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남수 Dec 31. 2020

대구탕의 기억으로 해를 보내며

 그날, 성인 남자 팔뚝보다 굵고 큰 생선 두 마리가 까만 눈알이 튀어나올 듯 나를 응시했다.  

 탄성이 터져 나왔다. 90cm에 이르는 대구 두 마리가 당일 택배로 왔다. 

 얼음 채운 아이스박스에 거제 바다가 넘실거렸고 가득 찬 인정에 터질 듯했다. 암 수 각각 한 놈씩으로(해부를 해보면 알 수 있다) 얼마나 튼실한지 두 손으로 들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한 마리만으로도 가까이 사는 동생네를 비롯하여 네 집 식구가 포식을 하고도 싸가고 남을 정도였다. 오랫동안 거제도에 살았지만 그렇게 큰 대구는 처음 보았다.     


 보낸 분은 “택배 보내면서 너무 행복했다”라고 고맙고 황송한 내 마음을 살폈다. 내가 사무국 책임자로 일했던 거제시민단체의 가장 연로한 회원이었다. 이 분은 등에 작은 배낭 하나를 메고 걸어 다니면서(스스로 ‘베낭할매’라고 했다) 휴지나 유리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이런저런 프로그램을 공지하면 즐겁게 참여했고 제법 높은 산행을 함께 한 적도 있다. 당신은 검소하기 짝이 없지만 타인을 위한 씀씀이는 아끼지 않았다.


 되짚어보면 나는 그분께 밥 한 그릇 대접하지 못했다. “우리 국장님 고생한다.”며 어느새 먼저 돈을 내버렸다. 굳이 꼽자면 자주 사무실로 찾아오는 그분과 차를 나누며 가족 이야기, 인생 이야기를 들어 드린 정도랄까. 

 거제를 떠난 후 연락도 못 드렸는데 한 해 막바지 겨울, 가장 맛이 좋을 때인 대구를 보낸 것이다.

 이 뿐이 아니다. 언젠가 일이 있어 거제도를 방문하고 서울로 돌아갔는데 내가 속해 있던 단체 실무자가 전화했다. 그 어른이 나에게 차비를 좀 주려고 했는데 가버려서 아쉽다며 보내주라고 돈 봉투를 놓고 가셨다는 것이다. 그 돈은 후원회비로 처리하되 나에게 보냈다 말씀드리라고 한 후 댁으로 전화를 걸었는데 통화가 이어지지 않았다.(휴대폰은 쓰지 않는 분이었다) 

 먼 곳으로 이사하여 소식도 뜸한 사람에게 보인 이분의 인정은 마음을 먹먹하게 했다. 

 애석하게도 그 후 뵙지 못했다. 이미 10여 년 전의 일이고 알만 한 사람에게 물어보아도 근황을 모른다고 했다.      

 속 좁은 나는 사람들에게 서운하다고 생각하는 적도 있지만 따지고 보면 받은 것이 많다.

 어떤 지인은 거제의 “능포 앞바다에서 낚시 배로 잡은 것”이라며 은빛비늘이 반짝이는 갈치 상자를 보내주기도 했다. 만학의 열정을 가상히 여겨 등록금을 보태준 친구도 있다. 제주도에 살고 있는 지금도 어느 친구는 우리 집 냉장고에 멸치가 떨어지는 일 없도록 보내준다. 전라도 김치를 좋아하는 나에게 여러 번 김치를 보내주는 게 미안해서 올해는 이른 김장을 한 후 나 김장했다고 사진 공유하기까지 했건만 그래도 맛보라고 또 보내온 후배도 있다. 귀한 책, 정성 담긴 효소, 사진작가가 직접 만든 멋진 사진 달력, 지역특산품, 올해 출판 후 보내드린 책 한 권 받은 후 시를 짓거나 문자 전화로 답해준 응원과 격려의 언어들……


 돌아보면 빚진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다. 이해관계나 ‘품앗이’ 적 주고받음이 아닌 순전히 사람에 대한 마음 하나로 한결같은 분들, 나의 인생을 허전하지 않게 해주는 사람들이다.     

 

 또 한 해가 저문다. 코로나 팬데믹 사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들이 너무 많다. 의료진들의 고생은 바라만 봐도 미안하고 감사하다. 이 상황에도 일터에서 멈추지 않는 노동으로 세상은 돌아간다. 따뜻한 방 안에서 자판을 두드릴 수 있는 나의 평안이 많은 분들의 노고로 이루어지고 있음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2020년 마지막 날인 오늘 제주도는 눈이 펑펑 내리고 있다. 창밖 공원에서 신이 난 아이들 소리가 들린다. 부디 모두에게 평안한 새해 오기를…….      


작가의 이전글 억울하면 밥 사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