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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신화 Jun 29. 2021

내가 받았던 사랑을 다른 이에게 쏟고 있다


나는 세상 그 무엇보다 뜨겁고, 깊고, 진한 사랑을 받았다. 그 사랑의 기억들은 영화의 짧은 소개 영상처럼 남아 있고, 문득문득 머릿속 상영관에서 재생되곤 한다. 그때마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행복이 내 온몸을 휘감는다.
 

장면 1. 

  엄마가 어린 나를 꼭 껴안고 누워서 엉덩이를 토닥이며 흥겹게 불러주던 노래가 있다. 
 
  우리 막내가 예뻐 죽겠네! 정말 정말 예뻐 죽겠네~

  우리 막내가 예뻐 죽겠네! 정말 정말 예뻐 죽겠네~
 

  나는 재미있는 놀이처럼 생각하며 엄마를 따라 노래했고, 까르륵거리곤 했다. 막내딸의 반응에 엄마는 더 신이 나서 반복했다. 신나는 잔치에 놀러 온 사람처럼 그야말로 흥에 겨워 부르고 또 불렀다.      


장면 2. 

  손발이 유난히 차가웠던 나는 한겨울이면 늘 꽁꽁 언 손을 한 채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는 내 작은 손을 잡고 깜짝 놀라더니 서둘러 당신의 옷 속에 넣었다. 그러고는 겨드랑이 사이 맨살로 꽉 물었다. 엄마의 체온이 빠르게 퍼진 덕분에 시린 통증에서 순식간에 탈출했다. 철부지였던 나는 그게 마냥 좋았다. 엄마가 얼마나 차가웠을지는 생각조차 못했다. 변명을 하자면, 전혀 눈치를 못 챘다. 잠시 스치기만 해도 소스라치게 놀랄 만큼 냉기가 가득했던 손이었건만, 엄마는 차가워하는 내색은커녕 “어유, 내 새끼. 손이 이렇게 차가웠어.”라며 걱정되고 안타까워서 어쩔 줄 몰라하는 표정을 지었을 뿐이다. 내 손을 옷 밖으로 꺼내 다시 잡았을 때 따뜻해진 걸 확인했을 때야 함박웃음을 보였다. 그러니 내가 알아챌 도리가 있었겠는가! 
 
 장면 3. 
   내가 일곱 살 때, 치기 장난을 하며 뛰어놀았을 때 한 언니가 나를 밀었다. 나는 낮은 절벽에서 떨어졌고 뾰족한 돌에 이마를 찧고 말았다. 그 직후의 상황은 기억이 안 난다. 아무래도 나의 언니들이 집으로 달려가서 엄마에게 전했던 것 같다.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건 새하얀 옷을 입었던 엄마의 등, 다급하게 달리느라 생긴 빠른 반동이 내 볼을 퉁퉁 쳤던 느낌이다. 엄마는 어린 딸을 들쳐 없고 병원까지 달렸다. 버스 정류장으로 따지면 두세 정거장은 되는 거리였지만 잠시도 쉬지 않고 전속력으로 달렸다. 자신이 맨발이었다는 사실도 잊은 채. 엄마에게는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사건이겠지만, 나는 그때를 생각하면 '엄마란 존재는 이런 것인가!'하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곤 한다.

  엄마의 그토록 뜨거운 사랑을 받았던 내가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나는 어떤 엄마일까? 우리 엄마처럼 아이들을 사랑할까? 하루에도 몇 번이나 아이들이 예쁘고 사랑스러워서 어쩔 줄 모를 순간이 계속됐다. 나의 두 천사들을 향한 사랑이 담긴 노래를 만들어서 수시로 불러주었고, 한겨울에 밖에서 놀다가 얼음처럼 차가워진 작은 손을 내 목덜미에 대고 녹여주었다. 아이가 아프면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학창 시절에는 시험 기간에도 밤을 새워 본 적이 없던 나였는데 말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툭하면 해주었다. 그것만으로는 내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 부족한 것 같았다. 너무 흔하고 식상한 표현같기도 해서 이왕이면 다채롭게 말해주려 했다. 

  “우리 라온이랑 로운이는 엄마에게 너무 소중해. 만약에 누군가 나에게 지구, 달, 우주를 합친 거보다 더 크고 좋은 걸 줄 테니까 라온이, 로운이랑 바꾸자고 해도 나는 절대 안 바꿀 거야. 절대! 라온이랑 로운이는 그 어떤 것보다도 소중하니까.”
   “엄마에게 가장 쉬운 일은 라온이랑 로운이를 사랑하는 일인데, 엄마에게 가장 어려운 일은 라온이랑 로운이를 미워하는 일이야. 이렇게 사랑스러운데 어떻게 미워할 수가 있겠니? 정말이지 너무 어려워. 불가능 해.”     

  나의 엄마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나도 내 아이들에게 사랑의 기억을 가득 심어주고 싶다. 아이들에게 간 사랑이 내게 다시 돌아오는 걸 바라지는 않는다. 그냥 계속해서 흘러가길 바랄 뿐이다. 내 아이들이 부모가 되어 낳은 아이에게, 그 아이가 낳은 아이에게, 또…….

  나의 엄마가 내게 뿌린 사랑이 이 세상에서 끊이지 않고 계속해서 흐르고 퍼지면 좋겠다. 그로 인해 세상이 조금 더 따뜻해지길 바란다. 마음의 병으로 힘들어하는 이들과 가슴 아픈 뉴스가 넘치는 이 세상에 필요한 것은 사랑의 온기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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