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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남수 Feb 15. 2021

명절 연휴, 판을 펼쳤다

  

 형제들과 모여 놀 때 화투를 사 본 적은 있지만 내 돈 주고 게임 판을 구매한 건 처음이다.

 이름 하여 ‘토종씨앗 농사 판 놀이’


 어릴 때 밭 매고 모내기도 거들며 자라긴 했다. 하지만 도시에서 청년기와 젊은 날을 보낸 후 농사는 기억 한 편에만 남았다. 제주도민이 된 후 제주도 생활사를 공부하며 관심이 새로워졌다. 농사는 삶의 바탕이기 때문이다. 육지 토양과 달리 제주도는 화산 토질이어서 물 대어 모를 쪄내는 논농사는 불가능하다.(아주 극히 일부가 있긴 하다) 지금은 환금성 좋은 특용작물재배가 많아졌지만 예전엔 주로 보리, 조, 메밀 농사가 중심이었다. 농사법도 육지와는 많이 다르다. 옛 생활사를 공부하다 보니 호미나 쟁기 같은 도구를 비롯하여 씨를 뿌리고 거두는 절기, 수확물로 만들어지는 음식과 풍습 모든 게 흥미롭다. 그런 터라 SNS에 소개된 토종씨앗 놀이판을 보며 흥미를 느꼈다. 토종씨앗으로 텃밭 보급 운동을 이끌어가는 지인 L 선생에 대한 신뢰도 작용해서 바로 구매신청을 했다.

 이번 설에는 식구들끼리 오붓하게 대방어회를 걸고 이 게임 판을 펼쳤다. 


 게임은 각자의 농사 판을 앞에 놓은 다음 나무로 깎은 귀여운 말을 하나씩 정한다. 씨앗카드 농사 카드 생활카드를 가운데 쌓아놓고 주사위를 던져 말이 입춘 청명 곡우 소만 망종 백로 대한 등 절기를 한 바퀴 도는 동안 씨앗카드를 모아 심는다. 두 바퀴 때는 주사위를 던져 말이 도착한 자리의 절기에 따라 심기도 하고 수확도 하여 곳간을 채운다. 주사위를 잘못 던져 가뭄 장마 태풍 등을 만나면 기껏 채워 둔 씨앗카드를 반납해야 하는 상황도 생긴다. 이때 비 카드, 해 카드, 달 카드 같은 것을 확보해 두었다면 막을 수 있다. 행운의 농사 카드 생활카드들을 잘 모으면 점수를 높일 수도 있다. 똥 카드를 확보하면 특정카드의 점수를 두 배로 높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마이너스 점수를 만들게 되는 카드도 있다. 


 게임을 하다 보니 선비 잡이 콩, 개세 바닥 상추, 개골 팥, 삼층 거리파 같은 처음 접한 씨앗도 많았다. 어떤 씨앗을 어느 절기에 심을 수 있고 수확할 수 있는지 배우기도 한다. 농사는 농민의 땀, 바람, 비, 해, 똥 같은 것들이 어우러져 이루어짐을 새삼 되새기게 한다. 놀면서 익히는 토종 농법이라 할 것이다.      

 이것은 중부지방의 농사 때를 중심으로 만든 것이라 지역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기발하고 건강한 상상력에 큰 박수를 보낸다. 이런 방식으로 생활 속 일상, 이를테면 음식 만들기라던가, 누구나 알아야 할 노동법 상식 같은 것을 놀이판으로 만들어 교육용으로 사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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