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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남수 Dec 30. 2020

억울하면 밥 사라?


 딸이 초등학교 6학년 때, 소위 ‘왕따’를 당해 힘든 때가 있었다. 말만 꺼내면 눈물이 글썽글썽, 울먹울먹 꺼낸 아이의 왕따 이유는 어이없었다.      


 반 아이 중 지능이 낮은 아이가 한명 있는데 깔끔하지 않고 인지력도 떨어지는 그 아이에게 분위기를 주도하는 아이들이 함부로 대하자 다른 아이들도 눈치 보며 멀리한다고 했다. 아무도 그 아이 옆자리에 앉지 않으려 하자 선생님은 내 딸에게 물었고 딸은 그 아이 짝이 되었다. 나는 사람을 차별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하며 (그렇게 살지도 못하지만) 정답게 지내라고 훈수를 두었다. 딸이 놀림 받는 아이와 잘 지내자 그 아이 엄마는 딸을 찾아 와 고맙다고도 했다. 그 꼴(?)을 못 봐준 아이들이 “잘난 척 한다”며 친한 아이들 접근도 다 차단한다는 것이다. 나는 고민 끝에 담임 선생님과 상의했다. 금방 상황을 짐작한 선생님은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반드시 바로 잡겠다”며 분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초등학생들이니 아직은 부모의 영향을 많이 받을 나이라는 생각에 대표적 권력실세(?) 아이들의 어머니들을 만나보기로 했다. 학부모들을 따로 만날 일이 없던 나였기에 마당발로 통하는 한 아이 어머니를 통한 주선이었다. 실세(?) 라는 아이 어머니가 어머니들 사이에서도 실세분위기라 놀라웠다. 나는 최대한 겸손하게 “우리 아이도 새침해서 친구들 관계가 서툴 것이다.”며 설득했다. 그들은 을을 대하는 갑의 태도 같았지만 한껏 대안을 내놓은즉슨 “마침 주말에 00의 생일이니 어울려 놀 수 있게 토요일오후에 레스토랑을 예약해서 잔치를 해주자.  아이들에게는 집에 가서 잘 이야기 하겠다”고 했다. 그 비용은 당연히(?) 내가 내는 것으로 제시했고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어머니들을 내가 만나자고 한 것이니 그러자 얼결에 수용하고 일어섰다. 나는 우리 아이가 맘 편히 학교에 다니는 것이 절실했다.


 집에 돌아와 거울 앞에 앉는 순간 기가 막히고 모멸감에 얼굴이 달아오르며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왜 내가 조심스럽게 설득해야 하고 잘못이 있는 것처럼 굴어야 하지? 오히려 부당하게 아이에게 상처를 가한 자신의 자녀들에 대해 미안해해야 하는 것 아닌가? 최소한 “미안하니 밥값은 우리가 내겠다.”는 정도라도 해야 마땅한데, 억울하니 밥 사라고? 

 거대한 벽 앞에 선 느낌이었다.     


 주말이 되기 전 아이들 의견을 들어보지 않고 정한 잔치약속은 취소되었다. 다행히 어머니들의 선심(?)과 선생님의 노력으로 그런대로 문제는 풀렸다. 

 그 과정은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어쩌면 내가 지역 시민단체 사무국책임자를 맡고 있던 때고 우리 아이가 공부도 잘 했으니 그나마 엄마들이 그 정도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딸은 잘 추슬러 한 뼘 자랐지만 기억은 선명하게 남아 교사가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는 지금도 가끔 이야기한다.

 학교가 사람사이의 존중을 교육하지 않는다면, 

 가정이 타인에 대한 배려와 이해를 토론하지 않는다면, 

 가해와 피해의 기준도 잘 모르는, 피해자가 더 힘든 사회가 변하지 않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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