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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아책방 Oct 17. 2019

최고의 한 끼

 몇 가지의 재료로 조화롭게 먹을 수 있다. 


1년 365일 중 300일 정도는 냉장고에 김밥 재료가 있다.

 김밥 재료라고 해 봤자 별거 없다. 단무지, 계란, 크래미, 어묵 정도밖에 안 된다. 그 외의 재료는 냉장고에 있는 반찬이나 재료들로 채워진다. 넣는 재료가 그때그때 달라지니까 맛도 똑같지가 않다. 


냉장고에 양배추가 있는 날이면 채 썰어서 김밥에 함께 넣고, 소시지가 있으면 프라이팬에 구워서 두껍게 썰어 김밥에 넣어서 먹는다. 우엉을 좋아하지만 마트에는 우엉을 잘 팔지 않거나 비싸고, 시장에는 우엉 파시는 아주머니가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오셔서 시장 가는 날을 잘 못 맞추면 우엉을 사기는 어렵다. 내가 우엉을 좋아하는 걸 아는 친정엄마는 우엉조림을 자주 해 주셨다. 친정 엄마표 우엉조림이 있는 날에 우엉 가득한 김밥이 된다. 전 날에 불고기 먹다가 남으면 김밥에 넣어 먹는다. 거기에다가 샐러드 재료, 깻잎이나 쌈 재료를 같이 넣고 말아먹으면 이것도 별미가 된다. 이제 추워지면 달고 맛있는 시금치의 철이 된다. 그러면 김밥엔 시금치 나물이 가득 들어가게 된다.


이렇게 내가 만든 김밥에는 그때그때 냉장고 사정에 따라 달라진다. 남은 야채와 재료로 넣어 만들다 보니 어떤 맛이 날까, 궁금하다. 그 맛에 먹는 재미가 더해진다. 




잠깐 나들이 갈 때도 김밥을. 




어릴 때 엄마는 김밥을 자주 해 주셨다. 주말에 김밥 재료 한 가득 해 놓고 주중에는 우리가 먹을 만큼 말아서 주셨다. 동생과 나는 그게 맛있어서 요구르트랑 먹기도 하고 입 한입 가득 한 모습이 웃겨서 서로 웃다가 입 밖으로 밥이 튀어나오기도 했다. 엄마는 꼭 소풍 간다고 해서 김밥을 해 주시는 게 아니었다. 재료가 늘 일정하게 들어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만드는 김밥과 크게 다를 게 없었다. 주말 시간 있을 때, 재료 준비 해 놓고 평일에는 있는 재료들을 김과 밥 위에 올려 돌돌 말아서 싼다. 한입 크기로 썰어서 먹는다. 




낮에 아이와 둘이 있을 때 나에게 김밥은 최고의 한 끼가 된다. 

식탁에 차려 밥 먹기가 쉽지 않고 차려서 먹는다고 해도 갑자기 아이가 울거나 졸려서 칭얼거릴 때는 먹던 밥도 중단하고 아이에게 간다. 아이에게 볼일 다 보고 식탁으로 가 보면 밥이 다 식어져 있다. 제대로 한 끼를 먹기가 쉽지 않다. 그럴 때는 김밥을 만든다. 하나씩 썰어 접시에 올려놓고 아이 보면서 왔다 갔다 하면서 먹기도 한다. 간편하게 잘 먹을 수 있다. 


분식집이나 김밥 집에서 파는 김밥을 생각하면서 만들면 재료 준비부터 오래 걸린다. 김밥에 대한 부담이 생겨, 해 먹기 힘들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보통의 김밥에 벗어나 원하는 대로 만들다 보니 간단하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한 끼가 김밥이 되었다. 어떻게 먹어도 맛있고 집에 있는 재료들을 털어 내 마음대로 만들어 먹을 수 있다. 


한 줄에 몇 가지의 재료로 밥과 김과 잘 어우러져 조화롭게 먹을 수 있는 김밥. 

오늘도 난 이렇게 김밥 덕후가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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