다고 한다. 어떻게 곤충의 몸속으로 들어가는지에 대해서도 아직 여러 가지 설이 있다고 하니 녀석의 실체는 정말 미스터리다. 




연가시 유충에 감염된 사마귀는 자신의 몸속에 다른 벌레가 자라고 있는지도 모른 채 살아가게 된다. 연가시는 점점 자라 사마귀의 온몸을 가득 채우지만, 알 수 없는 존재에게 자신의 몸은 통째로 빼앗긴 사마귀는 늘 허기가 질 것이다. 쉴 새 없이 사냥을 하여 허겁지겁 먹어대지만 양분은 모두 요놈의 연가시란 놈에게 다 빼앗길 테니 말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완전히 성장한 연가시는 세상 밖으로 나올 준비를 한다. 탈출방법 또한 놀랍다. 연가시는 자신이 기생하고 있는 숙주의 뇌를 조종해 그를 물가로 데려가 숙주 스스로 물속으로 몸을 던져 자살하게 만든다. 물 밖으로 노출되면 바로 죽게 되는 자신은 숙주가 물속으로 몸을 던지는 그 순간 숙주의 몸을 뚫고 나온다는 것이다. 이것이 곤충을 자살하게 만드는 불가사의한 생물체, 연가시의 살아가는 방식이다.




오늘 나는 우리의 몸속에 알 수 없는 유충 한 마리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들어와 우리 몸의 주인 행세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았다. 그래서 먹어도 먹어도 허기를 느끼며, 가져도 가져도 공허하고 외로운 건 아닐까. 심지어는 그 녀석이 자라고 자라서 결국엔 우리의 온몸을 가득 채우고 우리의 뇌까지 조종하여 죽음에까지 이르게 할 수도 있다는 무서운 생각을 해보았다.


어떤 이는 평생을 돈이라는 연가시 한 마리를 마음에 키우며 살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권력을, 혹은 애욕(愛慾)을 자신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그것들은 우리들의 감정을 조종하고 이성까지 눈멀게 하여 우리를 파멸의 늪으로 내몰 수도 있을 것이다. 어느 순간 찾아든 그 유충 한 마리에게 우리의 소중한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내주기 시작하면 우리의 감각은 점점 무디어지고 결국 모든 것을 내주게 된다.


돈 한 다발은 형제들을 등 돌리게 하고 친구를 배신하게도 한다. 심한 경우는 천하보다 귀하다는 목숨조차 버리게도 한다. 권력이라는 연가시 한 마리는 양심을 버리게도 하고 불의와 타협하는 법도 가르친다. 애욕이라는 연가시 유충에 감염된 이는 부끄러움을 잊게 되고 파멸이 두렵지 않게 된다.


세상살이가 점점 힘들어지고 무서워진다고 한다. 연일 인륜을 저버리는 살벌한 소식들이 들려오고, 가정이 해체되고 사회가 무너지고 있다는 표현도 자주 듣게 된다. 정말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공허한 우리의 마음속에 몰래 들어온 연가시 한 마리가 우리의 소중한 삶을 망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짚어 봐야겠다. 지금 우리의 마음속에 일고 있는, 채워지지 않는 이 욕심은 진정 나에게 필요한 나의 의지가 아니라 무언가에 속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어쩌면 지금도 자라고 있을 내 마음속 연가시 한 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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