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분노, 육아맘이 다스리는 법.

알베르 카뮈 <페스트>

by 미아취향


"아기 돌 지나면 더 힘들어요."

육아 선배들이 나에게 그랬다. 아기가 누워있을 때 여유롭고 뱃속에 있을 때가 편하다고 했다. 돌 지나서 걸어 다니다가 뛰어다니면 내내 쫓아다니느라 피곤할 거라고 했었다. 에이, 지금도 피곤한데 더 힘들면 어쩌나? 돌 지난 지 4개월이 지난 지금, 절실히 깨닫고 있다. 반신반의했던 선배들의 조언이 진짜 내 이야기가 되었다. 집안에서 하루 종일 빠르게 돌아다니는 아이를 데리고 무엇을 할까 고민을 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밖에 나가서 에너지를 쏟아내고 나면 한결 나은데 이 나쁜 코로나 바이러스는 외출도 못하게 우리 모자(母子)를 집에 묶어놔 버렸다. 밖에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도 나누고 싶고, 아이도 또래 친구들을 만나 사회활동을 시작해야 하면 좋은데 어렵게 되었다.



남편이 퇴근하고 집에 오기 전까지는 아이와 나, 둘이서 시간을 보내는데 대체 무엇을 하고 놀면서 시간을 보내야 하나. 거기에다가 마스크를 왜 써야 하는지도 이해가 되지도 않는 아이를 설득해서 씌워 보려니 아이의 짜증만 폭발한다. 아이는 모자같이 머리나 얼굴에 무언가 닿는 것을 지독 시리 싫어하는데, 마스크를 씌우려고 가르쳐보고 시도도 하고 회유도 해 보았지만 아이의 짜증에 마스크에 연결된 끈이 몇 번이나 터져버렸다. 마스크 껴야 산책 나간다고 했더니 급기야 베란다로 도망가 버린다. 하루 종일 외출만 손꼽아 기다리는 아이에게 현실의 무게를 지게 해서 속상하고 안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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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무엇을 하며 놀까. 일상의 모든 것이 놀이가 되고 있다.




정말로 돌 지나고 나니 체력이 달려서 힘들어졌는데,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정신적으로도 피폐해지고 있었다. 대체 이 바이러스가 뭐 길래 이렇게 나를 힘들게 하는 건가! 아이를 데리고 같이 외출을 하며 봄기운을 즐겨보려고 했던 꿈이 낙엽처럼 바스락거리며 부서져버렸다.








바이러스에 대한 분노와 몸과 마음이 힘든 이 감정을 삭이며 책을 읽었다. 아이를 재우고 나는 당연스레 책 앞에 앉았다. 책 읽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지금 시대에 아주 잘 맞는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 책에선 어떤 현실이 펼쳐질까, 사람들은 어떻게 극복할까 궁금했다. 사실 여태 카뮈의 책을 읽어본 적이 없었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읽고 인용하고 언급하는 카뮈지만, 나에겐 ‘아직’이었다. 하지만 지금 꼭 읽고 싶었다. 나의 코로나 블루를 다스릴 만한 책을 찾다 보니 가장 눈에 띄는 책이었다.


KakaoTalk_20200607_001934181.jpg 아이를 재우고 난 <페스트> 속으로 들어간다.


오랑 이라는 한 도시에 전염병이 돌아 도시는 봉쇄되고, 그 속에서 각자 자리에서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지금 우리의 상황과도 아주 흡사하다. 카뮈는 ‘페스트’ 상황을 어떻게 마무리 지었을까 궁금해서 읽기 시작했지만,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는 페스트가 어떻게 종료되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결국은 치료 방법이 개발되어 언젠가는 페스트가 종식될 것이다. 가장 주목할 점은 ‘각자의 자리에서 어떤 역할을 하며 페스트 상황을 버티고 이겨내고 있는지’였다. 각자의 사회적 위치와 직업, 그리고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 사람들이 이 상황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달랐다. 페스트를 이겨낼 것인지, 비관적으로 보고 있을 것인지, 그에 따라 어떻게 대처를 할 것인지 개인마다 차이가 있었다. 다양한 관점에서 페스트를 보고 받아들인다는 점이 크게 다가왔다.



책에서 여러 사람들의 입장이 나온다. 이 도시에 살지 않지만 일하러 잠시 온 사람이기에 여길 빠져나가고자 했지만, 도시를 위해 변화하는 사람 랑베르, 보건대를 만들어 사람들을 돕고자 하는 타루, 페스트 상황을 즐기는 코타루 등등 여러 사람들이 나온다. 그들에게는 사는 방식이 있었고 그만한 이유가 제각기 있었다. 지금 우리 주변에서 있을만한 사람들이기도 했다.



가장 비중 있게 다뤄지는 인물인 의사 리유가 본 것과 들은 것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책은 전개되어간다. 지금 뉴스를 보면 의료진이 코로나에 맞서 대응하고 환자를 돌보는 모습에서 힘들고 고생하는 것을 알고 있긴 하지만 깊이 헤아려보지 못했었다. 그저 지금 내 입장만 보며 분노하고 있었다. 코로나가 진압이 잘 되지 않고 왜 이리 번지는지 궁금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내 마음의 변화가 일어났다.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입니다."
"성실성이 대체 뭐지요?" 하고 랑베르는 돌연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일반적인 면에서는 모르겠지만, 내 경우로 말하면, 그것은 자기가 맡은 직분을 완수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페스트> 알베르 카뮈 지음



코로나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 걸까. 최전방에서 싸우는 의료진이 있고 사람들이 어떻게 생활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고 현 상황을 알려주고 정책을 만드는 정치, 행정계 사람들이 있다. 그 외에는 나와 같은 보통의 사람들이다. 코로나가 있든 없든 우리는 일상을 계속 살아가야 한다.



지금 육아를 하고 있는 나,

이 힘든 상황은 나만 겪는 것이 아니다. 육아를 하지 않는다 해도 각자 자기만의 힘듦이 있다. 생각해보니 육아의 힘듦을 전화로도 이야기하며 해소할 수 있는 친구가 있고 나를 알아주고 인정해주는 인생 선배인 언니들이 있다. 집에서 아이와 둘이 지내고 있지만 돌아보면 나도 누군가와 함께이고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만 힘들다고 비관적으로 내 일상을 바라볼 게 아니었다. 책은 나에게 다른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는 힘을 주었고 사람들과 더불어 지내는 게 인생이라는 메시지를 심어주었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 혼자 산다고 하더라도 밥상 위에 차려 놓은 먹는 것부터 어느 누구의 도움 하나 받지 않고 살긴 불가능 하다. 함께 만들고 이뤄가는 사회고, 서로 도와가며 살아가고 있다. 개인의 고난, 열망, 열병이든 사회를 덮은 전염병이든 혼자서 극복할 수 없다.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고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한 마음의 정도 절실하다. 각자의 자리에서 성실히 본분을 완수하며 서로 함께 의지하고 연대하려 하는 노력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방법임을 알았다. 세상을 살아가는 태도에 대해 생각해보며 내가 속한 이 곳을 따뜻하게 볼 수 있었다.








책을 덮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거실과 방에 널 부러진 장난감을 주어 담았다. 그리고 아이와 함께 가지고 놀 장난감을 쇼핑몰 장바구니에 막힘없이 담았다. 낮에 아이와 집에서 신나게 놀다가 잠깐씩 유모차 태워 밖에 나가서 산책도 하고 들어왔다. 가족, 친구와 영상통화를 하며 서로의 안부를 묻고 수다를 떨었다. 마스크를 끼고 단골 빵집 가서 웃음으로 이야기를 나누며 빵을 샀다. 그리고는 시장에서 장을 보고 저녁밥 든든하게 해 먹었다. 여느 때와 같이 아이를 재우고 10분이든 20분이든 다시 책 앞에 앉았다.



사실 책을 읽으며 좋은 깨달음을 얻는다고 해서 내 일상이 바뀔 리는 없었다. 육아를 안 할 수는 없는 것이고, 육아의 힘듦을 도와줄 무언가가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마음이 변한다고 해서 몸이 강철체력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도 아니다. 속상하게도 현실은 그랬다.




다만 책을 통해 바뀐 것이 있다면 내 일상과 우리가 처한 상황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위생에 신경 쓰며 서로 간의 거리를 두되, 각자의 위치와 자리에서 지금껏 하던 것을 묵묵히 잘해나가야 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코로나로 인한 분노로 똘똘 뭉친 불씨를 잠재우기로 했다. 자유롭지 못한 일상을 주어, 아이에게 미안하고도 속상한 마음이 생겼지만 잠시 내려두었다. 그저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성실하게 하며 최대한 즐겁게 살아가면 된다. 그것만으로 책 <페스트>가 나에게 준 가치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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