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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남수 Feb 23. 2021

쑥 한 줌의 행복

 나이 들수록 햇살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오늘 같이 화창한 날 빛나는 이 햇살을 그릇에 담아 두고 싶다. 

 자주 가는 동네 오름 벤치에 앉으니 꼭대기만 하얗게 눈을 쓴 한라산이 들어온다. 시선은  산을 향해 멀리 두고 두 손바닥은 펼치니 혈 자리가 따뜻해지면서 햇살이 온몸으로 퍼지는 느낌이다. 

 날씨가 좋으니 식물도 더 빛난다. 언덕에 파랗게 쑥이 더 자랐다. 맨 손으로 가시덤불을 헤치고 찔리기도 하며 쑥을 똑똑 뜯었다. 향이 어찌나 좋은지 냄새만으로도 보약 먹는 기분이다. 20여분 남짓 손을 놀리니 이 정도면 국 한 냄비 끓이겠다.      


 봄나물 중 가장 친근한 쑥은 흔하지만 보물 같은 존재다.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부터 쑥을 캤다. 식구대로 들로 산으로 다니며 쑥을 캐면 할머니가 머리에 이고 장에 가서 팔았다.  약이나 떡, 갖은 음식재료로 쓰이니 쑥은 있는대로  다 팔렸다. 농촌 여자들은 모두 소쿠리를 들고 산 넘고 물 건너며 쑥을 채취했다. 마른 잎과 뿌리 쪽을 피해 깨끗이 취하는 것도 실력이었다. 쑥을 캐려고 풀 사이로 칼을 쑥 넣는데 뱀이 고개를 쳐드는 바람에 기절초풍하며 엉엉 운 적도 있다. 뱀은 이렇게 글자로 적기만 해도 오소소 소름이 돋는다.

 그래도 해마다 봄이면 쑥을 캤다.  

   

 이맘때쯤 거제도에 가면 한 철 주요 메뉴인 도다리 쑥국을 먹을 수 있다. 생각만 해도 그리운 맛이다. 도다리가 없어도 멸치국물 내고 된장 풀어 한소끔 끓인 후 들깻가루 한 숟가락 풀기만 해도 맛은 그만이다. 손톱 밑은 새카매졌지만 ‘이미 계획이 다 있는’ 머릿속이 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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