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돌아온 라온이가 체육 시간 얘기를 꺼냈다. 줄넘기를 했다는 말을 듣자마자 나는 ‘우와!’하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라온이는 매일같이 놀이터에서 땀이 범벅이 되도록 줄넘기를 하고 또 했던 아이다. 그리 좋아하는 걸 학교에서도 했으니 얼마나 신났겠는가! 하지만 라온이는 덤덤하게 말을 꺼냈었고 나의 호응에도 가볍게 한번 미소 지었을 뿐이다. 이어서 여전히 덤덤한 태도로 말을 이었다.
“엄마, 선생님이 내가 줄넘기 잘하니까 OO이를 가르쳐 주라고 했어.”
“우와! 그래서 라온이가 가르쳐줬어?”
“응. OO이는 줄넘기를 잘 못 해. 한 번에 두 번이나 세 번밖에 성공 못 해. 그런데, 난 오늘 54번이나 성공했어!”
줄넘기 실력이 뛰어나서 선생님에게 인정받고 친구에게 가르쳐 줄 정도였는데, 별일 아니라는 듯 반응하더니…… 자신의 개인 최고 기록을 갈아치운 사실을 말할 때만큼은 목소리에 힘이 넘치고, 얼굴에 흡족함이 가득했다.
나도 한껏 흥분한 모습을 보이며 축하해 주었다. 곧이어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차분하게 말했다.
“우리 라온이는 줄넘기를 일찍 시작하고 연습을 많이 해서 실력이 좋은데, 아마 OO이는 줄넘기를 이제 시작했나 보네. 그럴 때는 라온이처럼 잘하는 사람이 가르쳐 줘야 하는 거지. 한글도 마찬가지야. 어떤 친구는 학교에 오기 전에 미리 글을 배워서 잘 읽고, 잘 쓰지? 그러면 한글을 이제 막 배우기 시작해서 잘 모르는 친구를 가르쳐줘야 하는 거지.”
“맞아. 선생님이 그래야 한다고 했어. 잘 아는 친구가 잘 모르는 친구 가르쳐줘야 한다고 했어.”
“아, 그랬구나. 그래서 친구들이 그렇게 해?”
“응.”
그제야 이해가 갔다. 라온이에게 있어 줄넘기를 잘 못 하는 친구를 가르쳐주는 일은 당연한 일이었던 게다. 담임이 뛰어난 아이를 추켜세우는 대신, 그 실력을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나누도록 지도한 덕분이었다.
“라온아, 너무 아름다운 이야기다. 1학년 3반 친구들이 서로 돕는 모습이 참 예쁘고 사랑스럽네.”
왜 학교가 변해야 하는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 날이었다. 내가 학생이었던 때를 생각하면, 누군가 무언가를 탁월하게 잘하면 선생님은 친구들 앞에서 그 아이를 칭찬했다. 모두들 그 아이를 우러러보는 분위기가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경쟁과 위축을 만들어내는 일이었다. 그 속에서 지낸 아이들이 자라서 만든 오늘날 우리 사회의 모습은 어떤가?
그날의 나는 라온이의 학교 친구들이 서로 돕는다는 얘기를 듣고 열렬히 칭찬해주었지만, 언젠가는 그런 칭찬이 필요 없는 날이 오면 좋겠다. 아이들의 그런 행동이 더는 칭찬 거리가 아니라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 되는 사회가 된다면 가능한 일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