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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공장 Oct 31. 2022

이태원 참사와 국가의 존재 이유

희생자의 명복을 빕니다.







오늘 오전에 뉴스를 보며,


왜 울음이 나는지도 모르고, 많이 울었다. 밤새 뉴스 속보가 이어지는 걸 지켜보다 밤을 새웠다. 늦은 오전에야 잠들었다. 이른 오후까지 자고 일어나 다시 유튜브 라이브로 뉴스 보며 출근했다. 뉴스에서 소위 전문가란 사람들이 방송에 나와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다란 말을 많이 했다. 그 이유가 정부나, 기업, 단체 등이 할로윈 행사의 주체가 아니라는 거였다. 그러면서 또 대규모의 사람들이 모일 거란 예측은 행정 안전부나 경찰 측에서 하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전문가들과 그 전문가들을 인터뷰하는 언론인들이 놓치는 것이 하나 있었다. 너무 비통하고 충격적인 일이 서울 한 복판에 일어나서 당황했을 수 있다 생각한다. 하지만,


도로에 차량이 비정상적으로 많아지거나


예기치 않은, 갑작스러운 도로 공사 혹은 교통사고가 나면, 도로에 경찰이 출동해 차량 흐름을 컨트롤한다. 또한 도심에 특정 행사가 예정되어 있어, 특정 지역과 도로에 차량 통행량이 급격히 많아질 것으로 예상될 때에도 경찰은 미리 출동해 교통이 원활하도록 관리한다. 이게 경찰의 의무이고, 그 경찰에게 적절한 지시를 주는 것이 경찰국과 행정 안전부의 임무다.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은 도로(차도)의 교통 통제만


경찰의 임무가 아니라, 사람이 다니는 인도의 통제도 경찰의 마땅한 임무라는 점이다. 특히 많은 인파가 한 곳에 몰릴 때에는.


마스크를 벗는 첫 번째 할로윈 행사에


수많은 사람들이 이태원 지역으로 몰릴 것이 충분히 예상되고 있었다 한다. 그러면 경찰 지도부는 마땅히 평소보다 많은 경찰을 이태원에 투입해야 했다. 그래서 경찰들이 사람들의 이동을 적절히 통제하고, 특정한 골목이나 길에 지나치게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오면, 그곳으로 사람들이 더는 진입하지 못하도록 우회로를 일러주거나, 꼭 그 길로 들어가야 하는 사람들에겐 그 진입 속도를 적절히 조절해 줘야 한다.


사고 직전 현장에 인파가 모여 그 길을 지나가면 장면이


뉴스에 보도되었다. 만원 지하철이 정차해 전차 문이 열렸을 때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거나 등 떠밀려 들어갈 때와 같은 상황이 어제 사고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그것도 경사진 길에서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그리고 그 골목으로 들어가는 입구 쪽에 전철 출구도 있었다. 이런 상황이었다면 분명히 그곳에 적절한 수의 경찰이 투입되어, 그 도로 입구나 전철 출구에서 적절한 통제를 하고 있어야 했다. 그게 경찰과 행정안전부의 마땅한 임무다.


코로나 대유행을 지나고 처음으로 마스크 없이 하는 할로윈 행사에


수많은 사람이 나올 것이 예측된 상황에서는 특히 그 임무를 수행하라고 경찰이 있는 것이고, 경찰 지휘부는 그런 상황을 철저히 대비하라고 지시했어야 하는 거다. 또 행정안전부 장관은 경찰 국장이나 지역 경찰서장에게 안전사고가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만반의 대비를 하라고 지시했어야 하는 거다.


그런데 각 방송사 뉴스 앵커도, 참사의 원인을 묻는 앵커의 질문을 받는 전문가들도 이 부분을 말하지 않고, 누구 책임이라고 명확히 규정하지 않는다. 책임 소재를 규정하기 쉽지 않다고 한다. 정말 못하는 걸까, 안 하는 걸까?


국가의 존재 이유


국가는 국가를 구성하는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거다. 국가 성립 이전에 수렵 채집하던 모든 이가 누리던 자연권 즉, 절대적 자유를 일정 부분 포기하며 국가의 존재를 인정하는 이유는 우리가 가진 절대적 자유를 일정 부분 포기하는 대신, 우리 안전과 재산을 국가에게 지켜달란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이걸 국가와 시민이 맺는 계약 즉, 사회 계약이라고 하지 않나? 그리고 그 국가를 운영하는 주체인 5년 임기의 정부가 그 국가에게 주어진 시민 보호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린 그 임무를 수행하는 즉, 정부를 구성한 대통령과 장관, 그리고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경찰 공무원에게 월급 주는 거다. 피 같은 우리 세금으로.


우리 동료 시민 150명이 넘게


이 비극적인 사고로 죽었다. 그들은 누군가의 아들 딸이고, 누군가의 형제자매다. 누군가의 연인이 속절없이 죽었다. 마땅히 보호받아야 할 우리 동료 시민이 죽었다.


이번 참극은 누군가 아니,


공무원, 그 공무원들에게 적절한 지시를 내려야 하는 지명직 공무원(행정안전부 장관), 그리고 이 장관을 임명한 선출직 공무원(대통령과 시장 같은)이 우리가 위임한 그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해 일어난 참사다.


오전에 이유도 모른 채 흘러나오던 그 눈물의 이유가


오후에 출근하고 나서 분명해졌다. 일단 그 유가족이 생각나서 슬펐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아 누군가의 아들과 딸, 형제자매, 연인이 죽은 것 때문에 복창 터져 울은 거였다. 슬픔과 뒤섞인 분노 때문이었다.


같이 슬퍼하고, 같이 울어야 하는 비극적 사건이다. 하지만


슬퍼하는 것과 동시에 분노해야 한다. 최소한 책임 있는, 책임져야 할 사람들을 흘겨봐야 한다. 슬퍼하고 애도해야 할 시기에 책임 소재를 따지는 정치적 공방은 적절치 않다는 주장은 이번엔 통하지 않는다. 정치적 공방이나 정치적 의도를 운운하는 사람들이 바로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다. 이런 말을 하며, 그들의 책임을 덮어 주려는 사람들도 있다. 우린 그들이 누구인지 다 안다. 우리가 왜 마음이 무겁고 아픈지, 왜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나오는지 다 안다. 정말이지 무능하고 나쁜 놈들이다.


다시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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