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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향 May 11. 2022

가까운 행복

글쓰기 모임 열여덟 번째 글감 - 행복



지난가을 이해인 수녀님 앞에서 시를 낭송할 기회가 있었다.  

수녀님의 특강 중에 수녀님의 시 한 편을 낭송하는 것이었는데  

연락을 받은 날부터 제일 큰 고민은 시를 고르는 일이었다.  

알다시피 수녀님의 시는 좋은 작품이 너무 많기에  

딱 하나를 고르는 일은 정말 힘든 일이었다.




이해인 수녀님의 시에 처음 반한 것은  

대학 시절 읽은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부터였다.

몇몇 친구들과 학교 앞 카페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에 앉아  

시를 읽고 외우며 감성에 젖던 시절이 있었다.




잎새 하나 남지 않은

나의 뜨락엔 바람이 차고

마음에 불이 붙는 겨울날


빛이 있어

혼자서도  

풍요로워라


맑고 높이 사는 법을

빛으로 출렁이는

겨울 반달이여


깊은 사색도 없이 그냥 시구 하나하나에  

달콤한 고독이 묻어나는 듯하여

베껴 써 보기도 하고 한 구절씩 돌아가며 읽기도 하던  

기억이 새롭다.




낭송할 시를 결정하기 위해  

유튜브로 해인글방에서 수녀님이 추천해 주신 시들을 읽어 보았다.

그렇게 고민 고민 끝에 결정한 시가 바로

‘가까운 행복’이다.

매일매일 읽고 읽다 보니

시어 하나하나가 그대로 가슴에 박혀 절로 외워져 버렸다.

그 덕분에 수녀님께 칭찬을 받는 기쁨까지 덤으로 얻었다.





 가까운 행복

                     – 이해인


  산 너머 산

  바다 건너 바다

  마음 뒤의 마음

  그리고 가장 완전한 꿈속의 어떤 사람


  상상 속에 있는 것은

  언제나 멀어서 아름답지

  그러나 내가

  오늘도 가까이 안아야 할 행복은


  바로 앞의 산

  바로 앞의 바다

  바로 앞의 내 마음

  바로 앞의 그 사람


  놓치지 말자

  보내지 말자




 ‘상상 속에 있는 것은

 언제나 멀어서 아름답지’

이 구절을 읽을 땐 왠지 절로 눈이 감겼다.  

나의 것이 아닌 것, 내 것은 될 수 없는 것,  

가지지 못하는 것이기에 더 아름다워 보이고

더 가치 있어 보이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시를 읽으면  

가까이 있는 행복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가까이 있기에,  늘 곁에 있기에  

소중함을 잊고 사는 것들...

바로 앞의 산과

바로 앞의 바다와  

바로 앞의 내 마음과

바로 앞의 그 사람이  

진정 내가 안아야 할 소중한 것임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된다.


산 ‘너머’보다는 ‘바로 앞’의 산을,

바다 ‘건너’보다는 ‘바로 앞’의 바다를,

마음 ‘뒤’의 마음보다는

‘바로 앞’의 내 마음을 돌아봐야 한다.


내가 ‘내 마음’을 소중하게 여기고,

‘바로  앞의 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면

나 역시 행복해진다.


내 것이 아닌 것에 마음이 뺏겨

정말 소중한 행복을 놓치는 어리석음

빠지지 않으리라 다짐해 본다.              

 


 <몇 해 전 '행복' 씨앗 심어 기르던 때의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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