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풍광룡-조진행
살다 보면 친구라는 사람이 적보다 못한 경우가 많다.
친구란 본래 저 하늘을 떠다니는 구름 같은 것이다.
보아라, 저 산을. 높은 봉우리마다 구름이 걸려 있지 않느냐?
주변에 사람이 없다고 안타까워할 것 없다.
네가 저 산처럼 높아지면 자연이 구름이 모여들게 되어 있다.
부자가 되면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 모이고, 무공의 고수가 되면 무인들이 찾아오지.
<질풍광룡(疾風狂龍) - 233화 친구란 하늘의 구름과 같다 중)
조진행 작가의 <질풍광룡>은 15권의 대작이다. 짧게 정리하면. 강인영은 약혼녀를 살해했다는 누명을 쓰고 십 년의 감옥생활을 한다. 반 미친 정신으로 전진파의 무공을 익혀 절대 고수가 되어 출옥한다. 친구와 친구의 아버지가 재산을 뺏기 위해 그런 것이었다. 성격은 비뚤어졌고, 정과 사를 자신의 잣대로 판단한다. 폭력의 미학을 한껏 구사함으로써 ‘광룡(狂龍)’이란 무림명을 얻는다. 나중 광룡은 왕중양의 화신이 되어 정(正)과 사(邪)와 마(魔)의 아수라를 멸하고, 운명의 화신 설아 공주와 단 하나의 친구가 사는 ‘연적하’에 은거한다.
위 대화의 상황은 이렇다. 광룡이 강호를 횡행하던 중 수적이 나타나자, 정파의 고수들조차 몸을 사린다. 광룡이 수적을 정리하지만 다들 ‘재앙의 대명사’ 광룡을 피한다. 단 한 사람 십 대 소녀 ‘진소미’ 만이 광룡을 진심으로 대한다.
선배가 점심을 초대했다. 퇴직하니 밥 사 주는 사람이 가장 고맙더라는 핑계로 편히 대해준다. 현직에 있을 땐 그 많던 선배와 후배, 거래처는 말짱 허상이고, 아침이슬과 같다고 했다. 어느 영화에서는 퇴직을 ‘살아있는 장례식’이라는 말도 있다고 응수했다. 지갑이 얇으면 괜히 움츠러든다고, 최저임금을 받더라도 일할 수 있을 때까지 일하라고 악담을 던진다. 퇴직하면 밥사는 사람이 킹카라고.
사실 사람이 사람을 잊고 잊히는 건 찰나이다. 스스로도 잊어 본 적이 있지 않나. 수천 명의 인맥을 자랑하던 어느 CEO가 은퇴하고 업무로 만난 사람 지우고 나니 그 십 분지 일도 남아 있지 않고, 그나마 연락할 일이 없다고 한탄하는 글을 읽은 적 있다. 정승 집 강아지와 정승의 죽음의 180도 달라지는 항간의 인심은 많이 경험했지 않았던가. 퇴직 전 나의 ‘퇴직 6 계명’에는 “주변을 정리한다. 접점을 줄이고, 소주 한잔 편하게 할 사람에게 집중한다”라는 항목이 있었다.
JYP 박진영도 "인맥 쌓을 시간에 실력을 키우라고. 인간은 이기적이라 필요하지 않으면 자연 멀어진다. 인맥의 유통기한은 길지 않다"는 명언을 남겼다. 그렇다. 내가 잘나서 이런 지위까지 온 것이 아니라 주변의 도움이 태반이다.
사회생활을 하며 가장 절실하게 느낀 것은 ‘있을 때 잘하라’는 평범한 말이다. 구름이 걷히고, 등불이 내려봐야 누가 진정한 친구인지 썰물인지 알 수 있다. 순리임을 알면서도 현직에서는 애써 모른 척한다. 베풀 수 있는 자리에 있을 때 베풀어야 한다. 가끔 청탁이나 부탁을 하는 주변인이 있다. 안 되는 것에 무리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부탁하는 사람은 적어도 서너 번을 고민했고, 절실함에 자존심을 내린 것이다. 거절하더라도 상대의 입장을 최대한 배려해 줘야 한다. 절대 마음에 상처를 주는 행위는 해서는 안 된다. 칼에 베인 상처 일주일 가지만, 말로 베인 상처 평생 간다는 말도, 은혜는 물에 새기고 원한은 바위에 새긴다는 속담도 있지 않나.
왕가위 감독은 영화 <일대종사>에서 구름 대신 ‘등불’을 들어 비유하고 있다. 궁가 64수의 대가, 궁이(장쯔이)의 부친은 엽문(양조위)에게 말한다.
무림에는 이런 말이 있지.
잊지 않으면 해답은 있고, 등불을 켜놓으면 사람이 모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