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멸망하리.”

by 서향

글쓰기 모임 스무 번째 이야기 – 연민 그리고 사랑 나누기



“연민을 가지세요. 그리고 서로에게 책임감을 느끼세요.

우리가 그렇게 한다면 이 세상은 훨씬 좋은 곳이 될 겁니다.”

교수님은 숨을 들이쉬고 평소에 좋아하는 구절을 덧붙여 말했다.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멸망하리.”

- 미치 앨봄의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 중에서




원단회사를 운영하는 미카엘라에게

사무실에 미사보 1000여 장이 쌓여있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

미사보 나눔을 하는 자매님께서 매년 주문을 해오셨는데

갑자기 하늘나라로 떠나시는 바람에 배송하지 못한 채 있다는 것이다.

미사보로 만들어진 것이라 다른 것으로 활용하기도 어렵고,

아무렇게나 버리기에도 마음이 무거워 그냥 두고 있다고 했다.



미카엘라에게 100장만 줄 수 있겠냐고 했더니

그녀는 어디에 쓸 것인지 묻지도 않고

흔쾌히 허락해 주었다.

나를 믿어주는 그 마음 또한 고맙고 사랑스럽다.




한 달에 한두 번 시골에 갈 때마다 들리는 작은 성당 공소가 있다.

연로하신 어르신들만 계셔서 조심스럽기도 하고

코로나 시국이기도 하여 늘 뒷자리에서 미사를 드렸다.

어르신들의 미사보가 많이 낡아 보였다.

물론 미사보가 화려할 필요는 없지만

오래 쓰신 세월이 느껴졌다.


미카엘라에게 받은 미사보를 언니들과

혹시 실밥이 풀렸거나 작은 구멍이라도 난 것이 있나

한 장 한 장 살피고 포장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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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녀님께 ‘그냥 아무 말씀 마시고

필요하신 분들께 조용히 나눔해 달라’고 전해드렸더니

내 손이 민망할 정도로 고마워하셨다.




다음날 연락을 드렸더니

양해를 구한다시며 조심스럽게 말씀하셨다.


“자매님께서 주신 미사보 중

7개 정도만 제가 따로 사용해도 될까요?

제가 다음달에 다시 캄보디아로 선교를 나가는데

그곳 아이들 생각이 나서요.

그곳 아이들은 미사보가 없어서 엉성하게

실로 짜서 만들기도 해요.”




우리에겐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그곳 자매들에겐 더없이 귀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모님의 장미가 짜인 하얀 레이스 미사보를

자기의 것으로 가지면 얼마나 좋아할까.


다음주에 더 구해 가지고 갈 테니

쓰실 곳에 더 쓰시라 말씀드리며

더 필요한 건 없으시냐 여쭈었더니

‘모든 것이 다 부족’하다고 하시며 특별히 이번엔

아이들의 생리속옷을 좀 구해가려고 한다고 하셨다.

가슴이 툭 내려앉고 눈물이 핑 돌았다.




착한 미카엘라는 기꺼이 미사보 백 장을 내주었다.

미사보와 생리속옷 후원금을 전해드렸더니

손까지 잡아 주시며 고맙다는 말에 고맙다는 말이

계속 꼬리를 물어

제대로 인사도 드리지 못하고 도망쳐 와버렸다.


지난주에 수녀님은 캄보디아로 떠나셨다.

도착 후 여유가 생기는 대로 그곳 소식을 전해주겠다고 약속하시며.


까만 머리 위에 새하얀 장미 미사보를 쓰고

기도할 그녀들을 상상해 본다.

부끄러운 듯 행복하게 속옷 한 장씩을 받아들고

집으로 달려가 혼자 꺼내보며 웃음지을

그녀들의 상기된 볼의 온기를 그려본다.


‘아무리 그래도 나만큼 행복할까?’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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