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꽃집이 문을 닫았다. 전날까지만 해도 크고 작은 화분들이 가게 앞에 즐비했었는데, 하루아침에 모든 물건이 사라졌고, 텅 빈 가게만 덩그러니 남았다.
노부부가 함께 운영하던 꽃집이었다. 요즘 식으로 멋지고 세련된 인테리어는 전혀 없고,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낡고 오래된 곳이었다.
아이들과 그 앞을 지나가던 나는 굳게 닫힌 유리문을 보고 멈춰 서고 말았다. 그리고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외쳤다.
“어머! 꽃집이 문을 닫았네. 물건들도 다 빠졌고. 이제 장사 안 하시나 보다. 왜 그런 거지?”
두 달쯤 전에 옥상 텃밭에 심을 모종을 그곳에서 샀었다. 주인 할아버지는 투박한 말투로 나의 질문들에 답해줬었다. 그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툭툭 던지는 말속에는 구수한 친절과 모종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 담겨있었다.
그런데 정말이지 왜 문을 닫은 걸까? 혹시나 주인 할머니가 아픈 건 아닌지……. 허리가 90도에 가깝게 굽은 분이었다. 긴 세월 동안 허리 펼 짬도 없이 일만 하다가 결국 허리가 굳어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분의 건강에 대한 염려는 금방 털어버렸다. 확인도 안 됐는데 은 남의 건강을 함부로 걱정하는 것은 오히려 당사자에게 안 좋은 기운을 줄 것만 같아서다.
내 손을 잡은 채 유리문 안쪽을 이리저리 살피던 라온이가 자신감 넘치는 말투로 말했다.
“엄마, 왜 문을 닫았는지 나는 알 거 같아.”
“그래?”
이 여덟 살 배기는 평소 관찰력이 뛰어나고, 없어진 물건을 기가 막히게 찾아내는 아이였다. 물건들이 ‘라온아, 나 여기 있어. 어서 찾아줘.’라고 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드는 순간이 많았다. 녀석이 이번에 실력 발휘를 제대로 해주길 바랐다.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단서를 찾아내서 꽃집에 대한 나의 궁금증을 속 시원히 풀어주기를. 걱정을 덜어주기를.
“장사가 너무 잘 돼서 꽃들이 다 팔려서 문을 닫은 거 아닐까?”
“아…… 라온이 생각에는 그런 거 같아?”
“응! 이제 더 이상 팔 게 없는 거지.”
“그래. 그럴 수도 있겠다.”
한없이 명랑한 표정으로 눈을 반짝이는 녀석을 향해 미소를 지어 주었다.
우리는 유리문 앞에 조금 더 서 있다가 가던 길을 다시 갔다. 라온이의 걸음은 깃털처럼 가볍고 산뜻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무거운 마음을 떨치질 못했다.
같은 상황을 두고 우리를 이토록 다른 생각으로 이끈 것은 무엇이었을까? 능력의 차이일 것이다. 어른과 달리 동심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스스로 머릿속을 행복으로 채우는 능력을 지녔다. 엉뚱함이라는 양념까지 가미되니 행복은 그야말로 강력해진다. 덕분에 아이들은 그토록 꾸밈없고 해맑은 표정으로 웃을 수 있는 것이다. 어른은 감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웃음이다.
꽃집에 대한 라온이의 행복한 추측이 맞다고 보는 건 무리가 있다. 이미 많은 경험이 쌓인 어른의 기준에서 보면 말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나도 엉뚱한 동심이 되고 싶어졌다. 부디 라온이의 추측이 사실이면 좋겠다.
하지만, 나는 다시 평범한 어른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지금도 그 꽃집 앞을 지나갈 때마다 왠지 마음 한편이 짠한 것을 어쩔 수가 없다. 가게 앞에 작은 의자를 두고 앉아서 오가는 사람들을 보거나, 동네 어르신들과 담소를 나누던 꽃집의 노부부는 지금 어디에 계신 건지…… 그 어디에서건 건강하게 잘 지내시길 진심으로 바란다. 아무래도 총명한 라온이에게 한 번 물어봐야겠다. 그분들이 지금은 어디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