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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아책방 Jan 03. 2019

오늘도 쓰고 내일도 쓰고, 계속 쓴다.

오늘도 쓰고 내일도 쓰고, 계속 쓴다.


한 문장, 한 문장씩 쓰면 쓸수록 괜찮을 줄 알았다. 글을 잘 쓸 줄 알았다. 막힘 없이 쓸 줄 알았다. 근데 이게 웬일인가, 흰 종이를 마주하며 쓰려고 할 때마다 막힌다. 글을 시작하는 순간만큼은 나 혼자가 된 기분이랄까. 막막하고 답답하다. 흰 종이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글을 썼다가 지웠다를 반복한다. 어떤 날은 머릿속에 갑자기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있어 술술술 써 내려갈 때가 있다. 하지만 이런 날은 자주 오지 않는다. 어쩌다가, 가끔가다가 한 번씩 있을 뿐이다. 마치 기다리던 택배아저씨를 반기는 마음이랄까. 언제쯤이면 이런 기분이 들지 않고 막힘 없이 써 내려갈 수 있을까. 


어젯밤 TV를 보다가 ‘골목식당’이란 프로그램을 보았다. 고로케 집을 방문한 백종원 대표가 사장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개업하고 3개월이 지난 고로케 집이었는데, 고로케와 꽈베기를 만드는 사장의 속도는 무지 느렸고, 반죽과 속도 맛이 없었다. 그래서 백대표는 매일 연습을 많이 하면서 만드는 속도를 높이라고, 실력을 쌓으라고 했었다. 하지만 사장의 연습량은 실력을 쌓기엔 터무니없이 부족했고 핑계와 변명만 늘어놓았다. 공간이 부족하다, 튀김기가 작다, 반죽숙성시간이 필요하다, 등등. 그러니 백대표는 답답하고 화가 나서 한 마디 했다.


"그러니까 연습해서 늘려야 한다니까. 실력이 된 다음에 이야기를 하라니까.”


연습이 더 많이 필요하다. 고로케집 사장은 익숙하게 만들고 제대로 팔려면 기본기부터 다져야 한다. 기본기는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고, 요령을 구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꾸준하게 연습하며 쌓아야 한다. 



우리는 모두 결정적인 순간에 종이 앞에서 혼자가 됩니다. 그런 순간을 묘사하기 위해 ‘백지의 공포’라는 말이 있나 봅니다. 아이디어를 내기 위해 종이와 홀로 마주하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부담스러우니까요.

그 순간 주눅 들지 않고, 백지를 깜짝 놀랄 그림으로 채우는 비결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평소에 종이 앞에, 혼자, 오래 앉아 있어 보는 겁니다. 순간적인 요령에 기대지 않고, 일상 속에서 꾸준히 자극 받고, 깊게 느끼는 겁니다. 직접 발상해보고, 믿을 수 있는 이에게 피드백을 받는 겁니다. 꾸준한 운동으로 우리 몸의 근육을 키우듯, 꾸준히 시간을 내서 생각의 근육을 단련하는 겁니다. 

《생각의 기쁨》 유병욱 


순간 부끄러웠다. 글 쓰기 시작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글 감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고 투덜거린다니.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것도 어렵다고, 매번 막막하다고 징징거린다니. 변명만 늘어놓는 고로케집사장을 보며 저렇게 답답한 사람에게 백종원 대표가 장사 잘되게 해 주는 방법을 알려주는 게 불편하다고, 아깝다고만 뭐라고 할 게 아니었다. 나 역시 ‘매일 글쓰기’라는 연습이 절실했다. 부끄럽다. 



오늘은 집에서 글 쓰려고 앉았더니 피곤하고 졸려서 집중이 되지 않았다. 퇴근한 남편과 저녁 먹고 노트북을 챙겨 집 근처의 카페로 나왔다. 익숙한 환경에선 익숙한 아이디어가 나올 것 같아서, 환경을 바꾸면 생각이 조금 더 발전하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다. 그래서 평소와 다른 환경에서 글 쓰려고 나왔다. 여전히 워드의 흰 화면을 마주하는 건 익숙하지 않지만, 그래도 쓴다. 뭐라도 쓰기 시작해야 문장이 되고 문장이 모여 문단이 이뤄지고 하나의 글이 완성된다.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게 아주 작고 사소할지라도 이것을 조금씩 다듬고 발전 해 나가면 좋은 글 감이 되어 글을 만들어준다. 그러니 생각하기를 멈추지 않아야 하고 매일 짧게나마 꾸준히 글을 써야 한다. 머릿속에 부유하는 생각을 하나 끄집어내어 씨앗을 심듯이, 글로 쓴다면 점차 생각이 씨앗이 발전해 잘 자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다 어느 순간엔 글쓰기가 다시 정체된다. 회사생활을 잘 하다가도 이유도 모르게 권태기가 와서 여기저기서 욕 많이 먹는 순간이 오는 것처럼. 

잘 쓰는 듯 했는데, 

잘 이어나가는 듯 했는데, 

내 글에 자신이 있었는데. 

내 생각을 이야기하기가 잘 되고 있었는데. 

이 모든 것을 무너지게 만드는 때가 오기도 한다. 아무리 생각을 짜 내어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고 헛도는 기분이랄까. 얼마 전에 읽었던 책 《생각의 기쁨》에서 유병욱 작가는 이걸 ‘생각의 계단’이라고 표현했다.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듯이 생각도 마치 계단 오르기처럼 자라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이 되면 한 계단 올라간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고 한다. 


생각에도 계단이 있는 것 같다고요. 지금의 너와 그때의 나도 별다를 바 없다고요. 넌 지금 계단 위에 서 있는 거고, 네가 부딪힌 건 벽이 아니라 다음 단계로 올라서는 계단의 시작점이라고요. 지금은 고통스럽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한 계단 위로 올라가 있을 거고, 나도 그랬다고요. (…)

생각의 계단에서 한 가지 다행스러운 일은, 계단을 오르기는 쉽지 않지만, 일단 오른 후엔 아래 칸으로 내려가는 일은 드물다는 겁니다. 

《생각의 기쁨》 유병욱 



글 감이 없다고 생각이 막힌다고, 벽이 생겼다고 투덜거리고 있을 게 아니라 그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써야 한다. 매일 써야 한다. 우린 이렇게 생각의 계단 위에 올라가 있는 것이다. 책을 읽거나 TV를 보거나, 영화를 보거나, 큰 목적 없이 사람들을 만나며 아이디어를 얻거나 하면서, 일상 속에서 자극을 받고 깊게 느끼며 꾸준하게 인풋을 늘려야 한다. 그래야 생각의 계단에서 한걸음, 한걸음씩 올라 어느새 글을 잘 쓰게 될 줄 누가 알까. 


오늘도 이렇게 다짐한다.

읽고 쓰기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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