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아침, 6시 30분, 잠도 덜 깬 상태에서 버스를 타러 정류장으로 나갔다. 마감 때문에 이번 주 내내 야근과 철야를 반복하다가 드디어 모든 일을 끝내고 택시타고 집에 왔었다. 한 두 시간 자고 일어나 세수만하고 겨우 하고 새벽녘부터 집 밖을 나왔다. 이번 주는 너무 바빠서 모임에서 선정한 책 한권을 다 읽지도 못했지만 자고 있을 순 없었다. 포근한 이불을 박차고 나올 수 있었던 건 매주 수요일 아침 7시, 삼성역 근처에서 하는 독서모임 때문이었다. 비록 다크써클이 턱 밑까지 내려오고 피곤에 절어서 정신을 못 차리더라도 모임장소로 갈 수 밖에 없었다.
한 주에 한 번 찾아오는 이 날이 점차 나에게 귀중한 시간이 되었다. 책모임을 하면 할수록 함께 읽는 즐거움이 더해졌다. 같은 책을 읽으면서 내가 공감한 부분에 다시금 같이 공감했고, 전혀 신경 쓰지 못한 구절에서 새로운 관심이 더해지며 이야깃거리가 생겨났다. 모임에 참여 할 생각을 하니, 책만 읽을 순 없었다. 감동 받았던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려면 먼저 내 단상들을 정리 해 봐야 했었다. 모임을 하면서 읽은 책은 나를 그냥 지나가지 않았다. 책과 함께 읽은 이들이 주는 메시지를 제대로 흡수 할 수 있었다. 시간적 여유가 없어 허투루 읽었다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의 단상을 들음으로써 책의 내용이 새롭게 다가오기도 했다.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는지 알고 내가 흡수하고 싶고, 배우고 싶은 것을 적어두기도 했었다.
이렇게 난 회사를 다니며 2년간 출근 전 회사근처의 책모임을 했었다. 이른 시간부터 모인 우리는 책으로 아침을 시작했었다. 직업을 당장에 바꿀 수 없고 `회사를 옮길 수도 없기에 내가 바뀌기로 했다. 늘 불만에 가득 찬 나지만, 인상 찡그리고 한숨 나오는 불만은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독서 모임을 하며 인상 깊은 문장을 소개하고 함께 얘기 해 보는 것만으로도 내 책 읽기 습관에 변화가 생겼다.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는 그들만의 읽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정보와 지식을 얻고 싶어서, 쏟아지는 감정을 책 읽음으로써 다스리고 싶어서,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고 싶어서 등등 수많은 이유가 있다. 독서모임을 하면 함께 읽은 이들과 소통하면 책 읽는 이유가 증폭되어 책이 가진 메시지가 개개인에게 제대로 정립됨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독서모임을 하면 책 편식을 줄이고 골고루 읽을 수 있었다. 한 사람이 추천해서 읽는 책이든 독서모임에서 짠 프로그램에 의한 책이든, 내가 읽으려고 자발적으로 고르는 책이 아닌 손이 잘 가지 않는 책도 읽게 된다. 평소에 읽지 않던 시집 <순간의 꽃>과 공부하듯이 읽었던 미래 전망서 <2030 대담한 미래>, 정치사상이자 근현대사가 녹아 있는 리영희 선생님의 <전환시대의 논리>도 독서모임을 하면서 읽게 되었다. 어떠한 계기가 생기지 않는 한, 혼자서는 읽지 않았을 책이었다. 함께 읽고 있기에 가능했었다.
책을 통해 만난 사람들은 내가 일하는 분야와는 전혀 다른 사람들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이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일상을 나눔으로써 새로운 활력이 생기기도 했다. 내가 어디서 이런 다양하고도 마음이 맞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까. 책을 읽는 것도 좋지만 사람도 책 보듯이 ‘사람 책’을 알아가는 즐거움이 컸다. 아침 책모임으로 일상이 책과 사람으로 나는 회사사람만이 아닌 나로써 살고 있음에 뿌듯했다.
나에게 큰 에너지를 준 독서모임, 더 이상하기 어렵게 되었다. 입덧 임신으로 출퇴근 조차 어려웠기에 곧 퇴사까지 이어졌다. 아이를 낳고 보니 독박육아 세계에 갇히게 되다보니 독서모임은커녕 그 좋아하던 책 읽기 조차 어려워졌다. 아기 낳기 전에 했던 집에서 했던 책 읽기나 글쓰기가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다.
점차 아기가 신생아 시절이 지나면서 책을 조금이나마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여유가 생긴다기보다는 육아를 대하는 내 태도가 점차 바뀌게 되었다. 늘 집안일은 쌓여 있고 아기를 돌보는 일은 언제나 날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날 기다리는 건 아기 뿐만은 아니었다. 책이 내 눈과 손을 기다리고 있고, 읽기에 대한 욕망, 함께 읽으면서 나누었던 감정은 결코 눈감고 지나갈 수 없었다. 난 독서 모임을 한동안은 못할 줄 알았기에 단념하고 있었지만, 마음에 항상 남아 있었다.
아이를 키우고 있는 지금의 나는 여전히 독서모임 참여하기가 힘들다. 나뿐만이 아닌 대부분의 육아맘들이 그러할 것이다. 거기에다가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자유로운 외출이 어렵기에, 많은 모임들이 취소되고 새롭게 생기는 자리도 없어지고 있다.
절박하면 해결책을 어떻게든 찾는다. 온라인 모임을 찾아 글쓰기를 조금씩 시작하고, 독서모임도 함께 하게 되었다. 주어진 역할과 사회적 상황이 바뀜으로써 사람들을 자유롭게 만날 시간과 여유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해도 온라인으로도 독서모임을 할 수 있다.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그에 맞추어 내가 바뀌면 된다. 아이를 재우고 독서모임에서 선정한 책을 틈틈이 읽는다. 지금 난 리더가 책에 대한 자료와 그에 맞추어 스케줄을 제공하며서 꼼꼼히 운영하고 있는 독서모임과 친한 친구와 함께 한 권의 책을 같이 읽고 문장을 나누고 있는 독서모임까지, 두 개의 모임을 하고 있다. 온라인 모임이기에 두 모임을 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사람을 직접 만나서 정을 나누는 것은 아쉽지만,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지만 함께 읽기를 원한다면 온라인 모임을 권하고 싶다. 다 읽고 난 다음, 온라인에서 같은 시간에 모여 독서토론을 하며 책 한권을 마무리하기도 한다.
혼자 아기 키우면서 독서 모임까지 해야 하나? 대답은 언제나 YES 다. 상황 상 어쩔 수 없이 집에만 있어 사람들을 만날 수 없기 때문에 더욱이 해야 한다. 이곳, 온라인 독서모임에서는 상상하지도 못한 여러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책을 통해 세상 이야기를 접하고 함께 읽는 이들의 책에 대한 단상과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 또한 일상 지혜를 새로이 배우고 있다!
나를 둘러싼 많은 것들이 스스로 제어할 수 없을 때 답답함을 느낀다. 그럴 때 일수록 다른 곳에서 나를 자극할 만한 장치를 찾고 도전해보려 한다. 결혼하기 전 힘들고 지쳐있던 회사사람으로 살면서 극복하기 위해 시작했었던 독서모임, 육아로 인한 집순이의 답답함을 달래기 위해 하는 독서모임의 근원은 같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지금 이 시점에서 변화가 없는 일상을 살면서 답답함을 호소하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집 안에서 TV, 휴대폰과 더 친하게 지내며 세상 이야기를 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후에 몰려오는 허무함과 시간이 아깝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음을 많이 느끼고 있으리라 짐작한다.
책 속의 이야기를 읽으며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한번 보자. 온라인 독서 모임을 하며 함께 읽고 나누기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건 어떨까. 이것이야말로 슬기로운 집콕 생활이자 진정한 집 밖 세상과의 소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