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원하는 건 뭘까?
같은 회사를 다닌 지 4년이 넘어가고 있다.
반복적인 업무에 지치고, 매너리즘과 번아웃에 허덕이고 있다 생각이 들어서 새로운 업무를 하는 팀으로 이동을 했지만 여전히 지쳐있고, 의욕이 생기지 않는 건 매한가지인 거 같다.
입사 초반에 회사를 즐겁게 다니고 행복한 회사생활을 했지만, 지금은 그런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회사를 가는 게 지루하고, 지겹다. 누구는 회사는 당연히 지루하고 지겨운 곳이라고 말하고, 물론 나도 그 말에 어느 정도 동의하는 편이지만. 그래도 내 소중한 하루 중에 제일 오래 있는 곳이 회사인데 되도록이면 밝고 재미나게 다니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항상 지니고는 있다만. 최근 들어서는 점점 더 앞이 보이지 않는 굴로 빠져드는 것처럼 벗어 나올 수 없는 지루함과 재미없는 생활이 일어나고 있다.
나만 이런 생각을 하나 싶어 친하게 지내는 동기에게 물어봤다.
너는 회사생활 재미있냐?
그 친구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거 같았다 "재미는 없지 그래서 이직을 해볼까 고민 중이야".
이직은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꿈의 단어처럼 쓰이고는 한다. 지금 회사를 퇴사하고 새로운 환경으로 이동하는 것, 이것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이직의 뜻이다. 나도 이직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다. 좀 더 자유로운 환경, 좋은 복지, 높은 연봉, 재미있는 업무를 꿈꾸며 회사 생활이 고달플 때마다 습관처럼 이직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고는 한다. "나 올해는 꼭 이직하고 만다!" 하지만 친구들에게 이런 얘기를 할 때마다 듣는 얘기는 "저 새끼가 제일 회사 오래 다닐 거다. 진짜로 이직하는 얘들은 조용히 준비해서 떠나더라ㅋㅋ" 근데 맞는 얘기 같다. 나는 아마 이 회사를 평생, 까지는 아니더라도 오래 다니고 있을 거 같다.
내가 아직 미들급 연차였으면 좀 더 적극적으로 이직을 시도했을지도 모른다. 이직에 왜 연차 핑계를 대냐 할 수도 있겠지만. 이 회사 저 회사를 거치면서 몸으로 느끼는 바는 회사 다 거기서 거기다. 연봉과 복지, 업무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리고 어떤 산업, 직군에서 일하는지에 따라 느끼는 게 다 다르겠지만. 내가 속한 IT직군 개발자들은 다 비슷하지 않을까? 물론 지금 회사가 작은 회사였다면 또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흔히 말하는 '네카라쿠배당토' 다니는 사람들 중에는 회사를 다니면서 업무가 크게 안 맞거나, 사람 때문에 심각한 스트레스 같이 이직을 꼭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게 아니라면. 이직을 적극적으로 시도 안 하지 않을까 싶다. 주변에 저런 회사를 다니는 친구들이나, 내 친구들의 얘기로는 "딱히 가고 싶은데, 갈만한 데가 없어"라는 게 대부분의 의견인데. 네이버에서 카카오, 카카오에서 토스는 약간 업그레이드 느낌이 아니고 옆그레이드의 느낌이 드는 게 그 이유인 거 같다. 옆그레이드를 고민하게 될 때는 기준의 잣대가 좀 변하게 된다.
업그레이드의 경우엔 앞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을 먼저 생각했다면(연봉, 복지 등), 옆그레이드가 되는 순간부터 내가 얻는 것 대비 포기해야 하는 것들을 생각하게 된다. 익숙한 회사 환경 등을 포기하고, 새로운 환경에서 다시 적응해 나가야 하는 경험, 익숙한 동료들 대신 미친놈이 있을지도 모르는 새로운 동료들과의 적응, 지금 다니는 회사에는 있지만 갈 회사에는 없는 복지 등... 물론 지금보다 더 얻게 되는 부분도 없지는 않지만.
최근 들어 개인적으로 드는 생각이 만약 이직해서 연봉이 1000만 원이 올린다고 한들 세금 떼고, 12개월로 나누면 매달 월급이 고작 100만 원도 안 되는 돈이 오르겠지 (아 물론 소중하고 큰돈은 맞지) 하지만 그게 내 인생을 드라마틱하게 변화시키기엔 부족한 돈인 거 같고, 그 돈을 얻기 위해서 내가 투자해야 하는 면접준비, 포기해야 하는 현재의 상황들을 봤을 때는 그다지 메리트가 있어 보이지는 않게 느껴진다. 그리고 연차가 점점 쌓여갈수록 이직 시 연봉상승 폭은 점점 줄겠지. 그럼 내가 지금 상황을 포기할 만큼 힘든가? 또 돌이켜보면 그렇지는 않기 때문에 스스로가 확정은 짓지 못하고 있지만 머릿속으로 얼추 내린 결론은 이직은 진짜 최악의 상황이 오지 않는 이상 안 할 거 같다.라는 것이다.
또, 얻는 것과 잃는 것에 상관없이. 내가 이직을 하려는 근본적인 이유가 뭘까에 대한 고민에도 답을 못 내리기 때문인 거 같다. 위에서 친구의 답에 머릿속에서 든 생각은. 이직하면 과연 나아질까?라는 것이다. 당장은 물론 괜찮을 수 있겠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지겹지도 않고, 매일매일이 새롭겠지. 그렇다고 그게 영원할 수는 없는 법. 언젠가는 또 지금과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겠지. 그럼 나는 뭘 원하고 있을까? 회사에서 네가 지루해하는 거 같으니, 지루해하지 않으려면 뭘 해주면 되겠니?라고 묻는다면 (전혀 그럴 일은 없겠지만) 선뜻 대답을 못할 거 같다. 나는 뭐를 원하는 걸까?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고민이 해소가 되지 않는다면 나는 결국 이직을 못할 거다. 원하는 게 뭔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뭔지, 부족한 게 뭔지를 알아야 그걸 해소시킬만한 회사를 찾던가 일을 찾아갈 텐데. 문득 고3 수능을 앞두고 아 해외 유학이나 떠나고 싶다 라면서 도피를 하고 싶은 그 시절을 생각나게 하는 거 같다. 지금 이 상황을 뭐가 됐던 그냥 피하고 싶은 게 아닐까.
이 고민에 대한 답을 언제쯤 알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아마 그때까지 항상 "회사 때려치우고 싶다"라는 말을 주술처럼 중얼중얼 외치고 있겠지. 그렇다고 답이 안 나오는 고민을 안 하기보다는 스스로에게 계속 네가 원하는 건 뭐니, 뭐가 너의 인생에 중요하니를 끊임없이 물어야 어느 정도 가닥이 잡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이란 있을 수 없는 거야.
- 만화 베르세르크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