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작가 with 공동체공간
1960~80년 도시화가 진행되기 이전, 마을 사람들은 정자, 오래된 나무 아래, 골목길 등에서 자연스레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공동체 의식을 형성했다. 하지만 도시가 발전하면서, 경제적인 이유로 이웃과 자연스레 만날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은 하나 둘 사라졌다. 어느 순간 내 옆집에 누가 사는지 모르고 알 필요성도 못 느끼게 됐다. 각박해진 도시의 삶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물리적인 커뮤니티 공간의 감소 또한 공동체 파괴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하다.
도시화로 인해 커뮤니티 공간은 감소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유휴공간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급속한 산업의 변화와 압축 성장에 따라 도시 구조가 재편되면서 학교, 동주민센터 등 다양한 유형의 유휴공간이 발생한 것이다. 그래서 최근 화두는 유휴공간을 지역의 자원으로 어떻게 해석하고 활용할지이다. 서울시는 유휴공간의 활용과 공동체성 회복을 위해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마을활력소’다. 유휴공간을 마을의 거점공간으로 조성해 주민이 조성 단계부터 운영까지 참여해 마을에 필요한 공동체 활동을 직접 할 수 있도록 돕는다.
최근 화두는 유휴공간을 지역의 자원으로 어떻게 해석하고 활용할지이다.
구로구 천왕역 인근에는 ‘버들마을활력소’가 있다. 10여 년 동안 사용되지 않던 천왕역사 내 공간을 리모델링하여 2017년 공동체 공간으로 조성했다. 그래서 다른 지역의 마을활력소와는 다르게, 지하 2층으로 내려가야지 공간을 만날 수 있다. 천왕역 4번 출구를 나와 길을 따라 조금만 걷다 보면 우측에 ‘버들마을활력소’ 표지판이 보인다. 과거 오동나무와 버드나무가 많아 ‘오류(梧柳)’라는 지명으로 불렸다던 오류동은, 마을의 고유성을 살려 ‘버들마을활력소’라 이름 붙였다. 주민 공모를 통해 지어진 이름이다.
표지판 안내를 따라 걸으면 곧 지하철 출구처럼 생긴 입구에 다다른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간 곳에는 책이 빼곡히 꽂혀있는 책장과 테이블, 부엌, 커다란 쿠션이 놓여있는 다목적 공간이 제일 먼저 반긴다. 벽면에는 서울시와 구로구 소식을 전하는 게시판이 있어, 이곳에 온다면 소식을 빼놓지 않고 챙겨볼 수 있다.
버들마을활력소의 규모는 약 900평으로 서울시의 다른 마을활력소에 비하면 큰 규모에 속한다. 그만큼 주민이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의 유형과 프로그램이 다양하다. 다목적 공간 옆 복도형 갤러리에서는 버들마을활력소에서 운영되는 동아리와 프로그램에서 만든 주민의 작품이 전시된다. 예술 단체 입주공간에서는 이들이 제공하는 프로그램이 진행되는데, 현재는 구로 서예가협회와 구로 한묵회가 캘리그래피, 한글·한문 서예, 문인화 등의 강좌를 운영 중이다. 주민 모임 공간도 규모와 유형별로 다양하게 구성돼있어 소규모 회의, 강의, 음악·댄스 등의 동아리 연습 등 모임 목적에 맞게 대관이 가능하다. 2시간 기준 1~2만 원 선이지만, 구로구민이라면 50% 할인 적용된다.
공간만 언뜻 둘러본다면 ‘문화센터네!’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큰 차이점이 있다. 마을활력소는 주민이 직접 프로그램 기획부터 운영까지 참여한다는 점이다. 인근에 거주 또는 근무한다면 누구나 ‘주민참여단’에 속해 마을에 필요한 프로그램을 제안하고, 이웃과 커뮤니티 활동을 기획·운영해볼 수 있다.
올해 ‘주민참여단’에 신청한 주민은 27명. 3개월의 기간 동안 매주 모여 서로를 공감하는 방법에 관한 강연을 듣고, 사업계획서를 함께 작성해보는 ‘공감워크샵’의 과정을 거쳤다. 버들마을활력소를 어떻게 활용할지를 두고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치열하게 논의했다. 버들마을활력소 공간 벽면 곳곳에 붙어있는 전지와 포스트잇에 그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목소리가 커질 때마다 볼 수 있도록 ‘존중’, ‘경청’, ‘공감’의 세 가지 단어를 크게 프린트해 벽면에 붙였다. 그럼에도 가끔씩 큰 소리가 오가고 갈등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모두의 의견이 같을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마을을 위한다는 마음’으로 모인만큼 서로의 목소리를 낮추고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가며 결국 하나의 의견으로 좁힐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결정된 올해의 미션은 ‘마실 터, 정(亭)’이다. 과거 마을의 쉼터 역할을 했던 정자(亭子)처럼 남녀노소 누구나 편하게 갈 수 있고, 그곳에서 이웃 간의 정(情)을 나누자는 뜻을 담았다. 동네에 다양한 연령대가 거주한다는 특성을 고려해 아이, 청소년, 가족 모두 와서 즐길 수 있도록 주제별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아이정’은 아이와 부모가 언제든지 버들마을활력소를 방문해 공동육아를 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버들마을활력소 안에 아이들이 신발 벗고 맨발로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장점을 적극 활용했다. 집에서 혼자 육아하는 것보다 버들마을활력소에 나와서 이웃과 함께하면, 보다 재밌으면서 덜 힘들게 육아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나온 아이디어다. ‘청소년정’은 학생들만을 위한 놀이터 겸 자율 공간을 제공할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가족정’을 통해서는 반나절 동안 가족끼리 모여, 게임도 하고 공간 탐방을 하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위의 프로그램은 고정이 아니다. 내년이 되면, 새롭게 구성된 주민참여단이 그때의 지역 상황에 맞게 프로그램을 변경할 수 있다. 마을에서 이웃과 하고 싶은 활동이 있다면, 버들마을활력소의 문을 두드려보는 건 어떨까? 더 많은 주민이 참여할수록 버들마을활력소는 주민의 필요에 맞는 공간으로, 마을의 공동체를 강화하는 거점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로컬공간기록 프로젝트 도시작가 시즌2, 김아영 작가
본 글은 서울시공동체공간 X NSPACE with 도시작가 프로젝트로 쓰였습니다.
천왕역 버들마을활력소
서울 구로구 오리로 1130 지하2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