녀석은 여전히 백상아리의 사냥이 나온 페이지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그리고 전에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페이지에서 새로운 반응을 보이며 장난스레 말했다.
“이름이 레몬 상어야? 레몬 상어? 흐흐.”
“응. 여기 등 부분 색깔이 레몬처럼 노란색이어서 레몬 상어라고 하는 것 같네.”
로운이는 사진을 유심히 보더니 조금 전과는 달리 진지한 말투로 말했다.
“그럼 얘도 생각이 있고, 판단을 할 수 있으니까 자기 이름은 자기가 결정하겠네?”
일곱 살이 이런 말을 한다는 자체도 놀라웠지만, 동심의 언어 활용 감각도 새삼 감탄스러웠다. 아이들은 여러 곳에서 접한 다양한 표현들을 차곡차곡 모아두었다가 필요할 때 꺼낸다. 녀석 나름대로 판단했을 때 적절해 보이는 상황일 테지만 어른의 시각으로는 어울리지 않아 보일 때가 많다. 내 시각으로 보면 로운이의 말은 문학 작품이나 청중의 가슴에 울림을 주는 강의에서 나와야 자연스러웠다. 상어의 이름을 두고 그런 말을 하다니! 하지만 분명한 건 로운이의 방식이 매우 멋스럽다는 것이다. 의외성의 힘이리라.
“물론, 그렇겠지. 우와! 로운아, 정말 멋진 생각이다.”
“그런데 왜 ‘레몬 상어’야?”
“그건 사람들이 정해서 부르는 이름인 거지. 아마 바닷속에서는 이 상어가 결정한 이름이 있지 않을까? 바닷속 친구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된 이름으로.”
“맞아.”
로운이 덕분에 물음표들이 머릿속에 피어올랐다. 지금껏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궁금증들이었다. 레몬 상어의 실제 이름(인간의 언어가 아닌 상어의 언어로 된 이름)은 무엇일까? 만약 그들이 인간의 언어를 안다면, 자신이 '레몬 상어'라고 불리는 걸 어떻게 생각할까? 혹시 개명을 원하지는 않을까?
또한, 생명체의 소중함을 다시금 느꼈다. 로운이의 말대로 모두들 생각이 있고, 판단을 할 수 있고, 자기 결정권이 있는 존재들이니 말이다.
한편, 동물원과 수족관에 있는 생명체들을 생각하니 안타깝고 미안해지기도 했다. 그들은 매일 어떤 기분으로 지낼까? 언젠가 관광지로 유명한 숲에 갔을 때가 떠올랐다. 철조망이 설치된 곳이 있었는데 그 안에는 새 몇 마리가 새 장속에, 다람쥐가 작은 우리에 있었다. 굳이 그곳에 있을 필요가 없었다. 숲 조성이 잘 되어 있어서 조금만 걸으면 새와 다람쥐를 얼마든지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 봤던 한 장면은 언제고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우리 속 다람쥐가 쳇바퀴를 돌리고 있을 때, 철조망 밖에 다람쥐 한 마리가 다가와 두 앞 발을 들고 서서 코를 씰룩거렸다. 나는 똑똑히 봤다. 쳇바퀴를 돌리던 다람쥐가 멈추더니 철조망 밖 다람쥐를 물끄러미 쳐다본 것을. 녀석도 한때는 우리가 아닌 숲 곳곳을 자유로이 누비지 않았을까?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나는 녀석을 위해 뭐라도 해주고픈 마음에 그 숲의 관리소에 전화를 걸었다. 내가 본 것을 전하며 철조망을 없애달라고 했다. 그로부터 1년 후, 다시 그 숲에 갔다. 철조망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고, 나는 혀를 끌끌 차며 씁쓸함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부디 그 다람쥐가 숲에서 도토리도 줍고, 나뭇잎을 밟으며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마음껏 내는 날이 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