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세대를 이해하려는 어느 앞선 세대의 생각
직업을 중계하는 전문일을 하는 누님이 계십니다.
직업의 특성상 젊은 세대들을 많이 접하는 모양입니다. 이들과의 접촉과정에서 조금 다른 부분 혹은 이해하기 어려운 차이가 있음을 종종 느끼곤 한다죠.
그래서 집에는 '요즘 세대'들을 이해하기 위한 책들이 몇 권 눈에 띕니다.
꽂혀있는 책들 중에 눈에 들어오는 한 권을 집어 들었습니다.
'세습중산층 사회_조귀동'
책을 모두 읽어내지는 못했습니다. 아이와 여행을 하던 중이라 조금씩 주요 내용 및 훑어볼 뿐이었죠. 그래도 몇 가지 의미 있는 내용들이 들어왔습니다. 특히나 60년대와 90년대 생들을 비교하면서 60년대들의 변화과정을 대한민국의 시대적 변화와 연동해서 설명하는 것이 꽤 와닿았습니다.
60년 대생들이 사회에 유입되는 시점에서는 대기업들이 체계를 잡기 시작하고 발전하면서 4년제 대학을 나온 이들이 빛을 보던 시대였다고 합니다. 최근 젊은 세대들의 부모세대인 이들은 이렇게 구축된 학력과 재력의 상관관계 속에서 계급을 형성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지금 세대까지 세습되었다는 이야기죠. 그러하기에 이 구조에 속하지 못했던 이들과 그 자녀들은 세습시켜 줄 재력과 인맥이 상대적으로 적게 되고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 불균형이 더욱 가속화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얼마 전 한국에서 귀국하던 매우 더운 날이었습니다.
집 앞에 지하철 역이 생겨서 무거운 캐리어를 들고 내려가려 에스컬레이터를 타려는 순간 뒤에서 어떤 청년이 말을 걸더군요.
'캐리어 들고 에스컬레이터 타면 안 됩니다.'
돌아보니 한 청년이 퉁명스럽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왜 안 되냐. 공항에서도 에스컬레이터로 캐리어 옮기고, 난 매번 캐리어를 들고 에스컬레이터를 탔지만 제지를 당한 적은 없었다. 무슨 근거로 안된다고 하는 건가?
무더운 날 짜증이 났던 전 하지 말아야 할 말을 던지고 말았죠.
"당신은 뭐 하는 분인데 이런 이야기를 하시는 거죠? 누구시죠?"
"어떤 근거인지 말해봐요. 왜 안되는지."
순간 당황하던 그 청년은 주위를 둘러보다 손가락으로 가리킵니다.
"저기 써져 있잖아요."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캐리어는 안된다는 아이콘 표시가 되어 있는 표지판이 그제야 눈에 띄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야속한 그 청년의 뒤통수를 바라보면서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더 많은 땀을 흘리며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으로 건널목을 건너 이동해야 했습니다.
이동하는 내내 이 상황에 대해 돌이켜 봤습니다. 언제부터 한국에서 캐리어를 끌고 에스컬레이터를 타면 안 된다고 하는 거지? 그리고 아무도 없던 그 상황에서 그 친구는 나의 반응에도 불구하고 굳이 원칙을 강조한 이유는 무엇일까?
쏟아지는 땀을 닦으며 조금 분한 마음도 생기기도 하는 복잡한 심정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나름대로의 답을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다시 방문한 한국에서 지내면서 누님과 이야기를 나누다 나온 이야기였죠.
조국의 딸인 조민씨의 사건은 젊은 세대들의 가치관을 드러내는 사건이었습니다. 기성세대들은 다 까봐라 다른 넘들은 안 그렇더냐...라는 관점이 있었다면, 공작되었는지 어땠는지는 모르지만 이렇게 드러나버린 이 사건은 진실의 공방을 뒤로하고 젊은 세대들의 분노에 기름을 끼얹는 상황이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부모유산(경제적, 사회적등)을 물려받은 이들이 너무 쉽게 세상을 유쾌하게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불만이었겠죠.
또한, 사회적 시스템이 고도화되고 SNS가 발전하면서 정보와 지식이 개인들에게 집중되면서 규범과 원칙의 개념들이 굳건화 된 면도 있지 않을까 하는 점입니다. 많은 외국인들이 이야기하는 카페에서의 핸드폰, 지갑등의 방치등이 그러하겠죠. 유의미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외국생활을 하는 제 관점의 판단이기도 합니다.
한 여성 취준생의 이야기가 이슈가 됐던 적이 있었습니다.
면접관이 질문이 맘에 들지 않자, 대뜸 '이런 질문을 하려면 절 왜 불렀어요?'라면서 항의했다는 이야기죠.
전후 구체적 이야기는 잘 모르겠지만, 저희 세대로서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이기에 기억에 남습니다.
유난히 당당하고 자기 할 말과 행동을 두서없이 할 수 있는 요즘세대.
어쩌면 상대적으로 풍요로운 환경에서 태어나 자란 이 세대들의 특징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러하기에 사회를 바라보고, 정치를 해석하고, 주변과의 관계 맺음이 다를 수 있다고 보이고요.
이런면들이 '그들 세대'의 가치관이기에 저에게 지적을 했던 그 청년도 그러하지 않았을까 생각을 해봅니다.
'꼰대들 문제야...' 하면서 말이죠.
무엇이 옳다 그르다고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려는 측면이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더 '요즘세대'들의 다른 부분을 언급해보려 합니다.
누님과 이야기를 하다 보니 요새 취준생들은 자소서도 돈 내고 코칭을 받는다고 합니다. 이뿐만이 아니죠. 말 잘하기 코칭, 인간관계 맺는 방법의 코칭 등 기성세대들은 상상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이 코칭 혹은 컨설팅으로 수업료를 내고 있습니다. 컨설팅 비용에 유난히 인색한 기성세대들과 비교해서 좋은 현상일 수도 있겠죠. 좋다 나쁘다를 떠나서 이런 기류는 분명 또렷해지고 있다는 판단입니다.
상대적이겠지만 저의 경우엔 혼자서 공부해서 연구해서 할 수 있거나 그러해야 한다고 생각되는 것들도 비용을 지불한다는 면이 좀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요즘세대들은 가치관에서는 비용을 내고 빠른 결괏값을 얻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하나 봅니다. 실은 우리 주변의 많은 것들이 이렇게 흘러가고 있긴 합니다. 운동, 문화, 경제, 사회, 비즈니스... 거의 모든 영역에 걸쳐있기에 하나의 비즈니스 아이디어가 될 수도 있죠.
정보가 넘치고 선택에 대한 피로도가 높아만 가다 보니, 가장 빠른 길을 찾는 방법으로 이런 현상이 발생합니다. 인플로언서들의 활동들은 광고판을 뒤흔들어 놓기도 했습니다. 정보를 제공하고 현실적 선택을 해주는 이들이 화려한 이미지로 승부를 내는 기존 광고판을 밀어내고 있죠.
개인적으론 결과보단 과정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하기에 마냥 이런 현상이 좋다고만 보진 않습니다.
상하이에서 인공지능 연구모임(SEB)을 하면서 논의했던 우려 현상으로는 AI발전으로 과정을 탐험하고 우연히 얻는 지식에 대한 가능성이 줄어든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우연'으로 참 많은 것들을 이뤄왔기 때문에 이런 결과론적 효율이 장기적으론 부정적으로 여겨집니다.
두 가지 정도의 개인적인 판단을 해봤습니다.
동일시대에 살고 있지만, 참 다양한 가치관과 관점들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이것을 세대별로 나눈다면 '무지개'보다 많은 분류가 생기게 되겠죠. 하지만 무지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경계가 나눠지진 않습니다. 서로 간에 스며들어 있는 거죠. 우리네 세대차이가 이러한 것이 아닐까 싶어 무지개를 언급해 봤습니다.
무엇을 사색하면서 연구(硏究)를 해보는 것은 유익합니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아이디어와 탐구력이 생기기 때문이죠. 머릿속에 맴도는 생각을 잠시 정리해 보는 생각으로 적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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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