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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보 Mar 25. 2019

벽안의 외국 학생 가르치기 좌충우돌기

시애틀의 University of Washington

저는 1999년부터 2년 동안 미국 시애틀에 있는 

워싱턴 주립대학(Univertity of Washington:UW)에서 

유학을 했습니다. 경제학과 박사과정에 입학했습니다. 

만 38살에 만학의 도전을 한 것입니다.


UW에서 유학 생활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고 의미 있었던 

일은 미국 학부생들에게 1년 동안 경제학 개론을 가르친 것입니다. 


저에게만 기회가 주어진 것은 아니고 영어 말하기 연습 과목을 통

과하면 대학원생 누구에게나 2학년부터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학비도 면제되고, 월급과 의료보험도 제공되니 학생들에게는 큰 도움 이 됩니다. 

이른바 Teaching Assistant(조교)라는 제도입니다. 


주로 담당 교수의 강의 내용을 좀 더 상세하게 부연해주고, 문제 풀이도 하고, 

면담이나 이메일을 통해 질문에 답해주는 일을 합니다. 그러나 

현지 학생들과 그들의 언어로 소통해야 한다는 게 큰 부담이었습니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 첫 수업. 경제학을 강의하기도 쉽지 않은 

일인데 그것도 외국인들 앞에서 영어로 강의해야 한다니 바짝 긴장됐습니다. 

수업 내용에 신경 써야지 영어 발음에 신경 써야지 

어떻게 한 시간이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사단이 생겼습니다. 


나중에 학교에서 연락이 왔는데 학생 중 한 명이 영어를 잘 못하는 

외국인에게 강의를 들어야 하는 데 대해 학교 측에 항의했습니다. 

상품인 Goods(굿즈)와 거위인 Goose(구~스) 발음이 잘 구분이 안 되던 때였으니 

학생들은 혼란스러웠을 거로 생각합니다. 위기의 순간이었습니다. 


학교 측에서도 지속해서 나와 면담을 하며 학생들과 소통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두 번째 시간에는 아예 학교 인사가 수업에 들어와 참관했습니다. 

저는 수업 방식을 좀 바꾸었습니다. 

말은 느리게 발음은 또박또박, 그리고 웬만한 단어는 화이트보드에 다 적었습니다. 

이러면서 학생들하고 소통이 좀 되기 시작했습니다. 위기를 모면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몇 주 지나면서 노력하는 제 모습을 보고 학생들도 마음을 열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외국인이라도 선생님은 선생님이었습니다. 


미국은 10주 한 학기가 진행되는 동안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외에도 

매주 ‘퀴즈’라는 간단한 시험을 봅니다. 조교가 얼마나 성실하게 

도와주느냐가 중요합니다. 저는 학생들이 사무실로 찾아오든 

이메일로 질문을 해오든 최대한 성실하게 답을 해줬습니다. 

밤이나 주말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저에게 물어오고 제가 영어로 그들과 소통하는 게 즐거웠습니다. 


조교가 갖는 또 하나의 권한은 답안지 채점과 성적 산출입니다. 

물론 답과 오답 둘 중 하나를 채점하는 일이지만 

설사 오답이어도 문제를 풀려고 노력한 흔적에 따라 어느 정도 

기본 점수를 줄 수 있는 재량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글씨를 흘려 쓴 경우에는 

과감하게 점수를 깎아도 됐습니다. 


첫 시험 채점을 해서 나눠준 다음에는 교실의 질서가 스승과 

제자 관계로 바뀌었습니다. 


수업시간 중 제일 어려웠던 점 중 하나는 학생들의 질문에 반

응하는 일이었습니다. 간단한 질문은 알아듣고 답하는 게 

그다지 어렵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잘 모르는 예를 들거나 

‘사회주의의 수요 공급 곡선은 어떻냐’는 엉뚱한 질문을 해오면 좀 당혹스러웠습니다. 

나중에는 수업에 익숙해지면서 알아듣기 어려운 질문이 나오면 

“다시 한 번 천천히 얘기해줄래요?”하기도 하고, 당장 답하기 어려운 질문에는 

“추후 답변 하겠습니다.”로 넘어가는 여유가 생겼습니다. 


외국인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보람 있었던 것은 그들이 저를 통해 

탄탄한 경제학 지식을 갖춰가는 것을 보게 될 때였습니다. 또 강의를 마치면 

학생들의 강의 평가 결과를 보게 되는데 처음에는 경계했던 학생들이 

“덕분에 많이 배웠다.” “강의를 들으면서 경제학을 좋아하게 됐다.”는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었습니다. 평균 평점도 상위권에 들어가 

기분이 좋았습니다. 말이 좀 달려도 마음을 열고 성심성의껏 

가르치면 언어와 인종의 차이는 문제가 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타인을 가르친다는 것은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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