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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신화 Dec 08. 2021

밥에게 사랑과 짜증을 보내면서

  

  라온이가 학교에서 본 영상에 대해 전해주었다. 실험 영상이었는데, 같은 양의 밥이 담긴 두 그릇에 대고 각각 다른 말을 했을 때 밥의 변화를 관찰하는 것이었다.

  한 그릇에 대고는 매일같이 ‘사랑해’, ‘행복해’, ‘멋져’ 등과 같은 좋은 말만 하고, 다른 그릇에는 ‘짜증 나’, ‘미워’, ‘보기 싫어’ 등과 같은 나쁜 말만 하면 어떻게 될까? 며칠 후 두 밥은 모두 부패했다. 하지만 나쁜 말을 해주었던 그릇의 밥이 더욱 심하게 썩었다.

  나는 익히 알고 있는 실험이었다. 처음 그 실험에 대해 알았을 때 얼마나 신기하고 놀랐었는지 모른다. 여덟 살 라온이도 내가 느꼈던 감정을 그대로 느꼈다. 또한 내가 얻었던 깨달음을 녀석도 역시 얻었다.

  “엄마, 그러니까 바르고 고운 말을 하는 게 정말 중요하대.”

  “맞아. 우리 입에서 나가는 말이 이렇게 엄청난 영향을 미치지. 우리가 바르고 고운 말을 하는 것이 상대방에게도 중요하지만 나 자신에게도 중요해. 왜냐하면 내가 좋은 말을 하면 내 몸에 좋은 말의 기운이 퍼지고, 나쁜 말을 하면 내 몸에 나쁜 말의 기운이 퍼지거든. 그래서 엄마는 늘 바르고 고운 말을 하려고 노력하지. 우리 라온이랑 로운이도 그럴 거지?”

  “응!”

  “응!”

  여덟 살, 여섯 살 꼬마 형제는 영상 속 실험을 집에서 해보고 싶어 했다. 내가 똑같은 용기에 각각 밥을 담아서 건네니, 둘은 기대에 찬 눈을 반짝이며 하나씩 손에 들었다.

  “로운아, 내가 먼저 이 밥에 좋은 말 해줄게. 너는 거기에 대고 나쁜 말해. 그리고 조금 이따가 바꾸자.”

  녀석들은 거실을 돌아다니면서 그릇에 입을 가까이 대고 말들을 쏟아냈다. 라온이는 마치 아기에게 말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달콤하고 다정한 목소리로 밥과 대화했다. 로운이는 원수를 만난 사람처럼 밥에 대고 고약하게 악을 썼다. 라온이는 밥에게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 한 번씩 로운이를 쳐다봤다. 하지만 로운이는 이 세상에 자신과 밥 둘만 있는 것처럼 오로지 밥만 신경 썼다.  

  조금 뒤 라온이가 밥과의 대화를 멈추더니 로운이를 불렀다.  

  “로운아, 너무 그렇게 세게 말하지 마.”

   동생의 큰 목소리가 시끄럽고 방해가 돼서 하는 말인 줄 알았다. 그런데 라온이가 이어서 한 말에 내 추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러면 너한테 안 좋아. 알겠지?”

  실험에 몰입한 나머지 안 좋은 말을 강렬하게 퍼붓는 동생을 걱정한 것이다. 그 말의 기운이 동생에게 가지 않도록 말이다. 아이가 내가 해준 말을 기억하고 실천하려는 태도는 언제 봐도 기특하고 사랑스럽다. 무엇보다도 동생을 야무지게 챙기는 모습은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형의 말 덕분에 로운이는 강도를 조금 낮췄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처음의 수준으로 돌아갔다. 라온이가 다시 로운이를 불렀다.  

  “로운아, 이제 바꿔서 하자.”

  나는 녀석들을 말없이 지켜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신기한 실험을 하면서도 동생을 챙기는 라온이의 의젓함, 실험과 현실의 경계를 잊은 채 마냥 역할에 몰두하는 로운이의 순수함…… 이토록 사랑스러운 면모를 늘 가까이서 보는 나는 정말이지 행복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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