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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남수 Jun 23. 2021

원주의 봄

토지문화관단상  6-너구리

   

 토지문화관 본관을 바라보면서 오른쪽에 박경리 선생님이 거주하셨던 공간이 있다. 그 뒤뜰엔 다가가면 꽥꽥 요란하게 고개를 쳐들고 울어대는 거위 집이 있고, 큰 소나무가 있는 언덕에 올라서면 선생님의 딸이며 토지문화관 이사장을 지낸 김영주 선생의 묘지가 있다.     


 박경리 선생님 숙소 옆에 선생님이 만드셨다는 작은 연못이 있는데 식당 가려면 이곳을 지나게 된다. 어느 날 연못 앞에 P작가가 웅크리고 있어 뭐하느냐며 가보니 너구리가 있다고 했다. 산에서 연못으로 내려오는 배수로인 굵은 파이프 통로 안에 사는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P작가는 여러 번 봤다는 너구리가 다른 작가들 눈에 띄지 않았다.     


 식시시간 전 너구리를 보려고 일찍 나와 발걸음을 죽여 살금살금 다가서기를 여러 날 째, 햇살이 좋던 어느 날의 점심시간에 드디어 나도 너구리를 보았다. 녀석은 파이프 입구에 나와 해를 쬐고 있는 것 같았다. 살며시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으려는 순간 너구리는 동의되지 않은 초상권 침해를 거부하며 잽싸게 들어가 버렸다. 식사시간이 임박해져 한 명 두 명 모여든 작가들에게 나도 너구리를 보았다고, 갈색이고 요만하다고 팔을 벌려 호들갑을 떨었는데 그날 이후로 너구리는 보이지 않았다.    

  

 작가들은 너구리 한번 보려고 매번 시간 전에 연못가에서 발소리를 죽여 쪼그리고 앉았다. 나는 급기야 집에서 볶아와 먹던 내 칼슘보충제 멸치 몇 마리를 너구리의 숙소 앞에 놓아두었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멸치는 그대로 있었다. 아무래도 너구리는 이사를 가버린 것 같았다.      

 작가들의 과잉 관심이 위협이 되었는지, 날씨가 풀리면서 주거공간을 바꾼 것인지, 너구리의 마음을 알지 못한 채 짝사랑은 끝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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