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신화 Nov 03. 2021

네잎클로버 같은 친구

  놀이터에 웃음꽃이 만발했다. 라온이와 로운이가 또래들과 치기 장난을 하며 곳곳을 누볐다. 나는 그 예쁜 모습과 시계를 번갈아 봤다. 집에 들어갈 시간이 훨씬 지났다. 가슴 한구석이 답답해졌다. 저녁 식사를 비롯하여 아이들을 꿈나라로 보내기까지 일들을 해치우려면 시간이 빠듯했다. 내가 집에 가야 한다며 큰 소리로 부르자, 두 꼬마는 땅이 꺼질 듯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한창 흥이 올랐으니 얼마나 아쉬웠겠는가. 
   나는 한 가지 제안을 했다. 더 논다면 집에 갔을 때 곧바로 씻으러 들어가야 한다고. 물놀이 없이 오직 씻는 것만 해야 한다고. 둘은 자신 있게 그러겠노라 하고는 다시 뜀박질을 시작했다. 집에 도착해서는 경쟁하듯 옷을 벗어 던지고 곧바로 씻었다. 몸에 물기를 닦고, 옷을 입을 때까지 단 한 번의 장난도 치지 않았다. 나는 맑고 뽀얀 두 작은 얼굴에 화장품을 발라주며 말했다. 
   “얘들아, 고마워. 엄마 말대로 이렇게 신속하게 샤워를 해줘서. 역시 엄마는 복이 많다니까.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내 아들이라니!”
   라온이가 우쭐거리며 말했다. 
   “왜 엄마가 복이 많은지 알아?”
   “왜일까?”
   “내가 준 네잎클로버 덕분이야.”


   라온이가 학교 정원에서 발견했던 것이다. 여섯 살 로운이가 조곤조곤 말했다.  
   “그런데, 네잎클로버는 어떤 사람이 그냥 그걸 잡으려고 허리를 숙여서 총에 안 맞은 거잖아.”
   “우와! 우리 로운이가 나폴레옹 이야기 기억하는 거야?”
   “응.”
   이야기는 이랬다. 나폴레옹이 전쟁터에서 평소 보지 못했던 네잎클로버를 발견했고, 그것을 꺾으려 허리를 숙였을 때 총알이 그 위로 날아갔다고 한다. 허리를 숙이지 않았다면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네잎클로버가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말은 여기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일년 전, 로운이가 다섯 살 때 해준 이야기인데 여전히 기억하는 것이 기특했다. 
   “혹시, 라온이도 기억해?”
   “응. 그래서 네잎클로버가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하는 거잖아.”
   “엄마, 근데…… 네잎클로버가 있어서 복이 있는 거 아니지?”
   로운이의 질문이었다. 방금 전 라온이가 자신이 준 네잎클로버 덕에 엄마에게 복이 있다고 한 말에 의문을 품은 것이다. 따지고 보면 타당한 지적이었다. 나폴레옹도 네잎클로버를 지니고 있어서 행운이 있었던 건 아니지 않은가! 로운이는 의아하면 그냥 넘기지 않는 집요함과 핵심을 콕 집어 질문하는 예리함을 지닌 아이였다. 
   “흐흐. 그래, 로운아. 네잎 클로버가 있어서 행운이 있는 건 아니겠다. 그런데 그거 알아? 네잎클로버가 있으면 사람들이 ‘이거 덕분에 앞으로 나에게 행운이 생길 거야. 좋은 일이 생길 거야.’라고 생각하게 되잖아. 그 덕분에 정말로 좋은 일이 생기는 거야. 그렇게 주문을 하는 거지.”
   “그럼, 네잎클로버가 행운을 주는 게 맞는 거네.”
   로운이는 의문이 풀리면 곧바로 인정하는 시원함도 지녔다. 
   “그래. 그러니까 좋은 생각, 좋은 말을 많이 해야 하는 거야. 라온이랑 로운이도 ‘나는 복이 많아.’라는 말 많이 하잖아. 그래서 이렇게 실제로 복이 많은 거고. 혹시……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라온이, 로운이 말고도 ‘나는 복이 많아.’라고 말하는 친구 있어?”
   “아니.”
   “아니.”
   “그 얘기를 많이 하는 게 좋아. 그래서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할 수 있게 해주면 좋지. 봐봐. 엄마가 평소에 그 말을 많이 하니까 결국 너희도 이렇게 많이 하게 된 거잖아.”
   “나도 저번에 유치원에서 색종이로 팽이 접다가 ‘역시 나는 복이 많아.’라고 했는데, OO이가 ‘그럼 나도 복이 많아.’라고 했었어.”
   “그랬구나!”
   두 여섯 살배기가 마주 앉아 팽이를 접으면서 그런 대화를 주고 받다니! 내가 옆에 있었다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을 것이다. 로운이가 먼저 건넨 말도, OO이로부터 되돌아온 말도 기특할 따름이었다. 둘이 최근 들어 매우 친해졌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는데,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엄마로서 자식의 친구 관계에 관심이 있을 수밖에 없다. 바르고 심성이 고운, 이왕이면 긍정적인 영향을 줄 정도로 괜찮은 아이와 가깝게 지내기를 바랐다. 그런데, 원하는 특징을 갖춘 친구가 나타나지 않을 수 있고, 설사 그렇더라도 돈독한 우정을 나누리란 보장은 없지 않은가! 좋은 친구를 사귀는 것은 복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내 아이도 그 복을 누리길 바랐지만, 괜찮은 방법이 딱히 떠오르지 않았었다. 그런데, 드디어 찾아냈다. 
   좋은 사람을 만나려면 내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바꿔 말하면, 좋은 친구를 사귀기를 바란다면 좋은 친구가 되어야 한다. 앞으로는 내 아이가 ‘어떤 친구와 친하게 지내면 좋을지’ 보다는 ‘어떤 친구가 되면 좋을지’에 더 의미를 두고자 한다. 바라건대, ‘네잎클로버 같은 친구’가 되기를. 복과 행운을 안겨주는 존재 말이다.
   나는 미소를 머금고 라온이와 로운이를 지그시 바라본 뒤 말을 이었다.  

  “앞으로 그 말을 더 많은 사람에게 해주면 좋겠다. 그럴 수 있을까?”
   “응.”
   “응.”
   녀석들이 ‘네잎클로버 같은 친구’로서의 길을 걸으며 뿌리는 복되고 행운이 넘치는 기운은 과연 어떤 친구에게 닿을까? 로운이가 유치원에서 친하게 지내는 아이를 보니 짐작이 갔다.  



매거진의 이전글 실수는 아름다운 도전으로 가는 기회란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