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적으로 살면 삶의 의미 발견"
인간은 이기적일까 이타적일까? 인류가 가장 오랜 기간 던져온 질문 중 하나일 것이다. 성악설과 성선설도 인간의 이기성에 대한 다른 판단으로 시선이 갈린 것이다.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인 진화론자 리처드 도킨슨은 종족 번식과 번성이 진화의 목적이며 이를 위해 DNA는 근원적으로 이기적이라고 주장한다. 도킨슨의 주장은 과학적 이론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사실 적지 않은 부분이 검증되지 않은 추론에 근거한 것이어서 공감이 가지 않는 부분이 적지 않았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있는 가운데 상당히 공감이 가는 책을 한 권 읽었다. 지난 2017년 돌아가신 박이문 포항공대 명예교수가 저술한 ‘왜 인간은 남을 도우며 살아야 하는가’이다. 현대 사회에 대한 비판과 함께 인간의 이타성을 설득력 있게 강조하고 있다.
저자는 이타적인 삶을 살다 간 대표적 인물로 중세 아시시의 수도사 성 프란체스코, 슈바이처 박사, 간디, 테레사 수녀, 이태석 신부 등을 사례로 들면서 인간이 맹자가 말하는 측은지심, 말하자면 윤리 도덕적 심성을 갖고 태어났음을 확신한다고 말한다. 인간은 도킨스가 주장하듯이 이기적인 것만은 아니며 이기적인 동시에 이타적이라는 것이다. 진화론자들이 주장하듯 인간의 유전자가 이기적으로 진화한 결과라면, 인간의 이타주의도 유전자에 의해 우리가 태어나기 이전에 이미 결정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박이문은 주장한다. 그가 정의하는 이타성은 ‘자신의 자기중심적 욕망을 희생적으로 억누르고 타인 특히 약자들의 욕망, 아픔, 복지 그리고 행복을 우선적으로 배려하는 심성’이다.
문명에 대한 박이문의 비판은 신랄하다. 모든 사람이 충분히 먹고살 수 있는 부를 생산하지만 천문학적 수의 사람들이 굶주림으로 고통을 겪고 있고, 철학적으로 한없이 우아한 윤리 도덕적 이론을 개발해왔지만 잔인한 핵무기를 개발하고 판매하는 데 혈안이 돼 있는 것을 보면 오늘날의 문명은 병들었고, 오늘날의 인류가 미쳤다는 사실은 분명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오늘날 인간 사회는 문명이라는 탈을 쓴 비윤리 도덕적인 야만 사회라고 개탄한다.
박이문은 우리는 모두가 조금씩은 윤리적 위선자라고 규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살아가야 할 방향은 마음의 자유를 잃지 않으면서도 우주 공동체 구성원에 대한 연민을 느끼며, 보다 더 이타적으로 살아가는 길이라고 권고한다. 이타적으로 살면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고, 그만큼 더 행복한 인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안에는 두 얼굴이 존재한다. 본능적인 이기주의와 이성적인 이타주의. 물론 이기적인 모습이 부정적인 영향만을 가져왔다고 할 수는 없다. 이기심에 바탕을 둔 욕구와 경쟁이 인류 사회를 발전시켜 온 측면도 크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박이문이 ‘오늘날의 인류가 미쳤다’고 비판했듯이 이기주의의 해악이 과도한 현실에서 공생하는 삶을 위한 이타주의의 회복과 실행이 무엇보다 중요한 때인 듯하다. 이 책을 읽으며 나 자신의 삶도 많이 돌아보고 반성하게 됐다. 많은 시간을 내고 있지는 못하지만 한 달에 한 번 하는 봉사활동에서 기쁨을 느끼고 있음을 보면 ‘이타적으로 살면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고, 그만큼 더 행복한 인간이 될 수 있다’는 박이문의 조언이 더 깊게 와 닿는다. 삶의 둘레를 넓혀가는 이타주의. 두고두고 삶의 지표로 삼아갈 방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