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산책을 자주 하다 보니 조금 심심하게 느껴졌다. 마침 코로나 여파로 회사가 휴직 상태라 같이 쉬고 있는 직장 동료에게 도보 여행을 제안했다. 특별한 활동 없이 집에만 있다 보니 몸도 마음도 많은 호흡이 필요했고, 그는 1년 가까이 만나던 연인에게 이별 통보를 받고 기분 전환이 필요한 시기였다. 평소였다면 선뜻 대답하지 못했을 제안이었지만 무엇이 되었건 처방전이 간절하다고 했다.
처음 정했던 목적지는 출발점부터 약 15시간의 대장정이었지만 출발 시간을 고려해서 다른 곳을 검색해 보기로 했다. 여자 친구와 여행을 준비할 때처럼 들뜬 마음으로 풍경이 예쁜 곳, 허기진 배를 달래줄 맛집이 있는 곳, 혹시 불가피하게 일어날 상황을 대비해 대중교통을 쉽게 접할 수 있는 곳으로 알아보던 중 모든 것이 범위 안에 들어오는 곳을 발견했다. 고민할 것도 없이 바로 출발하기로 했다. 새로 정한 목적지는 처음 걸어야 했던 거리보다 반절 정도 줄어 부담도 덜었고, 무려 바다가 보이는 공원이었다. 정확히는 휴게소였는데 그곳에 있는 산책로였다. 각자 소소한 채비를 하고 출발 지점에서 만나기로 했다.
늦은 저녁, 약속 장소까지 걸어가며 짧은 농담을 메시지로 주고받았다. “10분 정도 걸어보니 이건 아닌 것 같다. 차를 가지고 올 테니 드라이브하자”라는 우스갯소리를 하면서도 요란한 콧노래는 발걸음을 재촉했고, 휑하게 비어있는 거리를 사진으로 남겼다. 산책이 바다 여행으로 바뀌었으니 얼마나 흥분상태였겠는가.
매일 아침 출근을 위해 지나는 도로를 익숙하게 그와 걸었다. 저마다의 스트레스로 잔뜩 성난 차들이 즐비했던 도로는 텅 비어 어떠한 소음도 없이 조용했다. 하필 동행한 사람도 직장 동료라서 바다로 출근하는 사람들 같았다. 처음으로 출근길이 즐거워진 순간이었다고 할까. 익숙한 출근길에서 벗어나 가보지 않은 골목길에 접어들었을 때 작은 포장마차가 보였다. 마침 허기가 졌으니 쉬었다 가기로 했다. 튀김 몇 가지 골라놓고 어묵꼬치를 먹으며 기다리려 했지만, 정해진 시간이 되면 내부에서 음식을 먹을 수 없는 제한이 있어 포장만 가능했다. 우리 같은 사람이 여럿 있었는지 주인아주머니께서는 앉아서 먹을 수 있는 적당한 곳을 자세하게 알려주셨다. 튀김이 노릇하게 튀겨지는 동안 이곳에서 덩그러니 포장마차를 운영하시는 이유가 있는지 여쭤보았다. 포장마차가 모여있는 곳보다 사람이 모여있는 곳에서 정을 주는 것이 좋다고. 어찌 보면 자기가 골목 상권을 독점한 게 아니겠냐며 어깨를 으쓱해하시기도 했다. 유동 인구가 많은 대로변에 삼삼오오 모여있는 포장마차들은 어쩌면 그날 사용할 재료가 부족해질 만큼 만족스러운 하루를 보낼지도 모른다. 항상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시간보다 빨리 천막을 덮고 가족들과 저녁 식탁 앞에서 마주하는 날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골목 상권을 독점한 아주머니께서는 우리가 부족하지 않게 더 많은 양을 주셨고, 일을 마치는 시간이 늦은 탓에 적당한 곳에서 아주머니의 정을 받을 수 있었다.
바다 위로 길게 이어지는 방조제 도로로 들어섰을 때 휴게소까지 남은 거리가 표기된 이정표를 본 것이 화근이 됐다.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참혹한 숫자로 표현하고 있었다. 야심 차게 출발했던 처음과 다르게 돌아가자는 농담이 조금씩 진심이 되었지만, 섣불리 돌아가자는 말을 꺼낼 수 없었다. 바다를 처방받은 그는 이룩하고자 하는 것이 분명하게 있었을 테니까.
푸른 바다를 생각하고 시작한 여행은 아니었으나 늦은 시간이다 보니 바다는 온통 검은색이었다. 그래도 헛헛하지는 않았다. 시답지 않은 대화들이 재미있었고 아스팔트 위에 핀 꽃을 보는 낭만도 좋았다. 다만, 어느 순간부터 정신이 몸을 지휘하고 있었고 발을 내디딜 때마다 다리에서 비명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잠시 휴식을 취하기로 하고 길바닥에 널브러진 채 앉아 가로등에 비치는 바다를 보고 있었다. 어찌어찌 여기까지 오느라 조각난 근육들을 주무르고 있는 동안 그는 모호한 표정으로 담배를 꺼내 물고는 연거푸 한숨만 뱉었다. 어떤 것을 헤아리고 있었던 걸까? 본인의 이별에 낙담하고 있었을까? 소원했던 서로를 한탄하고 있었을까? 어쩌면 통증에 통증을 더해 냉담한 현실을 수용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됐다고. 이제 돌아가도 되겠다고.
의미를 알 수 없었던 그의 말에 엉덩이를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구태여 말을 보태지 않고 택시를 탈 수 있는 곳까지 조용히 걷기만 했다. 방향만 다를 뿐이었는데 마음은 적지 않게 의연했다. 비록 목적지에 다다르지 못했지만 우리가 여행한 거리는 무엇을 덜어내기에, 그래서 휑해진 곳을, 느리게 걸었기 때문에 볼 수 있었던 것들로 채워 넣었다. 골목에 있는 슈퍼마켓에서 물을 샀기 때문에 아이스크림 냉동고를 서성이는 길고양이를 만져볼 수 있었고, 집주인을 궁금하게 만드는 거대한 거미집, 아스팔트 꽃 뒤로 분주하게 움직이던 일개미들의 행렬, 편한 운동화임에도 불구하고 뒤꿈치에 상처가 생겼지만, 바나나 우유를 마시며 들여다볼 쉼이 있었다. 돌아오는 택시에 올라타며 일말의 아쉬움도 후회도 없었던 건, 우리는 어디로든 발을 내디뎠다는 것. 덜어내고 싶은 것들을 무거운 발걸음 뒤로 조금씩 내려놓은 것. 그 황량해진 공간을 메꾸기에 충분히 느렸다는 것이다. 결과에 인색한 것보다 무색하지 않은 과정이 오늘을 여행이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게 했다. 바다를 바라보던 동료의 굳은살 낀 표정도 그곳에 덜어 놓고 온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