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이 되니 숙제라는 걸 하게 된 라온이. 대부분은 십 분 내에 끝낼 만큼 간단했다. 입학 후 3개월 무렵,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숙제를 들고 왔다. ‘문제집 풀기’였다.
“엄마, 내가 이거 다 풀면 엄마가 확인해줘야 해. 그게 부모님 숙제야.”
평소 같으면 밖에 나가서 숨이 차도록 뛰어놀 시간이었다. 하지만 라온이는 숙제를 먼저 하겠다며 책상에 앉았다. 들떠 보이기까지 했다. 뭐든 새로운 경험을 좋아하는 하는 녀석이다. ‘문제집 풀기’라는 낯선 일이 흥미를 자극한 모양이었다.
내 아이가 문제들을 풀어가는 과정이 궁금했다. 하지만 이해 안 가는 것이 있으면 꼭 물어보라는 당부를 남기고 자리를 떴다. 혼자서 할 수 있겠냐는 나의 물음에 라온이가 당연하다며 호기롭게 답하며 서둘러 연필을 꺼냈기 때문이다. 아이가 무언가를 스스로 해내려는 의지를 보이면 최대한 존중해주었다. 내가 옆에서 방향을 잡아주고, 이끌어 주면 보다 쉽게 해낼 수 있는 일이라도 개입하지 않았다.
드디어 나의 숙제인 ‘채점’ 시간이 왔다. 답 칸에 적힌 삐뚤빼뚤한 글씨들이 앙증맞았다. 그 누구의 도움 없이 라온이 스스로 풀어나갔다는 자체만으로도 대견했다. 어떤 문제는 지문 자체가 여덟 살이 이해하기 난해할 수 있었다. 꼼꼼히 읽고 깊이 생각해야 뜻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문제였다. 아니나 다를까 라온이는 엉뚱한 답을 적어 놓았다. 나는 문제를 다시 차분히 읽어보게 한 뒤, 방금 읽은 대로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물었다. 라온이의 대답을 들어보니 녀석이 문제를 어떤 식으로 오해했는지 알 수 있었다.
“아, 라온이는 그렇게 이해했구나.”
“맞잖아!”
라온이는 따지듯 목소리를 높였다. 내가 차근차근 설명을 해주자 멋쩍게 웃고는 지우개로 답을 지웠다. 그리고 새로운 답을 적었다.
“우와! 제대로 이해하니까 바로 정답을 썼네. 라온이는 오늘 아주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어.”
“뭐?”
“‘정말로 아는 것은 내가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아는 거’라는 거.”
“그게 무슨 말이야?”
여덟 살에게는 어려운 이야기였다. 어른조차도 단번에 이해하기 힘들만했다. 그런데도 나는 아이들과 대화 할 때 이런 방식을 즐겼다. 본격적인 대화에 앞서 일부러 어려운 말을 먼저 던지기. 육아인으로 7년 넘게 지내는 동안 숱하게 보고 깨달은 바가 있다. 동심들은 낯선 이야기, 특히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일수록 더욱 집중하고 호기심을 한껏 드러낸다. ‘도전’이라는 씨앗을 품고 있고, 그것이 싹을 틔우는 과정을 즐기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 좀 어려운 얘기지? 아까 라온이가 혼자서 문제를 풀 때는 모두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알고 보니 문제 자체를 이해 못 한 게 있었잖아. 라온이는 그것조차 몰랐었는데, 엄마 얘기를 듣고 나서야 무엇을 몰랐었는지 알게 되었지? 덕분에 이 문제를 제대로 풀 수 있게 된 거고. 이제 ‘내가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아?”
“응.”
“대단하다. 어려운 말이었는데 이해하다니! 오늘 라온이는 더욱 발전할 기회를 얻었던 거야. 안다고 생각하는 것 중에 혹시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게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보는 거. 아주 좋은 경험이었지. 앞으로 학교에서 다양한 걸 배울 거야. 그럼 아까처럼 다 안다고 생각하고 넘어가기보다는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게 좋아. 그러다 보면 라온이는 점점 더 발전하게 되지. 제대로 아는 것이 많아지게 되니까. 당분간은 엄마랑 연습을 좀 해야 할 거야. 그러다 익숙해지면 라온이 스스로 척척 할 수 있게 돼. 참! 이것을 위해서는 평소에도 뭐든 궁금해하는 습관을 키우는 게 필요해. 엄마가 라온이에게 이해 안 가는 거 있으면 꼭 물어보라고 자주 말했잖아. 왜 그랬었는지 이제 알겠니?”
“응.”
논어의 한 구절이 떠오른 덕에 가능했던 대화다. ‘앎’에 대한 공자의 생각을 라온이와 나누고 싶어졌다. 전에도 때때로 아이들에게 논어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소개해주곤 했다.
“<논어>에 나오는 공자 있지? 공자는 정말이지 엄청나게 많은 걸 알고, 지혜로운 사람이거든. 그 지혜를 배우고 싶어 한 사람들이 많았어. 어느 날, 공자가 제자에게 이렇게 말했어.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진정으로 아는 것이다.’라고.”
라온이는 잠자코 내 눈을 응시했다. 공자의 말을 조금 더 파고들어서 이해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그렇게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려는 녀석을 위한 질문을 던졌다.
“혹시……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어려울 거 같아? 쉬울 거 같아?”
“그건 당연히 쉽지!”
“그래. 쉬울 거 같지? 우리 라온이는 모르는 거는 모른다고 말하지?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잘 못 해. 왜 그럴까?”
“몰라.”
투명한 아이의 기준으로는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당연한 일을 왜 못 하는 것인지…….
“모른다고 말하는 걸 창피하다고 생각하거든. 그래서 모르면서도 안다고 말하기도 해. 정말 안타까운 일이야. 그렇게 하면 모르는 것에 대해 제대로 알 기회를 못 얻는 거니까. 그리고 아는 걸 안다고 말하는 것도 문제가 있을 수 있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알고 보면 그게 틀린 것일 수도 있지. 아까 라온이가 혼자서 숙제할 때, 이 문제를 어떻게 푸는지 안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사실은 제대로 아는 게 아니었잖아. 그러니까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를 제대로 아는 게 중요하단다. 그리고, 솔직하게 말해야 하고. 혹시 이해가 되니?”
“응.”
“그래. 우리는 앞으로 진정으로 아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자. 라온이는 그렇게 될 거야.”
공자의 말을 두고 이야기의 폭을 얼마든지 넓힐 수도 있었다.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를 제대로 파악하는 방법, 알고 있다고 섣불리 말하는 것의 위험성, 솔직히 말할 수 있는 용기……. 하지만, 그쯤에서 멈췄다. 그날의 라온이에게는 경험에서 온 깨달음에 집중하는 것이 더 의미 있었다.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 말이다. 그것을 제대로 소화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